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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맥상 Mar 25. 2024

지금 바로
아이에게 쥐어줄 수 있는 풍요

놀이와 정서 발달

곰사냥을 떠나는 가족에게 

중요한 것은 곰사냥이 아닙니다


그림책 <곰 사냥을 떠나자>를 읽어 보셨나요? 

제목만 보면 곰 사냥을 떠나는 이야기일 것 같은데, 

책을 끝까지 읽으면 그저 한바탕 놀고 온 가족을 볼 수 있습니다. 

노래 부르기를 시작으로 비탈에서 미끄럼 타기 놀이, 물놀이, 진흙 놀이, 

숨바꼭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 잡기 놀이와 같은 온갖 종류의 놀이를 함께 하는 가족. 

긴장감 넘치는 놀이를 끝낸 가족은 이불 속에 행복과 유대감, 

안정감,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까지 켜켜이 덮고선 잠에 듭니다.

단순히 포근한 그림과 유쾌한 이야기 때문만이 아니라

따뜻하면서 신명나는 가족의 정서를 독자 역시 느낄 수 있기에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걸작 그림책이라 불리는 것 같습니다. 





옳게 느껴야

옳게 행동한다


이 책에서 잘 나타나는 ‘정서’는 

내·외부의 어떠한 자극으로 인해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모든 감정 상태를 포함하는데요.

사전적으로 정서는 생리적인 각성과 표현적 행동, 그리고 사고와 감정을 포함한 의식적 경험의 혼합체라고 정의됩니다.


정서는 영아기에 발달하여 만 2세가 되면 성인과 같이 분화되어 나타납니다. 

2세 전까지의 정서는 기쁨, 분노, 두려움 등이 분리되지 않고 발현되는데요.

기쁘면 기쁘기만 한게 아니라 다른 정서들도 부차적으로 느낍니다.

영아기의 정서는 다층적인데다가 표현이 순간적이고 격렬하지만,

다양한 정서를 경험하고, 그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경험하면서

점차 균형적이고 안정적으로 발달해갑니다.


정서는 우리의 생존을 증진시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즉, 생존과 생산 및 사회 활동에서 우리가 어떤 정서를 경험하고

그 정서가 사고와 행동에 옳은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이 

정서의 역할이에요.

외로움을 느껴 사회생활에 적극 참여하게 하고, 

두려움을 느껴 위험으로부터 도망치고, 

승부욕이 생겨 보다 큰 성취를 이루게 되는 것처럼요.


특히 자신과 타인의 정서를 잘 인식하고 표현하며 조절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가리켜 

정서지능 또는 감성지능(EQ)이라고 하는데요, 

동명의 책을 저술한 골먼 (Goleman 1995)은 

정서지능이 사회성발달과 문제해결력에 중요한 요인이 되며 

이러한 정서지능의 발달이 삶의 성공요인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보았습니다. 


정서지능 발달의 토대가 되는 것은 ‘유아기’ 정서적 경험이며, 

특히 유아기의 ‘놀이성’이 정서지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놀이는 애착을 만들고
애착은 긍정적 정서를 만든다


내 아이는 내가 못 가르친다고 합니다.

맹자도 내 자식은 내가 직접 못 가르친다고 단언했고, 공자도 마찬가지였어요. 


아이를 가르칠 때의 기본적인 태도는 못마땅함이고, 

기본적인 관계는 일방적이고 수직적입니다. 

어디 좋은 말이 나가던가요. 

10분만 지나면 화가 나서 얼굴이 벌개지고 몇 마디 툭툭 던지게 되고 이러다 사이가 틀어질 것 같습니다. 


놀이는 어떨까요? 

일부러라도 눈을 자주 마주치며 미소를 짓고, 스킨십을 하고, 자연스럽게 칭찬을 해주고, 

서슴없이 감정을 표현하며 조정하는 상황을 아주 쉽게 만들어줍니다. 


Rudolph Schaffer와 Peggy Emerson의 초기 연구에서, 

영아는 자신에게 우유병을 더 많이 주거나 기저귀를 더 많이 갈아준 사람보다 

자신과 더 많이 놀아주고 더 많이 감정 교류를 했던 사람에게 강한 애착을 보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양육자가 기꺼이 함께하는 놀이는 당연히 애착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아이들은 열이면 열 다양하게 놉니다. 

아이마다 놀이를 대하는 성격, 즉 ‘놀이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상술했듯이, 놀이성은 정서지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놀이성은 신체적 자발성(풍부하고 조정된 전신 또는 신체 부위 움직임), 

인지적 자발성(상상, 창의성, 사고의 융통성), 

사회적 자발성(타인과 잘 어울리고, 집단에 가입하고 탈퇴하는 능력), 

즐거움(웃음, 행복함과 즐거움의 표현), 

유머감각(익살스러운 사건 인식, 재미있는 상황 인식, 점잖게 골려주기)의 특징을 보입니다. 


보호자와 함께 다양한 정서를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안전한 상황 속에서

우리 아이만의 놀이성이 놀이를 통해 발현되고 강화됩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정서를 느끼는 것이 옳은 지 자발적으로 경험하고

정서의 인지와 표현이 안정화 되면서 자연히 정서 발달을 이루게 되는 것이지요.

아이의 정서지능에 영향을 미치는 놀이성은 양육자에게서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니 양육자는 아이들과 함께있는 시간 동안 가르치기보다 같이 놀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훌륭하지 못해도 됩니다.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루에 단 5분이라도 살을 부대끼며 질적으로 충분히 함께 노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머물면서 아이와 감정을 주고 받는 것이 노는 것의 기본일테지요.



함께 하는 놀이는 

지금 바로 우리 아이에게 쥐어줄 수 있는 

풍요입니다


부의 양극화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이는 양육방식에서도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가가 아니라 어떤 관계속에서 어떻게 양육되는가입니다. 


모와 도처럼 둘을 완전히 분리시킬 수는 없겠지만, 

굳이 분리한다면 물질적인 가난보다 정서적인 가난이 훨씬 끔찍합니다. 

많은 부모들은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많고 해 주고 싶은 것이 많고 데려가고 싶은 곳이 많지만 

그럴 수 없어 기본적으로 죄책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놀이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갖고 놀 무언가가 없어도 놀 수 있습니다. 

얼굴로, 손으로, 다리로, 온 몸으로 깔깔거리며 놀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합니다. 

<곰 사냥을 떠나자>의 부모처럼 아이의 놀이와 모험에 기꺼이 참여한다면, 

보다 풍요로운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곰 사냥을 실패하더라도 말입니다. 


아이에게 늘 부족한 양육자라는 생각이 들 때, 이를 해결할 방법은 당장 함께 노는 것입니다. 

놀이보다 확실하고 효율적으로 아이의 정서에 돋을새김할 방법은 없습니다. 

연령과 선호에 맞춰 장난감을 갖추어 놓는 놀이환경보다 아이에게 필요한 환경은 함께 노는 양육자입니다. 

이러한 환경을 가진 아이야말로 금수저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니엘 골먼(1996),감성지능 EQ, 비전코리아
김수영, 정정희, 김수임(2017), 놀이지도, 양서원
박찬옥, 정남미, 곽현주(2016), 놀이지도, 양성원
조형숙, 안혜준, 송승민, 권희경(2016), 놀이지도, 파워북
최성애, 조벽(2018), 정서적 금수저와 정서적 흙수저, 해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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