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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철 Sep 24. 2018

육군훈련소 이렇게 나쁜 경험을 모두가 해도 괜찮은거야?

의경입대, 논산 육군훈련소부터 벽제 기동경찰교육센터에 가기까지

https://brunch.co.kr/@moonlover/26

지난 글에 이어서 계속됩니다.

춥고 춥고 또 추웠던 그 겨울의 광장.

<나의 의경생활 이야기> 시리즈는 의무경찰 1079기로 스물 일곱 나이에 2016년 10월 5일 입대한 제 경험에 근거합니다. 제가 의경생활을 하는 21개월 동안 촛불집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권 교체, 남북정상회담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의경 자대 생활 절반을 일선 교통기동대로, 나머지 절반을 기동단 경무계 의경행정(군의 연대에 해당)으로 보냈습니다. 의경 지원자 또는 입대 예정자, 복무중인 의경 대원에게는 꼭 필요한 정보를, 전역자에게는 추억(?)을, 그 밖에 글을 읽어주시는 감사한 분들께는 역사적 상황에서의 생생한 맥락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실 육군훈련소 성적과 의경 지역배치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릴 예정입니다!


- 사람을 바라보는 직업 군인들의 낯선 관점. '사람은 자원'


지난 글에서 설명한대로 의무경찰로 입대하면 논산 육군 훈련소에 입소하게 되며, 일반적으로 의경합격후 5개월 전후로 입대 날짜가 정해진다. 논산 육군 훈련소에서 하는 훈련에 대한 설명은 해당 링크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http://www.katc.mil.kr/katc/eduinfo/support.jsp) 의경은 '유격'이 없다. 수류탄 훈련도 모형 수류탄으로 대신하게 된다. 그 외 훈련강도에서는 딱히 에누리가 없다. 오히려 '간부'들이나 분대장 조교들은 의경 여러분 님덜은 '선발자원'인데 이정도도 못하는가! 라는 늬앙스의 말을 많이 한다. 직업군인들의 언어 습관에는 모집 군종(?)에 따라 '다른 자원'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상당히 묻어나오는데 '어느정도는' 타당한 시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육군 훈련소의 훈련 과정은 모두가 대단히 동질적인 것을 수행하도록 되어있는데, 집단 별로 수행력이 구분되는 모양새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분대장 조교가 말했다.)


크게 다음 집단들이다.


 1) 일반 육군 병사 2) 부사관 3) 전환복무요원(주로 의무경찰이지만 의무소방, 경찰대생도 있음.) 4) 보충역(주로 사회복무요원) 5) 카츄사 


보통은 훈련소 안에 연대/ 중대가 다르게 구분되어 있어서 직접 마주치는 경우는 종교행사나 거의 매일 뛰는 훈련소 구보에서 등이다. 각 집단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고, 2번을 제외하고는 서로 제복상 티가 나지 않는데, 묘하게 서로를 의식하는 다른 분위기들이 감지된다. 그리고 육군 훈련소에는 1번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3번, 어쩌다 5번이다. 4번은 정말 몸이 아파 보이는 친구들이 많고, 그닥 열심히 훈련을 받을 생각을 안한다. 5번은 안경을 쓴 사람 비율이 더 많다. 또 묘하게 점잖다. 신기했다. 의경은 체력과 심리 검사로, 카츄사는 시험성적으로 자격을 두고 '랜덤 선발'을 하니 아무래도 뽑힌 집단이 어느정도의 일정성을 보이는 것 같다.


간부와 분대장 조교들은 자신들의 통제를 따라야한다는 이유로, '훈련소 성적'이 여러분의 '의경 지역 배치'와 관련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정말인지는 아래에서 따로 다루겠다.) 의경 훈련병들은 대체로 이 말을 믿는다. 또 정말 정말 바보같은 생각인데, 대체로 '의경 자원'들은 '일반 육군 병사 자원'들보다 자신들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입대자의 평균을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미 대한민국의 병역 시스템은 인구감소로 인해 군대에 보낼 수 있으면 무조건 보내는 시스템이다. 대부분이 가는 육군의 경우 10%의 병력이 '부적응 병사'에 해당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702190941001) 사실 이런 체제가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육군 훈련소에 가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수키로씩 매일 뛴다. 내가 있던 중대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매일 완주를 했다. 어떤 날은 우리가 다 뛸때 즈음, 도착지에 있던 안경을 쓴 나이든 간부가 내게 물었다. "너네는 자원이 뭐야?" 나는 훈련소에서는 다나까를 안썼기 때문에..."의경이요"라고 말했다. 안경 간부 아저씨는 '와 선발자원이네 너네 관리하기 편하겠다' 라 이어 받았다. 


선발자원 -> 문제를 안일으킴. 관리가 편하다 -> ? (..)


아마도 그 아저씨는 평생을 직업 군인으로 보냈을 것이다. 수많은 병사들을 보았을테고, 아무래도 '관리'의 관점에서 '병력'을 보았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 관점은 나중에 '경찰'에서 '경력'을 바라보는 관점과도 어느정도 이어진다.(직업경찰들은 의경들이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사람을 보는 관점이 상당히 낯설어서 그 간부 아저씨의 말을 여러번 곱씹어 보았다.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없이 무난하게 성과를 내는 것은 중요하니까.


- 해도 너무한 정훈교육, '4.3 사건'에 대한 왜곡된 인식.

글씨를 잘 쓸 수 있는 환경은 못된다(;;) 훈련소에서 보고 느낀 점들을 틈틈이 메모로 남기려 노력했다.

육군 훈련소에서는 실외 훈련만 있는 것이 아니다. 16년 입대 기준으로, 정훈 교육도 따로 받는데 사실 이 내용은 나중에 아주 느슨한 형태로 볼 '필기 시험'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필기 시험'은 훈련소 입소 때 나눠주는 수첩같은 책에 근거하는데, 그냥 여러 번 읽으면 된다. 별 내용이 없다. 아무튼, 정훈 교육은 담당 장교가 진행한다.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재미있게 듣고는 했다. 왜냐하면 '정해진 어떤 관점'으로 유도하기위한 저마다의 방법들이 강사를 했던 내게는 꽤나 재미있게 들렸기 때문이다.


한 명은 자신이 병사였다가 복무중 부사관으로 지원했고, 나중에는 따로 장교가 되는 시험을 봤다고 한다. 그는 스타크래프트의 사례를 들며 '안보관'을 전하려고 노력을 했다. 애석하게도 이미 그 시점에서 20대 초반에게는 스타크래프트의 기억이 상당히 옅었다. 차라리 롤 이야기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은데..뭐 강의 자체는 제법 재미있게 진행을 해서 시간을 때우기는 좋았다. 다만 나는 중간에 강사에게 크게 실망을 했다. '4.3사건은 북의 사주를 받은 사건이다.' 등의  말들을 지나가면서 했는데. 우리 중대의 소대 중 하나는 대부분이 제주도 출신들로 구성됐었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광주 사람들을 모아놓고는 '5.18은 북의 사주를 받은 폭동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것처럼 들렸다. 게다가 '공산화된 베트남'의 사례를 계속 이야기하는데, 베트남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외국은 한국이고,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선언한지 오래였다. 그 공산화된 나라와 잘 지내는(?) 우리 조국은 무엇일까. 외교적으로 상당히 경솔한 발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다른 강사는 필요에 따라 군은 계엄도 할 수 있다!는 요지로 발언했다. (그거 위헌인데..)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다.


훈련소에서는 모든 외부 정보들이 차단된다. 입대한 대부분은 20대 초반이다. 좋은 의미든 아니든 군대는 고교 다음 사회화 기관이기에 충분하다. 스타크래프트 이야기를 들으며 웃었던 제주도 친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4.3 사건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 날 자기전 우리 분대의 친구들과 이런 생각들을 나눴다. 제주도 아이들이 2명이나 있었다.


- 육군 훈련소는 마치 '그럭저럭 있음직' 수용소 같다.

훈련소 홈페이지 - 규모에 대한 이야기말고, 국민으로서 누리는 경험의 '수준'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으면..

육군 훈련소에서 보내는 시간은 4~5주 남짓이다. 이 시간동안 이동과 연락, 식사와 흡연 등 기본적인 선택에 대한 자유의지는 지켜지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은 '복종심' 배가를 위한 훈련 과정일 수도 있다. 분명히 그런 측면도 있다. '한계 상황'을 이기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계 상황'이 아니다. 과자 안먹어도 안죽고, 참으면 될 일이니까. 그보다는 훈련소에서 겪는 일련의 과정이 '값싸게 사람을 부려지고 대해지는', 그래서 '그런대로 성과를 내기위한 부속이 되는' 경험에 가깝다고 본다. 정말 높은 성과를 원한다면 훈련을 받을 때 제대로 받고, 규칙을 정확히 주고 상벌을 명확히 하며, 나머지 시간은 그냥 잘 쉬게, 자유롭게 놔두면 될 일이다. 


그러자면 더 넓은 공간과 예산을 필요로 할 것이고, 통제 노력이 더 들어갈 것이다. 슬프게도 조국은 국민소득이 3만달러가 되도록 그럴 의사가 없었고, '숭고한 국방의무'를 값싸게 때우게 했다. 숭고한 일이라면 더 돈을 써야한다. 그 일을 하는 이를 시민이자 개인으로 존중해야한다. 그렇지 않은 경험은 일종의 피해의식을 만든다. 훈련소장이 기독교 신자이며, 연대장이 신자이기 때문에, 중대장이 눈치를 보고 중대 전원을 세례식에 보내는 일이 도대체 무슨 '복종심' 배가와 관련이 있는가. 연대장의 방문을 대비해 방독면 먼지를 보여주기 싫어 로션으로 닦는 행위가 '국방력 증진'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정말 숭고하면 돈을 써라 국가. '견딜만한 정도로 나쁘고', '개인을 상실'하고, 피해의식을 재생산하는 체제를 개선하자 국가. 훈련소 수료 주에 있던 감찰 설문에서 나는 이런 요지로 적었다. 누군가를 고발하는 내용은 아니었다. 나는 '현저한 불합리'가 아니면 따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곳 육군 훈련소는 지나치게 많은 인원을 수용하며, 비좁습니다. 저는 이것이 재원 부족때문임을 알고 있습니다. 또 저의 이러한 요구가 당장의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함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탁드립니다. 숭고한 국방의 의무에 맞는 경험을 훈련병들에게 주십시오. 시설을 개선하고, 개인시간을 보장해주길 바랍니다.'

 

우리 선배들이 겪은 고통이 더 크다는 것을 안다. 촛불 집회 현장에서도 전의경출신 아저씨들의 "너희들은 편한줄 알아." 라는 말을 1000번쯤은 들었기 때문에. 네. 선생님의 고통을 압니다. 그래서 나는 내 후배들에게는 더 좋은 것을 남길 겁니다. 그 날의 광장에서도 다짐 또 다짐.


- 그래서 육군훈련소 성적은 지역/자대 배치에 영향을 주는가?


오래기다리셨다. 결론부터 말하면 준다. 아니 주는 것 같다고 봐야한다. 훈련소에서는 사실 성적을 매길 근거가 그닥 없다. 위에 언급한 1) '느슨한 지필고사' (중3 사회수준도 안된다.) 2) 훈련 참여와 오래 달리기 기록 3) 사격 정도가 거의 유일한 기준 같다. 의경복무관리 시스템에서는 '훈련소 성적과 등수'를 볼 수 있는데, 성적 점수의 분포가 대단히 촘촘하다. 아마 100점 중 95점과 93점 사이에는 200명은 족히 들어있을 것이다.(이것은 기밀이 아니다. 왜 그런지는 아래에 나온다.) 때문에 지필 고사를 잘보면 된다. 안틀리는 시험이니까. 틀리지 않기위해 여러번 보자. 훈련을 충실히 받으면 된다. 


3주차 즈음이 되면 아마도(충남) 지방청 의경계에서 온 의경대원이 지원 요령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그는 (갓)의경 옷을 입고 우리 앞에서 설명을 하는데, 이때 우리의 눈빛이 오오오...!가 된다. 그는 '성적과 지방청 지망 사이에는 관련이 있으니 훈련소 성적이 좋으면 원하는 곳을 갈 수 있다' 말했다. 이는 아주 틀린 말은 아니나,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다음 사항을 확인하자.


경찰은 전환복무 요원으로 '의무경찰 순경' TO를 국방부로부터 받는다.

경찰청은 TO를 각 지방청 별로 할당을 하며, 각 지방청은 해당 TO대로 인원을 선발한다.

지방청 별로 선발된 인원은 다르지만 기수가 같으면 모두 같은 날 입대하게 된다.

같은 날 입대한 사람들은 시험을 보고 합격한 지방청과는 별개로 자신의 주소지 지역 별로 구분되어 중대가할당 된다.

이 시점부터 어디에서 시험을 봤나보다는 1) 자신의 주소지역 2) 육군 훈련소 성적이 지역 배치에 더 중요.

시험 성적의 분포는 대단히 촘촘하다. 100점이나 99점이 아닌 이상에야 대부분 비슷한 점수대에 몰려있다.

보통 선호 지역에서 튕기는 경우는, 점수가 아주 약간 모자라서인 경우가 많다.


이제 이 말에 신빙성을 더해보자. 입대로부터 1년도 더 지나 정권이 교체되고 경찰 내부에도 여러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당시 경찰개혁위원회에서는 경찰의 여러 비인권적 상황을 개선하고자 노력을 했고, 의경에 대해서도 그런 조치를 하고자 했다. 때문에 당시 본청에서는 위원회에 제시할 의경 인권 개선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자 소회의를 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의경대표로 참석해서 여러 발언들을 했는데, 그러면서 당시 본청에서 의경 실무를 하는 사람들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당시 실무자는 '선호하지 않는 지역'으로 발령받아서 이에 대해 국민권익위에 제보하는 일이 많다고 했다. 본청 실무자는 해당 자료를 민원인에게 공개해서 '납득'을 시킨다. 그리고 이 성적은 훈련소 수료 거의 임박을 해서 자료를 받기 때문에 (국방부 -> 행안부. 서로는 걍 아저씨다.) 사전에 뭔가 흑막이 있기는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또한 이것은 기밀이 아니다. 국민이 권익위 제보시 확인이 가능한 내용이 '군기밀'일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오히려 이 내용이 널리 알려져서 본청 실무자가 덜 피곤했으면 좋겠다..

모쪼록, 훈련소에서 나는 분대장 훈련병을 했다. 그럭저럭 체제에 순응하며 훈련소에 수료했다. 버스 수 십대가 연병장에 왔고, 당시 군인 소대장은 '의경 아저씨'들을 위해 버스 번호를 불러줬다. 동기들과 나는 서로 안녕하고는 각자를 부르는 버스에 탔다. 이때 자신의 발령지를 알게 된다.나는 서울청 소속으로 발령을 받았고, 벽제에 있는 기동경찰 교육훈련센터에 가게 됐다. 


이곳이 벽제에 있는 기동경찰교육훈련센터...!


다음 이야기는 <군대와는 또 다른 경찰,의경학교 3주 동안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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