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언어 발달
아이가 혼자 노는 모습을 가만히 관찰해 보세요.
중얼중얼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면서 참으로 열심히 놉니다.
귀 기울여 들어보면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하는 혼잣말입니다.
이를 보고 심리학자 피아제는 '자기중심적 언어', 비고츠키는 '사적 언어'라고 표현했습니다.
피아제는 아동이 인지가 낮고 미성숙하기 때문에 자기중심적 언어를 사용하며
연령이 증가하면서 사라진다고 했고,
비고츠키는 자신의 행동과 사고를 조절하기 위해 자기 자신과 의사소통하는 과정이며
이후 밖으로 들리지 않는 내적 언어로 발달된다고 했습니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아이가 혼자 놀 때 하는 혼잣말도 아무런 의미 없이 나오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 조절하고 문제해결력을 도와주는 즉 사고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석학들의 연구 결과도 이를 지지합니다.
사적 언어를 많이 사용한 아이일수록 목표 달성률이 높아지고,
반대로 영리한 아이일수록 사적 언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더 높았다고 하네요.
언어 자체를 가지고 놀이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의사소통이 목적인 언어와는 달리, 언어 그 자체를 가지고 말소리와 관련된 놀이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가 옹알이를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기들은 침으로 거품을 내고, 목소리를 변형시키고, 목소리의 높낮이를 바꾸며 소리로 놀이를 하지요.
단어를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문법구조로 놀이를 하며 말하는 재미를 느끼고,
특별히 좋아하는 단어나 소리는 재미가 없어질 때까지 반복합니다.
이 과정은 스스로 자연스럽게 언어의 요소, 규칙, 말소리의 변화 등을 익히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가까워지도록 훈련하는 것입니다.
언어발달은 확실히 두 명 이상의 아이들이 함께 놀 때 더욱 증진될 것입니다.
만 3세가 되면 사회성이 급격히 발달하여
혼자 놀기보다 친구들과 함께 놀이하는 것을 더욱 좋아하게 되는데,
사회성 발달과 함께 언어 발달 역시 폭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기이므로
함께 놀면서 더 많은 어휘를 듣고 습득할 수 있습니다.
함께 놀다 보면 머릿속에 담기기 시작한 지식과 경험이 명료화되어
불분명했던 어휘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놀이 속에서 부여받은 다양한 상황과 역할을 수행해야 할 때,
이미 알고 있었던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하여 모방하고 새롭게 창조함으로써
상황과 역할에 적절한 언어를 이해하고, 언어의 관계성까지 파악하게 됩니다.
타인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하며 순서를 지켜 나의 의견을 교환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의사소통 능력이 좋아집니다.
목소리의 높낮이와 크기를 조절하며 정확한 발음으로 문장을 확실히 이야기해야 하니
문장력과 구사력 역시 좋아집니다.
놀이가 구체화되면서 글자를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
문해 발달로 이어지는 읽기, 쓰기에까지 관심이 증대해지겠지요.
학교나 가정교육을 통해 점차 정확한 언어 사용법을 배우게 되지만,
아무런 부담 없이 마음껏 언어를 사용하고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건 놀이로써 가능합니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상징놀이 속에서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물로 변신합니다.
상징놀이는 곧 창의적인 표현으로 이어지고, 창의적 표현은 언어발달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상징놀이는 아이의 언어발달을 반영합니다.
인형에게 우유를 먹이고 진찰을 하는 ‘단순 상징행동’을 보이는 18개월경 영아의 연구에서도,
상징놀이를 많이 한 영아일수록 언어 이해, 어휘 산출 및 접미사 사용이 높게 나타냈습니다.
또한 말이 느린 영아들은 장난감 조작을 더 많이 하였고
말이 빠른 영아들은 상징놀이를 더 많이 했다고 합니다.
놀이 속에서 사회적으로 적절한 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는
실생활에서도 사회적으로 적절한 언어를 쉽게 사용합니다.
상징놀이를 통해 인생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상징놀이에서의 놀이 시나리오가
책 이야기 속 내러티브 구조와 비슷한 과정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책 이야기에 필요한 주인공, 배경, 사건 전개 등이 상징 놀이에서도 등장합니다.
따라서 상징놀이는 다양하고 복잡한 언어 발달을 비롯하여
읽기, 쓰기와 관련한 문해 발달을 위한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혼자 놀 때, 둘 이상의 아이들이 함께 놀 때보다 더욱 아이의 언어 발달을 촉진시키는 환경은
모름지기 유능한 성인이 함께할 때일 것입니다.
‘자유 놀이’는 성인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자유로운 것을 지칭하지만,
유쾌한 분위기에서 아이의 말과 행동에 호기심을 갖고 반응하고, 공감하고 수용하는
피드백을 주는 성인이면 아이들은 놀이의 세계로 성인을 초대할 것입니다.
아이의 언어 발달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하나, 아이의 놀이를 말로 표현해 줍니다.
“이게 뭐야?” “블록놀이 하는구나.” “블록을 높이 쌓았네.”
아이가 갖고 있는 것, 아이가 하는 행동에 바로 반응합니다.
또한 언어와 행동이 연결되도록 간결하게 설명합니다.
아직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아이일 경우, 단어나 의성어, 의태어와 같은
아이의 작은 표현을 문장으로 확대하여 표현해 줍니다.
아이가 어휘의 개념을 이해하고, 완성된 문장으로 표현하도록 도와줍니다.
둘, 단순히 중계하는 것 이상으로 아이의 놀이를 묘사합니다.
“노란색 블록을 골랐네.” “바나나랑 똑같은 색깔이다.” “뾰족뾰족 네모.”
놀잇감의 생김새와 놀이 상황에 살을 덧붙여 풍부하게 반응합니다.
보다 이해하기 쉽고, 사고가 확장되도록 생동감 있게 표현해 줍니다.
놀이 상황에 알맞은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좋습니다.
셋, 아이의 의도를 표현해 줍니다.
“블록이 무너져서 속상했지.” “놀랐겠다.” “아하, 기린을 만들고 싶었구나.” “완성! 우와 정말 멋지다.”
아이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더욱 잘 표현하고 전달하도록 아이의 감정과 의도를 읽어줍니다.
이해하기 힘든 형용사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넷, 하나하나 주고받으며 대화를 격려합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만 하지 않고, 아이에게 말할 기회를 줍니다.
잠시 멈춤(pause)의 시간을 두는 것입니다.
아이의 수준을 고려하여 질문을 던지고 피드백해줍니다.
반대로 아이가 성인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을 때엔 부드럽게 말할 내용이 있음을 알립니다.
핑퐁 게임을 하듯이 하나하나 주고받으며 원활한 대화를 연습합니다.
비고츠키는 아이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다른 누군가의 지지적인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하였고,
이때 위에서 소개한 것과 같은 맥락의 언어적 ‘거리두기 전략’으로 더욱 정교해진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놀이는 언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브루너(Bruner, 1983)의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의 언어 발달에 놀이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가장 복잡한 형태의 언어 역시 아이가 놀이하는 동안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1세 영아의 놀이를 연구한 결과에서도
언어의 발달 수준과 놀이의 수준이 비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김명순·성지현, 2002).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놀이를 언어 발달의 수단으로 쓰면 안 된다는 점이지요.
열심히 연습했지만 발표하라고 하면 꾸물거리는 것처럼,
열심히 영어공부를 했지만 외국인을 만나면 입을 닫게 되는 것처럼,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며 즐겁고 자연스럽게 말하기 듣기를 연습할 때 언어는 생기를 얻습니다.
그래서 놀이를 일러 ‘언어 학습장’ 또는 ‘아이들의 언어’라고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놀이를 가장해 학습시키려 들지 않아도, 그러니까 의도하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놀이 자체가 언어, 인지, 정서, 사회성 등 전인 발달을 위한 효과적인 매개가 됩니다.
놀이는 완수해야 할 과업이 아니고, 억지로 강요해서 참여하는 활동이 아니기에
놀이 속에서 배우고자 하는 것을 찾아 마음껏 배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저 즐겁게 놀이하는 것.
그리고 종종 놀이 안에 오롯이 함께 존재하는 유능한 조력자가 되어주는 것.
그래서 아이가 마음껏 말로 놀이하고, 고차원의 언어를 실험하고, 함께 놀이하는 사람과 언어적으로 상호작용 하고, 그 과정에서 세상을 자연히 배워가는 것 일 테지요.
신은수(2002). 놀이와 유아.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김명순·성지현(2002). 1세 영아의 언어와 놀이의 관계.
고영성(2016). 부모공부. 스마트북스.
김수영(2017). 놀이지도. 양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