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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철 Oct 13. 2018

육군훈련소. 모두 알고 있었다 여기 뭔가 이상해

애국이라는 이름의 촌극, 이상한 행동을 하는 상식적인 사람들

본 매거진인 <나의 의경생활 이야기> 시리즈는 의무경찰 1079기로 스물 일곱 나이에 2016년 10월 6일 입대한 제 경험에 근거합니다. 의경 지원자 또는 입대 예정자, 복무중인 의경 대원에게는 꼭 필요한 정보를, 전역자에게는 추억(?)을, 그 밖에 글을 읽어주시는 감사한 분들께는 촛불집회, 탄핵 등 역사적 상황에서의 생생한 맥락을 전하고자 합니다.

https://brunch.co.kr/@moonlover/36

의경들은 육군훈련소를 수료하면 벽제 기동경찰교육훈련센터로 넘어가야하지만, 잠시 외전. 육군 훈련소에서 경험한 사건과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로 사건은 '촌극'이었지만, 그 안에는 상식적이고 좋은 사람들도 있었다. 육군훈련소에서의 기억들을 가능한 생생하게 복원해볼 따름. 때는 2016년 10월이었다.



낮선 훈련소, 그래도 처음 만난 사람들 모두 좋은 사람들이네?


나는 23연대 제3교육대대 12중대였다. 모두 1079기(aka 촛불군번^^;;) 의무경찰로 입대한 사람들이었다. 우리 중대는 경기/인천/제주가 주소지인 사람들을 묶어놓은 것 같았다. 이어진 나의 소속은 4소대, 4분대 187번 훈련병 문희철이었다. 의경수험번호도 4444였는데 묘한 기분이었다.(의경시험 볼 때 확인하는 분이 흠칫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서울청 의경계 서무반장님이었음.) 같은 분대에는 나보다 한 살 어린 26살 선생님이 있었고, 연대를 다니다 온 성격도 목소리도 좋은 그러나 코를 심하게 보는 25살 친구가 있었다. 이제 갓 스무살이 된 제주도 친구 2명 그리고 스물 셋쯤 되었을 몇몇 친구들도. 이들은 나와 같은 분대였다. 우리를 담당하는 소대장은 서른 살 전후로 되어보이는 중사였다. 훈련소에 가면 '내무반 옆에 딸린' 작은 공간에서 담당 소대장과 모두 한 번씩 면담을 하게 되어있다. 그는 눈빛이 선한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또 상식적인 사람처럼 보였다.


우리를 담당하는 분대장 조교들은 병장인 부산 출신의 A군, 말투가 재밌고 에이스인 상병 B군, 누가봐도 착하지만 뭔가 빈틈이 슝슝나 보이는 일병 C군이었다.

병장 A은 이 사람과 정말 닮았었다. 개인적인 고민을 서로 털어놓을 정도로 친해졌다.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모두 좋은 사람같았다. 우리 분대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제법 있어서, 처음 3일동안은 훈련병들끼리 서로 존댓말로 대화했다. 병장 A군은 옛날 웃찾사에 나온 호이짜 하는 개그맨 김기욱과 매우 닮았었다. 카리스마가 있었고, '병장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었다. 그는 우리 기수가 자신이 실제 분대장으로 근무하는 마지막 기수라고 했다. 상병 B군과는 따로 이야기한 적은 없으나 정말 시범을 너무나 잘해서 저런 사람이 조교를 해야하는구나 싶었던 사람이었다. C군은 '선한' 사람 같은데 뭔가 어리숙했다. 딱봐도 아주 어리고 짬이 부족해보였다. 훈련병들끼리는 '사실 이병인데, 이번에 거의 첫 기수라 일병으로 올려준거다'는 말이 오갔다. 아무튼 선한 사람이었다. 이런 저런 고생도 많이했다. (비오는 날 각개전투 시범하다 입에 흙도 들어감)


그러다 일주일쯤 지나,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식당 앞에 누군가 나를 불렀다.

"희철 형님!"

"어..00? 너 어떻게 여기있어..?"

아는 얼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병 황00 군이었다. 그는 고3때 우리 회사에서 하는 교육을 수강한 학생이었다. 알고보니 황00군은 23연대 연대장의 운전과 부속실을 책임지는 보직을 맡고 있었고, 내가 입대한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 자기 연대일까해서 나를 찾아봤던 것이다. 조교들은 황00군과 같은 연대 소속이었고 황00군은 연대장을 보좌하는 자리에 있었으므로 무리 없이 잠시 시간을 내주었다. 황00군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와 잠시 이야기를 한뒤 PX에서 먹을 것들을 사서 우리 분대로 (몰래) 가져다 주었다. 병장 A가 '커버'를 쳐줬다. 원래라면 안되는 일이었다. 나는 참 감사한 인연이 많구나 싶었다. 그런데..


비상적인 문화 속 '좋은 개개인'들. 연대장은 연대의 신


- 연대장은 신, 아무도 그를 말릴 수 없어!

육군 훈련소는 여러 연대로 구성되어 있다. 훈련소장은 투 스타에 해당하는 소장이다. 하나의 연대는 '연대-대대-중대-소대-분대'로 쪼개진다. 연대장은 '대령'이다. 내가 잠깐이나마 본 군 문화 중 가장 신기한 것이 '윗 사람이 어떻게 볼까'에 필요 이상으로 역량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아마도 인사권 탓일 것이다. (나중에 경찰 조직에서도 느낀 바지만, 두 결이 상당히 다르다.) 연대장은 연대의 신이다. 연대장의 의중은 그 휘하 군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다. '연대장님이~' '연대장 님께서' 이런 말을 한 달동안 9229번쯤 들은 것 같다. 아무튼 그만큼 연대장의 '심기경호'는 중요하다. 내가 아는 그 분이 맞다면 이 분이..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710010004

연대 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를 막을 수가 없다.

이 분일 것이다. 훈련소에서는 훈련병들이 집단으로 모이는 교육이 여러 번 있다. 연대장이 하는 교육은 내 기억에 한 번이었다. 연대장 교육이 시작되기전 소령인 교육대장은 한참동안 당부 사항을 말했다. "연대장님은 약간 옛날 군인이에요. 여러분이 빠릿빠릿하고 잘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아하실 겁니다."


흉상하니 생각남.

'앉은 채로 차렷'이라는 정말 이상한 동작이 있다. 의자에서 등을 떼고 흉상처럼 고정되어있는 자세다. 우리는 잠시 앉은 채로 차렷 상태로 연대장을 기다렸다. 곧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와 함께 연대장이 입장했다. 이어진 연대장의 교육은 정말 두서가 없었다. 별 상관없는 아무 말들이 이어졌다. 대부분 어른들이 많이 하시는 얘기들이었다가  "내가 여러분 훈련 힘들게 시키라고 지시했다. 훈련은 힘들어야 한다. 그래야 남자한테 좋다" 이런류 말로 마무리되는 정말 뭔 내용인지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황00군에게 어떤 사람이냐 물었을 때, 개인적으로 잘해주시고 '좋은 분'이었다는데.


- 자기계발의 화신, 열심맨 흙수저 교육대장

다른 집체 교육에서 대대장에 해당하는 교육대장(소령)의 교육도 있었다. 그는 서른 여섯 정도로 보이는 젊은 사람이었다. 자신이 학군단 출신이고, 흙수저 였으며 아직 결혼은 하지 않(못 x)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동산으로 큰! 돈!을 벌었으며 여러분도 할 수 있다! 고 말했다. 당연히 자기계발의 중요성도 끊임없이 강조했다. '자기계발과 자기발전' 이외의 관점을 그의 강의에서 조금도 찾기는 어려웠다. 사회정의라든가..왜 자기 밖의 고민들 있지 않은가. 아무튼 그는 '열심히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강의 중 '연대장님이' '연대장님께서'를 가장 많이 말한 사람이었다.


- 장동민 닮은 사람은 좋아보이는데, 주관이 없는 중대장

중대장은 90년대 초반에 군인이 된 원사였다. 말투는 완연한 민간인 아저씨였고, 장동민을 닮았다. 가끔하는 간담회에서 '좋게 좋게' 잘 풀어가려는데 결국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레토릭(말장난)에 능한 사람이었다.


어떤 날은 주말이었다. 모든 중대원들에게 연무관(수천명이 들어갈 수 있는 강당)에서 하는 기독교 세례식에 참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몇몇이 '이걸 왜 가야합니까!' 분대장 조교에게 따지듯 묻자. 모 조교는 말했다. '연대장이 기독교야. 아마 훈련소장도 기독교일거야. 그 자리에 둘 다 올거야. 그거 알고 알아서 중대장이 기는 거야. 우리도 할 수 없어..'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건 우리 중대 모두가 세례식에 가야만 했다는 것이다. 세례식에 계속 있다보면 내 앞에 수 백명이 있고 컨베이어 벨트식으로 내 차례가 다가오는데, 나와 내 일행들은 '용감히' 그 줄에서 도망쳤다. 나오는 길에는 세례를 받은척하고 초코파이도 챙겨왔다. (나는 후에 불교에서는 법명을 받았다...중요 포인트는 자유의지로 갔느냐는 것이다. 경찰로 넘어와서는 '프란치스코'가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알렐루야!) 촌극이 따로 없다.


사격점수를 조작하고, 탄피가 얼굴에 튀어도 응급조치를 안하는 중대


군대에 오면 그냥 적응하면 된다

그 외 중대에서 있었던 신기한 일들은 간결히 음슴체로 정리하면...

1. 딱 한 벌 지급받는 신형 디지털 군복은 원래 수료식 때만 입고 입지 않음. 전역 후 예비군 훈련 때까지 입어야하기 때문임. 그런데 연대장이 각개전투에 온다는 말이 있었고, 중대 실수로 훈련용 디지털 군복 세탁이 제 때 오지 못함. 각개전투 날 폭우가 옴. 통일한다며 모두 신형 디지털 군복을 입게 시킴. '우리 자산이라 잘 아끼라며..' 폭우 탓에 연대장은 오지 않음..일병 C가 시범을 보이다가 열심히 흙을 먹은 그 날임.

2. 연대장의 중대 방문이 예고되자. 모든 장비들을 정말 개처럼 닦음. 노르망디에서 온 삽은 아무리 닦아도 안됨. 방독면도 너무 오래됨. 아무리 해도 먼지가 안지워짐. 그러자 로션을 발라서 광택을 내라고 함. 방송에서는 연대장이 물어보면 다음과 같이 대답하라고 하루종일 방송이 나옴. '미지근한 물에 00도에 넣어서 세척 후 마른 천으로 여러번 닦고 응지에서 말렸다' 이 날 연대장은 장비가 더럽다며 화를 냈다고 함.

3. 연대장이 오는데 화장실에 물기가 있으면 안되니 화장실, 샤워장 청소 후 문을 잠궈버림. 반나절 동안 화장실을 못씀.

4. 사격 점수가 조작됨. 중대의 사격 합격률이 96%가 넘는다고 대대적으로 자랑했었음. 사격을 잘하는 사람들에게 만발 실적을 주기 위해 여분의 탄을 더 쓰게함.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다시 못쏨. 그래서 모두 합격 처리..;;

5. 사격때 탄피가 얼굴에 튀어서 2도 화상을 입은 동기가 있었음. 응급조치가 이뤄지지 않음. 하루가 지나서야 집에 연락함. 이 친구는 촛불 집회 때도 같은 지역을 커버해서 가끔 보았는데, 그때도 흉터가 남아있었음.

6. 지역 상수도가 터져서 물이 며칠 안나온 적이 있음. 훈련 강도는 그대로인데, 마실 물이 없음. 방송으로 '우리가 커버를 치는 거니까 500ml 물을 배급할테니 님들 이번 주에 물 받은 적 없는 거야 알겠지?' 라고 나옴.


아니 뭐이리 많아? 써놓고 보니 간결하지가 않다. 요지는 연대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중대 간부들은 결과적으로 '나쁜 선택'들을 암묵적으로 강요했다는 것이다. 이들 중 '악인'은 아무도 없었다. 연대장이 이렇게 꼼꼼히 '마이크로'한 지시를 했으리라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 사람만의 입만 바라보는 폐쇄적인 '심기경호' 문화가 저렇게 디테일한 사건에서 '나쁨'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 따름.


백미는 수료하는 주에 있었다. 큰 강당에서 모든 연대원들을 모아놓고, 소원수리를 실시했다. 훈련소 감찰 소속의 부드러운 말씨의 장교가 솔직하게 적어달라 말했다. 연대보다는 상위니까 믿을만 할지도. 내 동기인 누구는 가혹행위 관련 항목에 '.'을 찍었다고 한다.


나는 '촌극'들을 차마 적지 못했다. 그냥 바라는 바에 이렇게 적었다.


'이 곳 육군 훈련소는 지나치게 많은 인원을 수용하며, 비좁습니다. 저는 이것이 재원 부족때문임을 알고 있습니다. 또 저의 이러한 요구가 당장의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함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탁드립니다. 숭고한 국방의 의무에 맞는 경험을 훈련병들에게 주십시오. 시설을 개선하고, 개인시간을 보장해주길 바랍니다.'


며칠 후 중대장이 중대원이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 혹시~ 점을 찍은 훈련병은요. 이따가 잠깐 중대장을 보러 와주세요~"


촌극도 이런 촌극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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