시작은 이대 작은 골목, 생활의 달인 만두집과 고즈넉한 밀크티 카페에서
경의중앙선 신촌역은 '신촌'이라 쓰지만, 사실 우리가 아는 신촌보다는 '이대'에 가깝다. 나는 의경시절 교통기동대에서 복무를 한 적이 있다. 교통기동대는 신기하게도 한 두명씩 팀이 되어 그 날 부여받은 교차로의 교통을 책임지는(?) 근무를 하게된다. 어떤 날은 이대 졸업식이라 해서 이대 앞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가는 장소는 신촌 '기차'역 앞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곳은 '이화여대길'이었고, 신촌에서 이대 정문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다. 근무가 끝나고 선임과 나는 이른 저녁을 먹기위해, 교통경찰 제복을 입고 이대 골목을 누볐다. 작고 예쁜 가게들이 많은 곳. 언젠가 다시 제대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촌지구대 앞에는 고교시절 은사 님의 친구가 운영하는 치과가 있다. 전역 직전 나는 이곳에서 교정치료를 하게 되었고, 치료가 끝나면 그 날 누비던 길들을 천천히 걸었다. 홍대를 다니던 나는 근처 골목에서 맛집을 찾는 독특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기준은 얼핏 들으면 좀 말도 안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장개업한 라멘집이 1) 홍대 변두리에 있는데, 2) 메뉴는 4개 밖에 없고, 3) 단품 가격은 8~9천원 정도이고, 번외) 교회에서 온 화환이 많으니! 이 곳은 맛없기 어려울 것이라는 추론인 식이다. 1~3번은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낮은데, 메뉴 수가 적고, 각 메뉴 당 가격이 제법 되니. 맛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당위에 가깝다. 번외는 사실 큰 관련은 없으나 이 곳 주인이 '나쁜 사람은 아닐 것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골목 식당에서 이런 말도 안되는 기준을 가진 나지만, 다행히 그다지 실패하지는 않는 것 같다. 어떤 평론가의 말처럼 백종원 씨의 식당은 일종의 '맛의 하한선'을 제공한다. '아. 이정도 맛은 보장되겠구나' 하는. 잘 모르는 지역에서 모험이 싫을때 백종원 씨 식당은 참 안전하다. 문제는 그 맛이 너무 무난하다.
그런데 어떤 날은 좀 특이한 가게가 눈에 보였다. 일반적인 중식집은 아니다. 짜장면이 없다. 메뉴 중 만두가 주가 된다. 메뉴판에 보이는 가격은 비싸지 않다. 모험을 해보고 싶었다. 오늘은 '맛'을 기대하기로 했다.
찾기 쉽고, 비싸지 않고 탁월한 맛을 주는 친절한 중식집. 튀김만두를 꼭 먹어봐야하는 곳.
가격 - 비싸지 않다. 맛을 생각하면 오히려 저렴하다.
맛 - 튀김만두가 주는 만족감은 대단히 탁월. 다른 메뉴도 실망시키지 않음.
서비스 - 당당한 공손함과 친절. 식사후 웃음 지으며 좋게 나올 수 있음.
찾아가는 길 - 쉬움.신촌지구대와 인근 커피빈을 찾으면 다 찾은 것임.
공간편의성 - '먹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없다. 화장실은 홀안에 있고 남녀 분리되어있음.
분위기 - 허세가 없다. 음악도 없다. 2층 올라가는 길이 좀 더 밝고 쾌적했으면.
이 집에는 3번을 갔다. 처음에는 혼자서, 두 번째는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가는 에세이 제자와, 세번째는 비가 오는 날 혼자. 이 곳은 아마도 가족이 경영하는 곳 같다. 매장 직원들은 한국말과 중국말에 능하다. 아마도 화교이거나 중국 동포일 것으로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중식집에 가면 꼭 주문하는 게 볶음밥이다. 볶음밥은 그 집의 '기본기'를 보여준다. 새우볶음밥을 주문했다. 고슬고슬하고 통통한 새우살을 기대했다. 가격은 6,000원.
이 곳은 '만두'가 주력이다. 자연스레 어떤 만두를 먹는게 좋을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다먹을 수는 없다. 주인 아저씨에게 어떤 만두가 제일 좋냐고 물었다. "아 당연히 튀김만두죠. 튀김만두에요" 안심을 주는 확신에 찬 자신감. 그러고보니 튀김만두를 포장해가는 손님들이 꽤 있었다.
튀김 만두는 정말 맛있다. 큼지막하고 바삭바삭하다. 성인 남성의 경우, 튀김만두와 볶음밥을 하나 주문하면 충분한 포만감을 느끼고도 남을 것 같다. '모둠만두'를 주문하면 김치만두와 고기만두가 함께 나온다. 튀김만두까지 놓고 봤을때, 역시 발군은 튀김만두였고, 개인적 취향에서는 김치만두는 '상대적'으로 덜 맛있었다.(물론 맛있다..)
고기만두를 한 입 베어물면, 촉촉한 만두피가 육즙을 잘 가두고 있다. 계란국은 너무 짜지도 싱겁지도 않다. 계란도 충분히 들어있다.
홍대 진만두도 참 맛있지만 이 곳 만두는 상대적으로 정말 저렴하다. 양이 적지 않은 모듬 만두도 8천원이다. 가격을 생각하면 화상 손만두가 주는 만족이 더 컸다. 물론 만두의 '다양한 종류와 맛'을 기대하면 홍대 진만두로..그냥 각자의 매력이 다른, 다른 집이다.
제자와 왔을 때는 마파두부밥과 '동파육'을 주문했다. 동파육은 상당히 '큼지막'하다. 또 입술로만 씹어도 씹힐 정도로 부드럽다. 이게 '소'자의 양인데, 저렇게 모든 음식을 먹어도 3만원이 조금 넘는다. 화상 손만두는 비싸지 않은 가격에 중식이 주는 풍미를 충분히 선사한다. 미리 예약을 해야 주문이 가능한 메뉴도 있다.
공간은 홀이 25평 내외 정도 되어보인다. 촬영은 식사중인 손님들의 식사를 방해할 우려가 있어 홀 전체를 담지는 못했다.(게다가 나는 미스터리 쇼퍼같은 롤이므로...) 공간은 불필요한 인테리어가 없고 허세도 없다. 테이블 몇 개가 전부. 화장실은 가게 안에 있으며 남녀 공간이 별도로 완전 분리되어 있다. 화장실도 깔끔하다. 다만 좁고 창문이 없어 환기는 어렵다. 안내 문구는 다소 의아한데, 중간 계단도 결국 '실내'이기 때문에 담배를 피는 분들은 조금만 수고를 하시고, 1층에서 흡연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화상 손만두는 대단히 친절하다.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이 '예식'같은 친절을 베푸는 곳은 아니지만, 사장님과 젊은 남자분(아마도 아드님 같음.)은 생기넘치는 친절함과 당당한 공손함을 늘 보여주셨다. 실력있는 이의 호방함이다. 언제나 식사를 하고 기분좋게 나왔다.
종합하면, 이 곳은 '비싸지 않고 맛있고, 접근성도 좋다' 이대 신촌에서 허세없이 맛있는 중식과 만두를 맛보고 싶다면 화상 손만두는 탁월한 선택이다.
식사후 이내 가까이있는 마실 곳을 생각했다. 역시 모험하기로 결정.
2. 10년 넘게 제자리를 지킨, 따뜻한 오래된 서재, 밀키웨이.
오래된 서재의 기분 좋은 냄새, 사람 냄새가 나는 공간. 그리고 밀크티.
가격 - 공간의 따뜻함과 밀크티가 주는 만족감을 생각하면 전혀 아깝지 않다.(일반적인 카페가격)
맛 - 다양한 종류의 밀크티를 제대로 먹어볼 수 있다. 물어보면 친절히 설명해주심.
서비스 - 정말 딱 좋을 만큼의 관심과 무관심의 친절함. 주인 아저씨는 공간을 지키는 고양이 같다.
찾아가는 길 - 알면 이대정문, 신촌기차역과 가깝다. 모르면 헤멜 수 있다. 찾아가는 처음이 중요.
공간편의성 - 지하에 위치. 화장실은 공용이나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물론 대부분의 손님이 여자다.
분위기 - 오래된 서재의 기분 좋은 냄새, 잘 정리된 책들, 대화와 작업의 집중을 흐리지 않는 음악. 그냥 좋습니다.
신촌지구대옆 화상손만두에서 '이화여대길' 쪽으로 걸어가면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골목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나온다. 이 골목을 탐험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골목을 쭉 따라 걷다보면 '우리집 식당'이 있는데, 그 옆에 바로 'the milkyway'가 있다.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들어가자. 밀키웨이는 2번 방문했다. 그리고 한 번은 제자와 함께, 두 번째는 비오는 날 혼자였다. 언제나 화상 손만두에서 식사를 한 뒤였다.
밀키웨이에는 따뜻한 밀크티의 달콤한 냄새, 책 내음, 은은한 스탠다드 재즈와 사람냄새나는 이야기 소리가 있다. 이 곳은 청량하고 산뜻한 느낌을 주는 공간은 아니다. 다만 따뜻하고 포근하다. 만약 단독주택에서 살게 된다면 우리집 지하실은 이렇게 꾸미고 싶은, 그런 공간이다.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이 동네에서의 추억이 많다면 오랜 시간이 지난후 그리울 것만 같은 곳이다. 지나가고 고쳐간 사람들의 흔적과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밀크티를 그리 많이 먹어본 적이 없다. 때문에 아직 '취향'이 형성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좋다', '나쁘다'를 넘어 무엇인가에 대해 평가를 하려면 '잘 알아야'한다. 나는 아직 밀크티를 잘 알지는 못하기에 세세한 맛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아이리시 몰트가 내게는 정말 맛있었다. 고구마나 단호박 스무디도 있다. 혹 잘몰라서 선택이 어렵다면 선호하는 맛에 대해 사장님께 물어보면, 차분히 대답해주신다.
사장님처럼 음악도 잔잔하다. 잔잔한 피아노와 이따금씩 배경처럼 나오는 보컬들. 보컬이 나오는 음악은 재즈 같다. 재즈를 잘 모르지기에 무어라 말하기 어렵지만, 주로 잔잔한 스탠다드 재즈 느낌이다.50-60년대 미국이 생각나는 선곡들이랄까. 하만카돈 스피커다. 시그니쳐인 '투명한 해파리'를 닮은 스피커.
들어서면 1인을 위한 테이블이 바로 보인다. 비오는 날이었기 때문일까. 여럿이 왔을 때보다 혼자일 때 더 좋았다. 1인석은 책장과 붙어있다. 앉아있으면 뒤가 보이지 않게 되어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하서재같은 이곳의 냄새와 작업하며 들려오는 말들의 풍경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서가에는 대충 고른 게 아닌 실제로 읽은듯한 문학, 사학, 철학, 사회과학, 경영 서적들. 일부 만화책들이 있다. 그리고 어디에나 있지만 끝까지 읽은 사람은 없다는 총,균,쇠와 오리엔탈리즘 등의 고전이 되어버린 책들도 보인다. 총균쇠를 읽은 이들은 안다. 서문 '얄리의 질문'을 몇 번이고 되새기게 된다는 것을..(;;) 나는 경영학도이(기는하)다 보니 경제, 경영 서적들이 눈에 띄었다. 피터 드러커의 '조건' 시리즈 3연작이 바로 내 앞에 있었다. 저 책들을 처음 읽었을 때가 6년전..2012년 나는 그때 무엇을 했을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프로페셔널의 조건>을 가장 감명깊게 읽었다. 거의 100년을 산 노학자가 90살이 넘어 쓴 통찰이 담겨있었는데, 70년 전 과거를 회상하는 대목이 대단히 '신비'했다. '창업'에 던질 준비가 되어있던 어린 날의 나에게는 특히나.
이곳이 이렇다. 회상을 하게 만든다. 그때 만난 사람들, 나눈 대화들, 생각했던 생각들이 떠오른다.
이 곳 테이블에는 수제작 메뉴판과 더불어, 노트들이 있다. 노트에는 이곳을 방문한 이들의 방명록이 있다. 방명록에는 여러 사람들의 고민, 생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아무 말'도 있고 그림도 있고, 넋두리도 있고, 시도 있고, 근황을 적은 일기도 있다. 취업을 걱정하는 대학생의 고민도, 한창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커플들의 사랑의 말들도. 말하자면 여러 감정의 아카이브다. 서가 한 켠에 몇년이 지난 것도 보관되어있다. 나는 나보다 먼저 이곳을 다녀간 이들의 생각을 몇 시간이고 읽었다.
이 날은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아마도 폭우 주의보가 발령됐던 것 같다. 계속 재난 문자가 왔다. 지하에 있는 이 곳은 약간은 '눅눅하고' 따스한 공기가 깔려있었다. 밤이 되자 삼삼오오 각각의 일행들이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나눈다. 주인 아저씨를 찾아온 외국분과 여성 분이 잔잔히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나는 책장을 마주한 이 곳의 작은 책상에서 이 분위기를 듣고 느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곳에는 아무도 조용히 하라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절로 조용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다. 대화를 나누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어 나긋나긋하게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공간이기도 하다. 오히려 대화소리가 공간에 얹어져서 좋은 소음을 만들어내는 느낌.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되는 분위기의 밀도가 있다. 혹 에세이나 소설을 준비하는 작가 분들이라면 이 곳에서 밀크티를 주문하고 서재만 보이는 1인 석에 앉아보았으면 좋겠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본의 아니게' 들을 수 있다.
당연하게도 따뜻한 밀크티는 덤이다.
사람냄새나는 말들의 풍경이 있는 이 곳을 나는 앞으로도 이따금씩 찾아올 것 같다.
플레이트 로드.
시작은 이대 골목이었습니다.
더 모험하고 경험하며 느낀 바를 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