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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철 Aug 13. 2019

일본은 왜 한국 경제를 공격하는가?

일본은 식민지배를 딛고 일어난 선진국 한국을 굴복시킬 수 있는가?

빠른 결론 - "일본은 정체성의 상처를 입었다"

일본 아베 내각과 정권 핵심부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 관련 징용판결이후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를 강행했습니다. 그들이 망하는 이번 조치에도 나름의 논리(내각관방 - 안보 상 이유, 경제상업성 - 수출관리 운영 재조정 등)는 있습니만 이는 정말 명목상 논리일 뿐입니다.


사실 그들은 이번 판결을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당당한 일본의 국가정체성을 위협한다.

아베와 정권 핵심부가 바라는 일본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 미국이든 어느 나라이든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꿈꿉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은 그들이 바라는 일본의 정체성(군대를 가진, 미국에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부정하고 크게 위협합니다.


급진적인 결론이라고요? 하지만 경제적 조치로는 이해가 안되는 일을 해석할 다른 '혼네'를 찾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결론으로 이르게 된 나름의 근거들이 여기 있습니다.



끝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일본

막대한 흑자를 보는 한국과의 무역. 경제논리로는 이해가 안가는 조치.

98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

2019년 8월 2일. 일본 내각은 끝내 주요 무역국가에 대한 우대 리스트인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무역 우대 리스트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면, 일본산 ‘전략물자’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일본당국의 허가를 일일히 얻어야 합니다. 한일은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인데, 선적에만 최대 3개월 정도가 걸릴 수 있습니다. 또 전략 물자라는 것이 꼭 무기를 만드는데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ICT 산업과 같은 첨단 산업을 위한 품목들 일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아주 쉽게 말해 이번 조치로 일본으로부터 우리 산업에 필요한 주요 물품을 사는 과정이 아주 번거로워 집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이번 사태를 설명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이번 조치는 한국에게도, 일본에게도 경제적으로 큰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일본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보지만, 무역 전체 구조에서 보면 일본과 무역하는 것이 이익이었습니다.


한국이 산업에 필요한 중간재를 일본에서 들여오면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죠.


1) 지구상 어떤 국가보다도 짧은 리드타임(leadtime- 주문,제작,선적,도착까지 걸리는 시간)

2) 타국가 수입 대비 원가 우위

3) 자체 생산 대비 원가 우위(국제적 분업의 핵심은 가장 싸게, 잘만드는 것에 각 국가가 집중하는 겁니다.)

4) 기술적 우위와 안정성(어떤 품목은 일본이 타국가보다 더 잘만듭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경제논리로는 한국과의 무역을 불편하게 만들 이유가 하등없습니다. 일본은 매년 한국과의 무역에서 막대한 흑자(18년 기준 2.2조앤. 우리돈으로 20조원이 넘음.)를 거둡니다. 아무리 일본의 경제구조에서 인구 1억 2천만의 내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수출보다 크다고는 하지만, 무역에서의 이익은 일본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한국은 중동에서 석유를 사오고, 일본에서 주로 중간재을 사오고, 이를 완성품으로 만들어 세계 시장에 팝니다.



2018 일본 무역 흑자 규모에서
  1미국 ≒ 3한국

12년 아베 2차 내각이 성립한 이래, 일본 정부는 6년동안 공격적인 수출확대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이 기간동안 일본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2년 21%에서 18년 45%로  2배 이상 증가합니다. 일본 경제 정도 되는 덩치가 저렇게 급진적인 변화를 이뤄낸다는 것은 정책적 총력을 기울이고도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수출 확대 정책은 아베 정권 경제 정책의 핵심 중 핵심입니다. 이를 위해 공격적으로 엔화의 가치를 낮추어 수출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아베노믹스입니다.


한편 엔화 가치가 하락하자 일본의 관광 산업도 살아났습니다. 매년 2천만명이 넘는 외국인이 일본을 찾았고, 그 중 거의 1/4은 한국인입니다. 관광 수익은 무역과는 또 별개 이익으로 누계가 되기 때문에 한국이 일본에 주는 경제적 이익은 정말 막대하고 막대합니다.



즉 실질적으로 한국을 적대시하는 이번 조치는 '경제 논리'로는 일본에 이익이 안되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 손해여서 해서는 안되는 짓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경제 논리가 우선시 되면 경제 전쟁을 걸면 안됩니다. 혹자는 경제 전쟁이라는 말은 과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이번 조처가 한국 산업 이윤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을 정조준 했다는 측면에서, 이로인한 피해규모 이상으로 상징적인 의미가 큽니다.


"일본은 다시 당당해져야 한다"

명목 논리와는 다른 아베와 정권 수뇌부, 우익들의 '혼네'

한국을 통해 '전략 물자'가 북한에 반출된다고 주장한 스가 관방장관

이익은 거의 없고 손해만 있는 일본 정부의 이번 조처에도 나름의 명목 논리는 있습니다.


1) 수출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안보 문제다! - 스가 관방장관

2) 적절하지 않은 한국 내 수출입 관리 제도 운영에 대한 재조정 과정이다! - 세코 경제 산업성

3) 기본적으로 경제 산업성 소관이지만, 한국 대법원 징용판결이 양국 관계 신뢰를 저해! - 고노 다로 외무상


하지만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군이 주둔하고, 아시아에 드문 자유시장 경제, 민주주의 국가이며, OECD 회원국인 한국이 무역과정에서 일본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논리는 상식적으로 이상합니다. 그러면서도 미묘하게 부처간 명목 논리들도 달라서 이것만으로 경제 보복을 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국제외교잡지 포린 폴리시는 '일본이 한국을 대상으로 싸울 준비없이 전쟁을 시작한 것'이라 평합니다. 준비 이전에 명분부터 약하니 이러한 평가는 그런대로 타당해보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일본은 한국경제를 공격하는 것일까요? 이번 조치의 배경에는 명목논리나 숫자로 드러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일본어에는 '혼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하지 않는 속마음'라고 할 수 있는데 아베와 정권 핵심부의 혼네는 사실 한국의 존재가 그들이 바라는 '일본의 국가 정체성'에 큰 위협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추정'입니다만, 그렇다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권 국가에서 국가 정체성과 영토와 관련된 문제는 일반적으로 경제적 이익보다 우선합니다. 가령 우리는 독립 국가로서의 대한민국과 독도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말그대로 국가 존립의 근거인 국가 정체성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베와 정권 주축 세력은 어떤 세력이기에, 또 그들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한국이 자신들에게 위협이라는 '혼네'를 가지게 된 것일까요? 그들은 사고의 기저에 1) 2차대전 일본 제국주의 시기를 긍정하고 2) 한일강제 병합을 인정할 수 없으며, 3) 한국과의 관계를 상하관계로 보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식/비공식 석상에서 드러나는 언행들은 그러한 생각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최근 방일 한국 의원단에 면전에서 "과거 한국은 매춘관광국"을 운운한 에토 세이이치(아베 보좌관)의 평소 발언은 저러한 세계관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당연히 2차대전 당시에 잃었던 영토인 '북방영토'(쿠릴열도)와 잃었다고 사후에 주장하는 독도는 되찾아야할 대상이고, 제국주의 식민지 점령 시기 있었던 일이 현재에 영향을 주기를 바라지 않죠.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나해봅시다.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칩니다.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과거 위대한 미국으로 돌아가자는 겁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했던 말이기도 하죠. 미국 보수의 향수를 자극하는 문구이기도 합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여론조사에서는 연신 힐러리가 이기고 있었지만, 정작 뚜껑을 까보니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가 민의를 완전 반영하지 못한다고 해도, 트럼프에 대한 숨은 지지는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는 것입니다. 트럼프는 미국인들이(주로 백인 남성) 공공연하게 솔직하게 말 못하는 가치들을 말했습니다.


비슷한 정서가 일본에도 있습니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이 책의 미국판은 "미국을 사버리겠다!"고 외칠만큼 경제적으로 강성해진 일본의 자신감을 보여주는듯 합니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은 1989년 일본에서 발간된 서적입니다. 이 책은 발간되자마자 수백만부가 팔렸습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2차 대전 이후 일본은 미국에 굴종해왔으며, 이제는 일본이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다시 미국에 NO라고 말할만큼 힘있는 자존심있는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한창 세계 경제를 석권해나가던 자신감으로 '혼네'를 대놓고 표출한 것이었죠. 이 책에 우익들은 열광했습니다. 물론 당시 주류 일본 정치인들은 대놓고 저렇게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책의 판매량은 '생각보다' 많은 일본인들이 그 가치에 동감했음을 증명합니다.


로보캅3에서 사무라이 로봇과 대적하는 '레지스탕스' 로보캅(1993)

당시 일본인들이 자신감을 가질만도 했습니다. 일본은 세계 주요 제조산업을 평정했고, 85년 플라자합의 이후에는 넘쳐나는 유동성을 주체못하고 공격적으로 해외 자산을 사들입니다. 80년대말 90년대 초 미국 미디어에서는 일본발 경제 침공으로 미국인의 일상이 위협받는 모습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도그럴 것이 미국의 자존심 록펠러 타워가 일본 회사에 매각되고, 94년 무렵에는 일본은 세계 GDP에 17.5%를 차지했죠.(이후 GDP가 감소할 정도로 초장기 불황이 이어짐)


그리고 우리는 일본이 <미국에 NO라고 말했던 또다른 시기>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으로 반파당한 BB-39 애리조나
3국 동맹을 체결한 추축국 일본과 일본제국의 (일시적!) 최대 영토

제국주의 국가였던 과거 일본은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아시아를 대표해 열강에 맞선다는 논리로 주변 국가들을 침략했습니다. 제국주의 시절 일본 최대 영역은 비록 일시적이지만 사진으로 보이는 것처럼 동북아 동남아 전반을 차지할 정도로 <일시적으로> 광대했습니다. 많은 일본 우익들은 저 시기를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하며, 진심으로 그리워 합니다. '그때 우리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현 자민당 구성 핵심중 상당수가 2차대전 전범이나 부역자들의 후손들임을 감안하면, 이들의 '혼네'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정서는 단순한 아쉬움이 아닙니다. 현 일본은 제국주의 일본으로부터 '단절'된 적이 없었습니다. 현 일본 총리인 아베는 일본의 98대 ‘내각총리대신’입니다. A급 전범인 도조히데키는 일본의 40대 '내각총리대신'입니다. 초대총리대신은 이토 히로부미입니다. 과거에 대한 청산없이, 단절없이 일본국은 이어집니다.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40대 총리.

현 일본은 명목상으로는 패전후 1947년 헌법이 개정되어 새로운 국가가 출발했다고 보아야겠지만, 인식상으로나 의전상으로는 그렇지 않은 겁니다.(상해 임시정부 계승을 기치로 내건 한국도 초대 대통령은 정부수립 이후로 칩니다.) 우익들과 상당 부분 생각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이는 현 일본 자민당 정권의 2인자이자 전 총리인 아소 다로. 그는 미국 국무장관을 지난 콘돌리자 라이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2차 대전 승전 관련 행사였던 모양입니다.


"전쟁이 조금만 더 길어졌다면 이 자리에 (미국, 영국 등 국기 대신) 독일, 이탈리아, 일본 국기가 있었을 겁니다."
콘돌리자 라이스 회고록 <최고의 영예>, 진성북스. 756~757 페이지.


라이스 입장에서는 이게 미쳤나? 싶었을 겁니다. 실제로도 대꾸를 안하고 무시한 모양입니다. 아마 전쟁이 길어졌으면 일본 제국은 보다 더 궤멸적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 애시당초 일본은 미국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압도적인 국력차가 있으니까요.

아소다로 - 92대 내각총리대신, 현 부총리 겸 재무대신

아무튼 47년 현행 일본 헌법 만들어진 이후 2차대전 전범국이자 패전국인 일본은 군대를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독자적인 군사작전도 할 수 없고 국가간 교전권도 없습니다. 오직 방위만을 위한 자위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이미 일본은 상당한 수준의 실질적인 군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헌법에 의해 공식화될 수 없고, 이에 따라 활동 제약이 많습니다.

연초 일본 해자대의 우리 함정 위협비행 당시 공개 화면. "JAPAN NAVY?"
JAPAN NAVY는 바다 위에는 없습니다.(야마토의 자매함인 무사시)

패망한 일본 제국의 일본군은 일본국의 자위대가 되었습니다. 일본은 자위대를 군대라 부를 수 없습니다. 영어 사용으로 인한 단순 헤프닝이라 믿고 싶습니다만, 연초 일본 자위대가 한국 해군 함정을 위협비행하며 보낸 교신에서 그들은 자신들을 NAVY(해군)이라 호칭합니다.

현 독일과 완전 단절된 제3 제국의 상징 하켄크로이츠와 욱일승천기. 그리고 일본 해상 자위대의 깃발.

또한 해상자위대는 욱일승천기를 여전히 그들의 상징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2차 대전 일본 제국주의 시기를 단절할 이유나 관련된 문제인식이 있다고 보긴 어려워 보입니다. 가장 기초적인 상징조차 그대로 이어가는데, 정신과 사상에서 단절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죄를 지은 적이 없으니 반성도 없습니다. 사실은 오히려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한국에 대한 식민 지배도 <대동아공영>을 위한 계획 중 하나였을 뿐이며, 피해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본의아니게 발생한' 부수적 피해일 것입니다. 그런데 2012년 한국 대법원은 '배상', 즉 불법적 행위에 대한 금전적 책임을 지라는 판결을 했습니다.


아베와 현 자민당 정권 수뇌부, 우익들의 세계관에서는 이는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부정하는 정체성의 실질적 위협입니다. 아시아 국가에 '공식적으로 배상'을 하는 실질적 선례가 생기면 다른 피해국가들도 일본에 배상을 요구할지 모릅니다. 정체성을 위협하는 한국에 일본 우익 정권은 행동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미국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 한국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한편, 아베와 집권 수뇌부는 다시 군대를 가질 수 있는 ‘보통' 국가로 일본이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강한 일본을 말입니다. 그들은 패전국으로서 일본에게 주어진 제약이 과도하다고 생각합니다.


2018년은 메이지 유신 150주년이었습니다. 2018년에 아베 신조는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에 새헌법을 공표하겠다 선언했습니다. 물론 아키히토 텐노가 생전 퇴위를 발표하는 등 실질적 방해를 하면서 개헌 논의를 위한 시간이 지연됐고, 2019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단독 개헌선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아베와 그 세력에게 앞으로의 2~3년은 아주 중요한, 어쩌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개헌의 적기일지 모릅니다. 12년 전 붕괴된 아베 1차 내각이 결코 달성할 수 없었던 바로 그 목표를 말입니다.


선진국 한국이 이루어낸 민주적, 경제적, 문화적 성장

식민지배를 딛고 일어난 선진국 한국. 아베와 우익의 <당당한 일본>에 위협이 되다.

서울의 야경

과거 한국은 선진국에 대한 컴플렉스가 심했습니다. 이제 막 서른 당한 제가 학교를 다닐때, 학교에서 우리는 개발도상국을 벗어난지 얼마되지 않았으며, 선진국이 아니니 '중진국'이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좀 이상한 용어입니다. 국민소득은 1만 달러를 조금 넘겼고, 아직 올라가야할 고지가 머니 우리는 '선진국'은 아니라는 말이죠. 그러면서도 개발도상국은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자부심은 있었습니다.


이제 한국은 누가 뭐래도 '선진국'developed country 입니다. 어떠한 학술적 분류로도 한국을 선진국이 아니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고, 인구도 5천만이 넘고, 민주적 정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정권 교체가 2번 있었을 정도로 독재와도 거리가 멉니다. 단순히 잘 살고 강하더라고 1당 독재나 왕정으로 다스려지는 체제도 아닙니다. 문화적으로도 한류를 창출할 정도로 모자라지 않은 소프트파워가 있습니다.


이러한 한국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성취는 2차 대전이후 독립한 식민지 국가(제국주의 피해국) 중에서는 전세계에서 유일합니다. 한국이 가진 특수성은 정말이지 너무나 특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제국주의 야욕의 피해로부터 일어나, 동족상잔의 비극을 딛고 당당히 '선진국'으로 일어섰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본을 이길 수 있다. 이겨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이 일방적으로 한국을 굴종시킬 정도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힘이 없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계 경제를 주름잡던 과거 일본에게 한국은 그저 과거사 문제로 껄끄러운 개발도상국일 뿐이었습니다. 1988년 한국의 GDP는 일본의 8%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은 절대 크기 비율에서 33%에 도달했지요. 또 GDP를 인구수로 나누면 1인당 누리는 삶의 질은 일본에 떨어지지 않습니다.(1인당으로 보면 PPP상으로나 절대 GDP 상으로나 괄목할 차이는 없습니다. 물론 경제의 절대 크기는 중요하죠.)


그러니 아베의 최측근 에토 세이이치 같은 사람이 한국 의원들 앞에서 '과거 기생관광국'을 운운하며, 한국을 비하하는 것도 사실은 이러한 사실들을 인정하기가 싫은 겁니다. 덧붙여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우익들에게 한국은 눈엣가시입니다.



경제/문화 선진국, 민주국가 대한민국은
<당당한 일본> 구상에 너무나 큰 방해가 된다

한국의 존재는 현재 일본을 이끄는 아베와 자민당 핵심부에는 너무나 큰 방해가 됩니다. 아베와 우익 세력은 '당당한 일본',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일본', '미국에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군대를 가진 일본'를 꿈꿔왔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목표들이 모순적이라는 겁니다. 당당할 수는 있고, 패권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전범국이 과거 청산 없이 어떻게 '존경'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일본은 <군사력의 확장 = 과거 제국주의 팽창의 위험>으로 인식되는 것을 극도로 꺼립니다.


일본은 전쟁범죄로 인한 인권 침해 사실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립니다.


그라나 과거 일본 제국주의 야욕에 피해를 입은 주변 국가들인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은 서방의 잠재적 적국이거나 우호적이지도 않습니다. 실제로 일본은 미국의 잠재적 적국인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군비 증강,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견제를 위해 '재무장'에 대한 지지를 얻고 싶어합니다. 어찌보면 북중러의 위협은 실재하고, 식민 지배는 이미 수십년이 지난 일이니 유야무야 묵인할 수도 있겠죠.


서구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 일본은 거의 유일하게 1) 민주주의 체제 2) 자유시장경제가치를 공유하고 있고, 3) 문화적으로도 매력적이죠. 돈이나 권력이 아닌 힘의 개념인 소프트파워 순위에서도 일본은 늘 상위권이었습니다. 대다수 서구인들이 아베와 우익의 '혼네'를 알 턱이 없습니다. 미국 정도를 제외하면 서방국가들은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정도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과거 제국주의 범죄에 대한 실질적 반성과 단절없이 일본은 세계속에서 존경받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 1) 민주주의 체제 2) 자유시장 경제를 공유하며 문화적으로도 무시하지 못하는 수준의 매력적인 국가가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를 입은 국가이며, 일본에 재무장에 반대한다면? 게다가 그 국가가 서방 선진국도 무시못할 '선진국'이라면?


한국의 힘이 강성해질 수록, 일본 우익 정권의 '혼네'는 만천하에 폭로되고 맙니다. 아무리 국제 사회가 각축의 장이라지만, 문명국가 간의 관계에서는 명분이 약하면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이러한 논지로 쇼고 스즈키 교수는 왜 일본의 우익과 헌법개정주의자들이 한국을 존재론적 '위협'으로 여기는지 논문을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


명백히 말해 제국주의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허구적 가치로 주변국가를 침략하고 텐노아래 총화를 강요하며, 보편적 인권을 침해했습니다. 또 일본 정도 되는 위치의, 민주주의를 공유한다는 국가가 헌법 개정씩이나 되는 중대 사안을 안보적 요인만으로 부족한 명분으로 해낼 수 있다면 건강한 사회는 아닐 것입니다.


한국은 헌법 전문이 말하는듯 3.1운동의 정신 아래 일어난 민주공화국입니다. 한국민에게 식민 지배의 아픔은 헌법에도 새겨진 현재의 역사입니다. 또한 한국은 강력한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출된 권력이어도 삼권분립에 따라 사법부의 판결에 간섭할 수 없습니다. 본질적인 부분은 침해할 수 없고, 다만 상호 견제할 따름입니다. 때문에 강제 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행정부는 간섭할 수는 없는 것이며, 이와 같은 대한 대응을 요구한다면, 민주적 대표성을 지닌 한국의 삼권 분립과 대외적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나치 희생자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은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
“진심으로 사죄” 독립투사 앞 무릎 꿇은 하토야마 전 총리(재임 당시 민주당 소속)

역시 전범국가였던 독일이 주변 국가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EU의 주도국가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단절 덕분이었습니다. 그들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주변국에 위협이 아님을 오랜 시간 설득해온 것입니다.(물론 독일의 반성은 주로 주변국/강대국에만 국한되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대다수 일본인들이 제국주의 시대를 긍정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마도 2차 대전 시기, 전쟁범죄나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이 없고, 끔찍한 전쟁이 있어서 안타깝다는 스탠스 정도일 것입니다. 하지만 투표율이 어떻든, 선거에서 아베 신조가 이끄는 자민당은 승리했고, 그들은 자신들의 정책이 정당한 지지를 얻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올 11월이면 아베는 일본 최장수 집권 총리가 되니까요.  


이춘식 옹과 함께 소송을 냈던 다른 3명의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는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싸우지 않을 수 있다면 싸우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

하지만 어떤 싸움은 피할 수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보편적 인권을 침해하고 식민 피해를 딛고 선진국으로 일어선 한국의 존재론적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의

선제 공격이라면 굴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떤 국가가 금력으로, 군사력으로 복속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국가로서 문명국가로서 책임을 직면하고 준수할 때, 진정으로 세계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국가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백범 일지 <내가 원하는 우리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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