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이 비종교인에게 주는 두 가지 관념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어두고
양손 가볍게 밖으로 나와 골목길을 나선다.
포르투에서 둘러볼 곳은 주로 도우루 강 근처에
산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작정 강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본다. 계획에 쫓겨 서두를 필요도, 최적길을
찾을 필요도 없이 길은 어디로든 이어져 있다는
마음으로 배회하듯 걸으니 어디선가 느껴본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그것은 여의도에 외부 회의를 나온
어느 날, 퇴근시간보다 일찍 일정을 마친 후 홀로
한강공원을 걷던 바로 그 느낌이었다.
30분 정도 걷다 보니 거리에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벽면 전체가 웅장한 아줄레주로 장식된 카르무 성당, 해리포터가 탄생한 렐루서점, 포르투의 가장 낭만적인 전망을 바라볼 수 있는 클레리구스 탑 등 관광명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 많은 곳들을 눈 안에 넣고 싶어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전진한다. 그러다 멈추게 된 곳은 바로 상 프란시스쿠 성당이다. 그을린 듯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외관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나에게 성당은 크게 두 가지 관념으로 이어진다.
첫 번째, 유럽에 가면 지겹도록 많이 보게 되어 여행의 어느 순간 즈음에는 대충 훑어 지나치게 되는 곳.
유럽 여행을 막 시작했을 때는 그곳에서 경험하는
성당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반하여 감탄을 금치 못하며 온 곳을 눈에 담으려 샅샅이 훑어보고는 했었다. 그러다 성당과 마주치는 횟수가 잦아지자 -“ㅡ 알다시피, 유럽에는 성당 건물이 매우 많다.
‘멋지다.’ ‘대단하다.’가 ‘그게 그거지.’라는 인식으로 점차 바뀌게 된 것이다. 물론 모든 성당에 대해 똑같이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보다는 익숙함에 젖어 느낌이 무덤덤해진 것은 확실했다. 첫 만남의 설렘은 사라지고 어느덧 익숙함에 묻힌 연인을 바라보는 느낌이 이런 느낌일까?
또 다른 관념은 엄마와의 기억이 묻어 나는 상징적 공간으로서의 성당이다. 어릴 적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서 종종 성당을 따라가곤 했다.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엄마를 따라 기도 인사를 했던 기억, 영성체 때 엄마가 입안에 받아온 그것이 무엇일까 무슨 맛일까 궁금해했던 기억, 미사 시간이 언제 끝나는지 조용함이 지겹게만 느껴졌던 기억. 몇 번이나 갔었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에서의 기억만큼은 그림 작품을 떠올리듯 머릿속에 남아있다. 자연스럽게 성당을 보면 가장 먼저 엄마가 떠오른다.
군 복무 훈련병 시절, 종교생활 시간이 있었는데
종교가 없는 내가 교회냐 성당이냐 절이냐 선택의 기로 앞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엄마와의 기억이 있는 성당을 택했고, 처음 겪어보는 육체적 고달픔과 정신적 고립감에 훈련소 안 성당에서 자연스럽게 엄마가 떠오르며 눈물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었다. 앞으로도 성당은 나에게 있어 그러한 관념의 공간이 될 것이다.
상 프란시스쿠 성당을 보는 순간에도 익숙함과
그리움이라는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어쨌든 그보다는 오래되어 보이는 고딕양식의 외관에 이끌려 이곳에 들렀고 내부를 둘러보고 싶은 마음에 시간을 할애하여 관람을 해보기로 하였다.
성당은 크게 예배당과 카타콤(지하묘지)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카타콤은 살짝 소름 끼치는 느낌이 들어 우선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 본다.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예상 밖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직선적이고 거친 느낌의 외관과는 달리 매우 화려하고 정교한 모습이 지금까지 봐왔던 어떠한 성당 내부와도 차이가 느껴졌다. 특히나 내부 전체가 금박을 입힌 목공예 장식으로 이뤄져 있어 휘황찬란하다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다. 겉모습만 보고서 상 프란시스쿠 성당이 이런 반전 매력을 지니고 있을 줄은 과연 누가 알았을까?
왠지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 카타콤까지 모두 둘러보고난 후 성당을 나서며 입구 앞 계단길 위로 우뚝 선 건물을 다시 한번 바라본다. 그리고 조금 전 감탄스러운 성당의 모습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그것이 기억 속에 남아 색이 바래어 익숙함이라는 관념으로 퇴적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