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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건호 Nov 17. 2019

오르막길을 걷는 가족에게 전해준 추억 선물

포르투 어느 골목길.

누구나 그런 곳이 있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했던 자신만의 추억이 심어져 있는 곳.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장면,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놀던 장면, 옛 연인과 손잡고 걷던 장면.


시간이 흘러 우연히 그곳을 다시 지나칠 때면 필름을 꺼내 영사기로 스크린을 비추듯 그 시절 나의 모습이 담긴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그 장면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에 대한 기억과 장면 속의 나를 바라보는 지금의 시선이 겹쳐지면서 묘한 감정에 휩싸여 생각에 잠기게 된다.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렐루서점으로 향해 좁은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는 동안 앞서 걸어가는 저 가족에게 이곳 또한 추억이 깃든 장면을 만들어가는 장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마탄 어린아이가 의젓한 성인이 되고, 다정하게 걸어가는 부모가 백발의 노인이 되어 이 골목길을 다시 걷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종종 기억 속에서 이 길을 걸으며 그날의 추억과 서로에게서 느꼈던 포근한 감정을 추억하게 될 것이다. 마치 오래된 흑백의 무성영화 한 편을 켜놓은 듯한 느낌처럼.


눈을 돌려 먼 훗날 내가 이곳에 있던 나를 바라보듯이 이 골목길을 걷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봤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곳과 내 몸의 움직임이 미래의 특별한 추억이 될 수도 있겠지? 이곳을 다시 걷는다면 아마 저 가족의 따뜻한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를 거야. 물론 그 장면을 부럽게 바라보던 나의 모습도.'


갑자기 지금 걷고 있는 포르투의 어느 골목길과 그들의 모습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을 모두 함께 추억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다정하게 걸어가는 가족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후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반가운 인사를 보내며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뒤에서 걷다가 본모습이 너무 다정해 보여서 사진을 찍어봤어요."


가족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매우 흡족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사진을 너무 전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기에 잠시 고민하다가 무리수를 두어 말했다.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시면 이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서 보내드릴게요."


"와, 정말요? 너무나 감사합니다. 저희 가족에게 매우 값진 선물이 될 거예요."


아이의 아버지가 이메일 주소를 건네주었고 나와 그 가족은 이곳에서 하나의 추억 씨앗을 심은 채 다시 인사를 나누었다. 


이처럼 같은 공간, 같은 배경을 마주할 때 그것을 조금 더 즐겁고 과장스럽게 맞이하다 보면 먼 훗날 특별한 추억이 되어 미래의 내가 바라본 지금의 시간을 더욱 반짝이게 해 줄 것이다. 그렇게 나의 지금이 모여 하나 둘 추억이라는 별들이 되고 이 별들은 지나온 인생을 빛나게 수놓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이곳에서 다가오는 밤하늘에 별 하나를 쏘아 올려보았다. 혹여나 이곳을 다시 찾아오진 못하더라도 한 가족이 다정히 걷던 오르막길을 담은 그림을 다시 봤을 때 이곳에 심어놓은 추억의 빛이 지나간 나의 일부를 여전히 밝히고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다짐해본다.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매 순간 현재를 아무런 감흥 없이 단편적인 일상으로 살아가지 않도록 언제나 깨어 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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