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노란빛 한가득 품은 집들 사이로 어린 고양이 한 마리 가 길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따뜻한 오후의 햇살에 포근함을 느끼는 것은 고양이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어미는 어디로 가고 혼자서 이곳에 나와 있는지, 완전히 자라지 않은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조금은 애처롭기도 하다.
작년 이맘때쯤 아버지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돌보기 시작하셨다. 당시 퇴직 후 시골로 내려가 지내던 중이셨는데, 어느 날 현관 앞에서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를 발견한 것이었다. 두 주먹 크기도 안 되는 것이 홀로 울어대고 있으니 그 모습이 가여워 일단 보살피게 되었다고 하셨다. 처음엔 며칠만 먹이고 보낼 계획이었지만 어느새 정이 붙어 창고 한쪽에 집을 마련해두게 되셨다.
아버지는 고양이를 ‘아리’라고 부르셨다. 부모가 없어 고아가 된 고양이라 하여 고아리라고 이름 지어진 것이다. 아버지의 입에서 ‘고아’라는 말이 나온 적은 딱 두 번 있었는데, 한 번은 고양이의 작명 과정을 설명하면서였고, 다른 한 번은 내가 10살이었던 해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였다. 할머니의 죽음이 어색하기만 했던 내게 아버지가 걸어와, 자신은 이제 엄마 없는 ‘고아’라며 눈물을 흘리셨던 기억은 여전히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2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버지는 자신을 ‘고아’라 생각하며 살아가실까. 아버지는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 주면서 자신의 처 지를 떠올려 보았을지도 모른다.
한 번은 아리가 집을 나가 닷새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다가, 죽었을 것이라 단념하던 무렵 다리 한쪽이 뜯겨나 간 채 절뚝거리며 돌아온 적이 있다. 아버지가 급히 동물 병원에 데리고 가 수술을 하여 목숨은 살렸지만, 결국 아리는 다리 한쪽을 잃어야만 했다. 며칠 동안 아버지는 밤새 쪽잠으로 아리를 품에 두고 보살피셨다. 아리가 겪는 고통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여기셨는데, 그것은 작은 몸뚱어리를 쓰다듬던 아버지의 오른손에도 같은 아픔이 있었기 때문 일 것이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직장에서 엄지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셨다. 다행히 봉합 수술이 잘되긴 했지만, 손가락이 잘려 나가던 순간의 고통과 끔찍함에 대한 기억이 늘 가슴 한구석에 시큰하게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중에도 아내와 어린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궂은일을 마다치 못했던 가장의 무게는 누구도 대신 덜어줄 수 없었을 것이다. 손가락에는 아픔뿐만 아니라 혼자서 고스란히 그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을 외로움도 남아 있었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잘 쳐다보지 못한다.
사실 아버지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고양이는 요물이라 하셨고, 정을 붙이고 키우는 동물의 종류가 아니라는 말씀을 하시고는 했다. 그러셨던 분이 이제는 고양이를 보살피느라 하루도 집을 비우지 못하는 정도가 되셨다. 되짚어 떠올려 보면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던 날도, 엄지손가락을 붕대로 감싸고 오셨던 날도 나는 아버지에게 따뜻한 포옹 한번 해드리지 못했다. 어쩌면 아버지는 위로받지 못한 자신의 옛 모습을 이제야 위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골목길을 떠도는 고양이 한 마리를 마주하는 날에 나는 또다시 아버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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