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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철 Sep 07. 2018

스물일곱 의경으로 입대한 나, 논산 훈련소에 가기까지

의경 선발 시험부터 논산 훈련소까지의 상세한 과정과 느낀 소회들.

<나의 의경생활 이야기>를 열며

<나의 의경생활 이야기> 시리즈는 의무경찰 1079기로 스물 일곱 나이에 2016년 10월 5일 입대한 제 경험에 근거합니다. 제가 의경생활을 하는 21개월 동안 촛불집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권 교체, 남북정상회담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의경 자대 생활 절반을 일선 교통기동대로, 나머지 절반을 기동단 경무계 의경행정(군의 연대에 해당)으로 보냈습니다.


훈련소 동기들과 전역 프로필 찍을 때. 근엄 진지..제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의경 지원자 또는 입대 예정자, 복무중인 의경 대원에게는 꼭 필요한 정보를, 전역자에게는 추억(?)을, 그 밖에 글을 읽어주시는 감사한 분들께는 역사적 상황에서의 생생한 맥락을 전하고자 합니다.


* 본 기획이 다루는 사항은 모두 보안과는 무관합니다.


지난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moonlover/22



일단은 정보라는 것을 주로 전합니다. (의경입대가 궁금한 사람을 위해)


의경, 정식명칭은 의무경찰 순경이다. (전투경찰을 의미하는 '전경'은 2000년대 중반에 사라졌다.) 경찰청은 부족한 치안, 경비 경찰 수요를 '징병 자원'으로 채우기 위해 '의경'제도를 계속해서 운영해오고 있다. 또한 경찰청은 국방부와 협의하여 '행정안전부 소속 전환복무요원' TO를 할당받아 의경을 운영한다. 징병자원(정말 싫어하는 표현임..)의 부족과 경찰관의 치안 책임 기능 강화를 명분으로 2023년 의경은 완전 폐지될 예정이다. 그러나 의경은 대체로 도심 속 부대에서 복무하고 매주 부여되는 외출이 있다. 여전히 군대를 가야하는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참 많이 높다. 그 정보와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려고 한다.


- 의경 선발 시험은 이렇습니다


의경을 운영하는 경찰의 부서는 경찰청 본청 '경비국'이다. 지방청은 '경비부'를 두고 있는데, 의경의 선발과 관리도 모두 이 곳에서 한다. 각 지방청에서는 본청으로부터 선발 TO를 할당받아 별도로 응시 시험을 치르게 한다. 따라서 의경선발을 진행하는 직원/의경들은 경비부 의경계 소속 사람들이다. 물론 체력 감독관으로 오는 '직원' 중 일부는 순번으로 다른 의경부대에서 온 '지휘요원'(부대에서 간부라는 말을 잘쓰지 않는다. 군과는 다른 점)이다. 의경 '대원'들 중 일부도 부대에서 당일 날 지원 온 사람들이다. 직원(경찰관)-대원(의경) 구도는 앞으로 본 시리즈에서 지겹게 보게될 것이다.. ^.^;;


시험은 '적성 검사'와 '체력 테스트'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 과정을 통과하면 랜덤으로 선발된다. 의경선발 과정에서 이른바 '빽'이 들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그런데 (경정 이상의 5급 이상의)경찰 직원들도 계속 자녀가 의경 시험에 떨어진다고 '걱정'한 것을 봐서는 의경 선발 자체에서는 시스템으로 공정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초 자대 배치까지도 그렇게 보임)


'적성 검사'는 지능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불안' 여부를 발견하고 싶어하는 검사에 가까워 보인다. 검사는 어렵지는 않은데, 일관성있는 성격으로 보이게 소신껏 하면 된다. '체력 검사'는 윗몸 일으키기, 멀리뛰기, 대망의 팔굽혀펴기로 구성되어 있다. 의경 시험 지원을 가보면 지루하게 몇 시간동안 지원자들을 관찰할 일이 있다.  보통 윗몸 일으키기, 멀리 뛰기에서 떨어지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고, 팔굽혀 펴기가 좀 어렵다.


팔굽혀펴기는 1분에 20개를 정자세로 하면 된다. 아주 디테일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운 게 지방청과 그 날의 직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대체로 3초 안에 땅에 가까이 내려갔다가 올라가면 1회로 인정된다.(유심히 봄.) 이렇게 시험을 봐서 지원자격에 합격을 하면 며칠 후 시험장소에서 '추첨'을 통해 최종합격 여부를 결정한다. 참관할 수도 있긴한데, 보든 안보든 당락에는 차이가 없다.


이렇게 의경에 최종합격하면, 대체로 5개월 안에 입대를 하게 된다. 입대 장소는 논산 훈련소이며,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게 된다. 각개전투는 있는데, 유격은 없다. 수류탄도 모형으로 한다. 그 밖에 것은 모두 같으나 의경들은 대체로 23연대나 25연대가 소속인 것 같다.


- 2016년 10월 5일 스물 일곱, 논산 훈련소에 드디어..가다.


떠나기 전 소회는 지난 글에서 매우 잘 남긴 바 있다. 하던 일을 놔둔 채로 스물 일곱 10월에 가는 군대는 정말...가기 싫..었지만 기왕 가는 것 즐겁게(?) 가기로 했다. 함께 창업한 친구들과 휴가를 나온 해병대 제자가 따라와주었다. 고마운 친구들이다. 논산 훈련소에는 몇 가지 전설이 있다. 하나는 논산 훈련소 근처 밥은 대단히 맛이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훈련소 근처 각종 물건들이 대단히 비싸고 별로라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사실이다. 시계와 펜(라이트 펜은 있으면 좋음), 수첩정도는 가지고 들어갔으면 한다. 개인으로서 나를 지키려면 계속 쓰고 사유해야 한다. 나는 그러려 노력했다. 이어질 촛불 때도 그랬다. 정신을 놓고 있으면 '집단'이 강요하는 문화에 시나브로 동화되어 버린다.


논산 훈련소로 처음 들어가면 가족들은 단상에 남고, '조교'들이 당일날 입대하는 모든 까까머리들을 그 아래 '연병장'으로 모이게 한다. 의경은 사회복무요원 친구들과 보통 같은 날 입대하는 것 같다. 어딘가 아파보이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다들 머리는 짧다. 긴장된 표정이다. 사회자는 우리들에게 '앞으로 나란히', '좌우 간격 맞추기'등으로 줄을 맞추게 한다. 신기한 것은 한 번도 군사훈련을 받은 바 없는 보통의 어린 20대 한국 남자들이 생각보다 제빠르게 '곧 잘 기능'하게 줄을 맞춘다는 것이다. 우리는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어쩌면 '통제'와 '규율'을 따르는 것을 내면화했는지도 모르겠다. 고 생각했다.


이어서는 군가 소리에 맞춰서 연병장을 한 바퀴 돈다. 가족들에게 손을 흔들면 된다. 엄마와 창업 동지들, 제자들이 보였다. 울지 않으려 애썼다. 어떤 건물로 들어온다. 이미 정해진 기준대로 분류된다. 입대하는 병종, 지역 등이 기준으로 보인다. 곧 우리를 담당하는 분대장 조교가 처음 나타난다. 각종 신상들을 정리하고, 그 악명높은 다리를 지나 훈련소로 들어간다.


의경이나 사회복무요원들이 주로 훈련받는 것으로 추정되는 23연대, 25연대는 훈련소 정문으로부터 많이 걸어 올라가야한다. 체감상 거리는 2km쯤 되는 것 같다. 단체로 걷는데 옆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쯤되면 긴장이라기보다는 체념한 표정이다. 생활관으로 들어간다. 여러 오리엔테이션이 이어진다. 며칠간은 별다른 것을 하지는 않는다. 군복을 받고, 사진을 찍고, 그 밖에 안에서 필요한 생활습관(?)들을 배운다. 훈련소 밥은 그다지 맛이 없다. 의경학교(벽제 기동경찰교육 훈련센터) 밥이 훨씬 맛있다.


그 밖에 생각나는 것들을 정리해보면...


'보이는 것'에 미쳤다. 제식을 통한 '복종심 배가'가 의도같다. 연대장 눈에 어떻게 보일까를 중대장은 필요이상 고민했다. 기독교를 믿는 연대장을 위해 중대장은 우리 모두를 합동 세례식에 보냈다. (아마 훈련병들이 오가는 길에서 활을 쏜 그 분일 것이다.)

'다나까' 체를 쓰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훈련병들은 알아서 쓴다. 이상했다.

때리는 일은 없다. 얼차려도 '앉았다일어나기', '엎드려뻗치기' 정도 외에는 없다. 그러나 여러분을 힘겹게 할 방법은 충분히 있다 ^.^

이동의 자유가 대단히 제약된다. 단체 이동만 가능하다. 개인에게 허락된 공간은 대단히 좁다. 통제할 인원이 워낙 많은 탓일 것이다.

쉬는 도중에도 눕거나 기대는 것에 제약이 있다.

2시간 이상 연속되는 쉬는 시간은 4주 내내 거의 없었다.

종교행사를 가는데 거리가 멀다...수천명의 까까머리들이 모여있으면 군중 속에 숨어 개인들은 개인을 잃는다. 쓰레기를 버리거나 헛기침을 많이한다.

거의 모두는 감기에 걸린다. 좁은 공간에 여러 사람들을 장기 수용(?)하면 감기에 걸린다. 감기가 정말  독하다.

분리수거에 대단히 집착한다. 나눌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나눈다.


연대 별로 중대 별로 차이는 있을 것이다. 과거 세대에 비하면 지금도 좋아진 것이겠지만, 사회 평균의 인권 감수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앞서 언급한 정도 '불합리'들은 공기처럼 있을 것이다. 나는 사유했으나 저항하지는 못했다. 분대원을 돕는 분대장 훈련병까지 했으니 나는 그럭저럭 잘 순응한 사람일지 모른다. 이 곳의 공기가 '저항할만큼 현저한 나쁨'까지 이른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이 최선일까. 서서든 앉아서든 바라보고 또 썼다.

틈틈이 메모를 쓰려했다. 불침번이 대단히 빨리 돈다. 불침번 중 온도와 습도를 점검하다 고장난 시설들을 확인했다. 훈련소는 낡고 좁았다. 정말 이것이 최선일까? 고민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사소한 것들을 관찰하려 노력했다.


16년 군번까지의 의경들은 '의경 활동화'와 '기동화'(군화에 해당. 군화는 육군 것이 더 좋았다.)를 따로 지급받았다. 그 밖에 속옷도 행정부 소속의 보급품이 따로 나왔다. 내가 느끼기에 대체로 국방부 물건보다는 행정부 물건이 더 좋은 것처럼 느껴졌다. (회색 폴리스 양말 >>>>>> 회색 육군 양말. 올이 안풀림.) 조달청의 힘인가..(?) 나는 아무래도 국방부보다는 행정부가 민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 물건 만큼은 예외였다.

논산에서 받을 이세계의 물건이다. 전역시 챙길 것.

이 슬리퍼는 지금도 우리집 베란다에 있는 물건인데, 이것은 정말..훈련소-의경학교-자대를 모두 거치고도 내구도에 어떠한 변화도 없는 이세계 물건이라 할 수 있다.


논산에서의 4주는 정말 안갔다. 훈련은 그럭저럭 받을만 했는데, 몸과 마음의 자유가 제약되는 느낌에 숨이 턱 막혔다. 그래도 좋은 인연들을 덕에 시간을 보내기에 좋았다. 나를 참 좋게봐주었던 분대장 조교, 춤을 잘추는 홍보단 동기, 내 옆자리 초등학교 선생님, 알고보니 연대장 운전병이었던 제자 황 모 군. 그 외 많은 사람들.


언젠가 각개전투 후 흙묻은 군화를 닦으러 잠시 생활관 밖을 나온 적이 있다.

분명 가로등은 멀리있고, 불은 전부 꺼져있는데 밖은 참 밝았다.

달빛이 별빛이 참 밝은 탓이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한참동안 하늘을 바라봤다.  



이어지는 내용은 <이상한 훈련소 교육, 그리고 수료>입니다. 훈련소의 정훈교육과 의경 합격자들이 궁금해할 지방청 배정과 훈련소 성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에요.

수료식. 한낱 이등병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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