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인지 발달
놀이는 우리의 뇌가 가장 좋아하는 배움의 방식이다.
- 다이앤 애커먼 (Diane Ackerman)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일 겁니다.
정말이지 눈이 번쩍 뜨이는 말 아닌가요.
초기 몇 년만 가이드를 잘해 주면 나보다 훨씬 똑똑한 아이로 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
나아가 영재로 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욕심이 샘솟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걱정이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보다 똑똑한 아이로 키우는 데 골든타임이 있다는 말이니까요.
혹여나 이 시기를 놓친다면 큰일 나는 것 아닌지 두려워집니다.
인간의 생애 중 짧디 짧은 이 시기에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안해지고 조바심이 생깁니다.
이와 같은 담론은 영유아교육 회사들이 상업적으로 차용하는 효과적인 도구가 됩니다.
잠시 마음을 놓치면 어느새, 몇 백만 원짜리 책과 교구들을 장만하고 진열하면서
놀이를 스케줄 화하고 학습처럼 강요하게 되기도 해요.
많은 책들과 교구들이 두뇌를 자극하기 위해 공들여 개발되었음은 당연하지만,
조금 힘을 빼고 마음 편한 자세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뇌에 균형 잡힌 자극을 주는 것은 놀이로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뇌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대부분의 포유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바로 먹고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인간만이 먹고 걷는 데에 1년 정도의 긴 시간이 걸립니다.
밥을 먹기 위해서는 모유나 분유, 아주 묽은 이유식, 재료를 잘게 다져 만든 이유식을 차츰차츰 먹는 연습이 필요하고
걷기 위해서는 배밀이, 앉기, 잡고 일어서기 등 일련의 순서를 거쳐 훈련해야 합니다.
인간은 포유동물 중에서 가장 미숙한 상태로 태어납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출생 후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적응하며 성장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는 상태,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태로 태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임신 여부를 정확히 알기도 어려운 임신 4주째에 이미 태아의 기본적인 뇌 구조가 형성됩니다.
뇌신경세포인 뉴런(neuron)은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여
임신 4개월 무렵 1천억 개가 넘는 뇌발달이 이루어집니다.
뉴런의 양적 증가와 함께 뉴런의 끝 부분에서
뉴런과 뉴런을 연결하는 신경통로인 시냅스 회로 역시 형성됩니다.
기억력, 이해력 등 인지기능과 관련된 시냅스가 더 많이, 더 촘촘하게 연결될수록
두뇌가 발달하고 지적 능력이 높아지는데요.
인간의 뇌는 필요한 만큼의 뉴런과 시냅스를 만들어 가는 대신,
일단 과잉으로 많이 만들어 놓고 어느 순간 불필요한 시냅스를 버리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추어
뇌의 구조와 기능을 다듬어 갑니다.
정원사가 풍성한 나무를 가꾸기 위해 잔가지는 잘라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뉴런과 시냅스의 증가는 유전과 영양공급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만,
자주 사용하지 않는 시냅스를 정리하는 선택적 소멸에 있어서는 환경적 요인이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즉, 시냅스가 유지되려면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자극이 필요합니다.
또한 시냅스가 더욱 강화되고 정교화되기 위해서도 자극이 필수적입니다.
이 자극을 어떻게 주느냐가 뇌발달에 있어 핵심이 됩니다.
그렇다면 놀이와 인지발달은 어떠한 연관성이 있을까요.
스위스의 발달심리학자인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에 따르면
성장 단계에 따라 변화하는 아이들의 놀이가 인지, 신체, 정서, 사회성을 발달시키는 데까지
관여한다고 하였고 이 논리는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확고한 과학적 근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놀이를 통한 환경적 자극의 경험은
뇌세포의 형성뿐만 아니라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 물질을 증가시켜
인지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신경전달 물질은 정보가 시냅스를 통과해 다른 뉴런으로 전달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데,
이 신경전달 물질의 작용을 빠르게 활성화시켜
인지적 정보처리가 가속화되게 하는 것이 바로 풍부한 놀이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뇌의 형태나 구조, 기능이 아직 완전히 형성되지 않아
뇌가 변화할 수 있는 여지(뇌의 가소성)가 많은 아이들에게 질 높은 놀이 경험이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는 뇌발달에 치명적입니다.
아이가 감당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활동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을 분비시켜 시냅스의 손상을 가져옵니다.
이는 소아 우울증이나 틱 장애 등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초기에 요구되는 놀이 경험이란 것이 엄청난 비용이 드는 것이거나 획기적인 것일 필요는 없습니다.
심리적인 부담감과 스트레스 없이
부모와 함께 긍정적이고 행복한 시간을 충분히 쌓아 나가는 것이면 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이는 세상을 이해하고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것을 배웁니다.
생후 3년은 일생 중 뇌가 가장 폭발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시기입니다.
우뇌, 좌뇌, 어느 한쪽만 중요하다 할 수 없이 전두엽, 두정엽, 후두엽이 골고루 발달하는 시기이므로
뇌의 성장급등기(brain growth spurt)라고도 부릅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오로지 반사능력에 의존하여 반사적 행동을 보이다가,
이후 자신의 신체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때 까꿍, 잼잼잼, 도리도리, 짝짜꿍처럼 신체를 많이 사용하는 체험을 해주고,
다양한 감각을 경험하도록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는 점차 자신의 신체 외부에 있는 것에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고,
자신이 행동함에 따른 결과에서 즐거움을 느껴 계속 반복하게 됩니다.
이때 건드리면 움직이거나 소리가 나는 놀잇감, 걸으면서 끄는 놀잇감, 흔들말, 부드러운 공처럼
신체를 이용해 조작하는 놀잇감을 제공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자연과 주변을 체험하고 체험한 것을 표현하고자 할 때,
스스로 만들고, 합치는 과정이 가능한 블록 놀이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놀이로써 주변 환경을 탐색하며 적응할 수 있고
보다 성숙한 형태로 소근육의 협응이 이루어집니다.
다만 어느 한쪽으로 편중된 학습이나 교육이 아닌
오감의 뇌, 감정의 뇌에 초점을 맞추어 놀이를 통한 상호작용과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뇌의 이마 부분에 해당되는 전두엽은 사고, 판단, 주의집중력, 언어, 감정 등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기능과 작용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CEO 역할을 담당합니다.
심지어 인간의 도덕성과 인간성까지도 담당하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지적 기능과 성품의 기초를 정립한다고 합니다.
때문에 전두엽에 이상이 생기면 충동적이고 감정 자제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4-6세 유아기에는 전두엽이 가장 활발하게 발달합니다.
이때 놀이가 확장되고 다양해지면서
친구와 함께 노는 연합놀이가 나타나며, 놀이지속시간도 길어집니다.
더욱 활발한 대근육 놀이, 상상놀이, 협동놀이, 사회극놀이가 가능하며,
소근육도 발달하여 쌓기 놀이, 점토놀이와 같은 창의적이고 조작적인 놀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
놀이 속에서 자신과 또래의 관점으로 사고하는 법을 알 수 있도록
또래와의 놀이 시간을 마련해 주고,
물놀이, 모험적인 운동놀이 등을 제시해 주는 것도 좋습니다.
이 시기에는 지적 자극에도 민감해지므로 학습과 연관된 수, 분류, 언어놀이 등에 관심을 갖게 되지만,
놀이를 통해 교육을 시키려는 목적을 가진다면 아이는 금세 흥미를 잃을 것입니다.
놀이를 통한 학습은 7세부터 욕심을 내는 것이 좋아요.
뇌발달에 있어 영유아기가 중요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학습과 직결되어서는 안 됩니다.
뇌는 단계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학습을 위한 놀이를 시도한다고 해도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고요.
인간의 언어는 주로 측두엽에서 담당합니다.
특히 좌측 측두엽에서는 언어라는 상징이 갖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고, 말이라는 형태로 표현하도록 만들어줍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효과적인 독서와 쓰기 훈련이 가능하고,
이전까지 모국어를 습득했다면 이후로는 모국어와 다른 언어를 구별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급격하게 성장하므로 효과적으로 외국어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공간지각력, 수학·과학적 사고력 등은 주로 두정엽에서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탐구, 실험, 관찰 등 입체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여전히 놀이를 좋아하며 놀이를 통해 학습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도 해소는 물론, 장기적 기억력, 추리·추론 능력, 문제해결 능력, 주의 집중력의 발달을 위해
신체 활동이 가미된 놀이는 여전히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퍼즐, 미로 찾기와 같은 도구를 이용한 놀이나 끝말잇기, 보드게임, 규칙이 있는 게임과 같이
승부욕을 자극하는 경쟁적인 놀이, 신체놀이를 제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의 눈으로 보기엔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불필요하게 반복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아이는 놀 때, 두뇌가 전체적으로 가동되어 진지하게 세상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때 형성된 뇌신경세포는 시냅스의 재배열 과정, 패턴화, 네트워크 형성 등의 중요한 과정을 따라
전 생애에 걸쳐 발달합니다.
으깨고, 찢고, 뽑고, 던지며 뇌가 자라고 있습니다.
또 나아가 간호사가 되고 베개로 건축을 하며 뇌가 자라고 있지요.
마음이 편하고, 몸이 안전한 상황에서의 여러 자극들로 아이의 인지가 발달합니다.
아이의 놀이를 믿어 주세요.
김수영, 정정희, 김수임(2017), 놀이지도, 양서원
박찬옥, 정남미, 곽현주(2016), 놀이지도, 양성원
조형숙, 안혜준, 송승민, 권희경(2016), 놀이지도, 파워북
신성욱(2014),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 어크로스
EBS <놀이의 반란> 제작팀(2013), 놀이의 반란, 지식너머
신은수(2002), 놀이와 유아,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놀면 뇌파가 달라진다… 전두엽 발달에 큰 도움", 머니투데이, 2017년 11월 9일,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7110113095340302&typ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