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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건호 Nov 17. 2019

포르투갈의 정수, 포트 와인을 맛보다.

Graham's Port Lodge.

해외여행 시에 주로 동행을 두지 않고 혼자 돌아다니는 편이었기 때문에 여행을 하며 마주치는 여행객, 특히 같은 한국사람에게는 관심을 전혀 두지 않곤 했다. 극단적으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초기에는 ‘굳이 한국 밖에까지 나와서 한국인과 말을 섞어야 해?’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여행의 경험을 통해 점차 그것은 나의 오만함이었다는 생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여행에서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여행의 장소뿐만 아니라 여행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인데, 그것이 그에 관한 사연이든 그가 가진 생각이든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자신은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이에 비추어 스스로의 모습을 관찰하며 나아가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더욱이 한국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비슷한 환경과 여건에서 형성된 생각과 고민으로 더 많은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 낼 때가 많이 있다.


새로운 문화권의 사람들과의 대화가 나의 견문을 넓게 해 준다면 같은 문화권의 사람들, 곧 우리나라 사람들과의 대화는 나의 생각을 좀 더 깊게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제 어디로 가시나요?'

그래서 이제는 그에게도 먼저 물어볼 수 있었다.


"건너편에 와이너리 투어를 가볼까 생각 중이에요."


'와이너리?'


포트 와인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포르투에서 와이너리 투어는 빠질 수 없는 코스다. 하지만 혼자서 가기가 애매한 탓에 이전부터 가야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혹시 폐가 안되신다면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그럼요. 두 명이서 갈 예정이라 조금 애매했는데 마침 잘됐어요!"


그녀는 와이너리 투어를 함께 하기 위해 온라인 여행 커뮤니티에서 찾은 동행인이 있다고 했다. 곧 만날 예정이라고 하여 우리는 약속 장소인 히베이라 광장의 기념품 집 앞으로 가서 기다렸고 이내 세명의 무리가 되어 수많은 와이너리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도우루 강 건너 마을 빌라노바 드 가이아로 넘어갔다.


그가 현지인의 추천을 받았다는 GRAHAM’S Port Lodge를 찾아갔고, 와이너리 중 가장 멀리 위치하고 있는 탓에 꽤 먼 거리를 걸어 그곳에 도착했다.


"죄송합니다. 오늘 투어 예약이 마감되었습니다."


우리가 세 명이라고 말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어안이 벙벙해지는 대답을 들었다. 미리 예약을 하고 와야 했다는 것을 나는 물론 그들도 모두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직원의 한마디에 지금까지 먼길을 걸어온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대신 테이스팅 세션은 지금 참여 가능하십니다."


직원이 실망한 우리의 표정을 보았는지 차선책을 권했다. 그러나 하려고 계획했던 것을 못하게 되면 순간 심통이 날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사실 지나고 생각해보면 별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거 아니면 안 돼!'라며 엄마에게 투정하는 아이의 마음이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별수 없었다. 우리는 만장일치로 테이스팅 세션에 참여하기로 했다.


안내에 따라 테이스팅룸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으니 소믈리에로 보이는 직원이 와서 포트 와인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술에 대한 영단어를 더 많이 알고 있었는지 바로 전 볼사 궁전 가이드에 비해서 귀가 더 트여있음이 느껴졌다.

와인의 종류에 따라 6잔의 샘플 글라스와 단맛이 강한 포트 와인에 어울리는 에그타르트와 치즈가 함께 플레이트에 올려져 나왔다. 소믈리에의 설명을 들으며 달짝지근한 맛에 계속해서 와인을 홀짝홀짝 마셨더니 어느새 취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창문 사이로 비추는 노오란 햇빛이 만들어내는 어느 평온한 오후의 분위기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기분 좋은 취기가 남은 잔마저 모두 비우게 했다.


“얼굴이 너무 붉어지셨어요. 괜찮으세요?”


얼굴이 너무 뜨거웠다. 안 그래도 술을 마시면 얼굴이 금방 붉어지는데 와인을 적당량 이상 마셔버린 것이었다.


“잠시 바람 좀 쐬고 올게요.”


반나절 전만 해도 일면식이 없던 사람들 앞에서 대낮부터 술 취한 사람처럼 새빨개진 얼굴을 계속 보이기가 민망하기도 하고 술기운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에 테이스팅룸 밖으로 나왔다. 순간 나는 발걸음을 멈춰 서며 멍하니 앞을 바라다보았다. 와이너리 담 너머로 도우루 강을 두고 마주하고 있는 포르투와 빌라노바 드 가이아, 그 사이를 잇고 있는 동 루이스 1세 다리가 한 폭의 그림 같은 진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건물 안에서는 와인에만 집중하다 보니 창 밖의 모습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고 이런 멋진 경치가 있을 줄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눈에 익어가던 포르투 전망과는 다른 새로운 구도의 모습이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만들었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등을 진채 먼 곳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 안에 있던 나머지 두 명도 곧 문 밖을 따라 나왔다.

 

“와, 여기 정말 장관이네요. 여기까지 걸어온 보람이 있네요!”


“동 루이스 1세 다리와 도우루 강의 멋진 조합을 볼 수 있는 최고의 구도 같아요.”


그들도 칭찬일색으로 와이너리 앞에 펼쳐진 멋진 풍경을 맞이했다. 다들 취기가 있어서 그런지 감정이 고조되어 목소리에는 한껏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앞으로 한동안 와인을 보면 지금 보고 있는 포르투의 모습이 자연스레 눈 앞에 떠오를 듯했다. 비록 계획했던 와이너리 투어는 하지 못했지만 계획하지 않았던 멋진 전망 감상으로 테이스팅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이곳에서의 시간을 나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우리는 나름 성공적인 방문을 자축하며 와이너리를 나와 다시 도우루 강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모두들 양 손에는 이곳에서 구입한 와인을 한가득 챙겨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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