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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밤토끼 Aug 01. 2022

월간 채식, 뜻밖의 육식

실패의 채식 주간 이야기

"이렇게 고기를 좋아하는데 왜 굳이 채식을 하는 거예요? ㅎㅎㅎ"


내가 육류를 좋아한다는 것, 고작 한 달에 일주일 간 하는 채식을 힘들어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아는 지인으로부터 뼈 때리는 한마디를 듣고 난 뒤 내심 당황스러웠다.




어랏?? 고기육수인가 봐요.

 번째 채식 주간이었던가? 남편과  근처에 있는 칼국수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부산 출신인 나는 멸치육수가 베이스인 칼국수에 워낙 익숙하여 채식 주간에 칼국수는  괜찮은 메뉴 같았다. 칼국수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칼국수 2개요" 외쳤다. 주문을 먼저   메뉴판을 찬찬히 고기육수가 들어간 칼국수라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다. 이미 주문을 취소할  없는 상태가 되어 어쩔  없이(?) 칼국수를 맛있게 먹고 나왔다.  


  이후 채식 주간에는 가급적 가보지 않았던 음식점은 가지 않거나, 재료에 육류가 들어가는지 미리 확인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인에게 이런 일화를 전하자 원치 않게 타협할 수밖에 없는 비건인들의 외식 라이프를 듣게 되었다. 음식점에서 밥을 먹게  경우 눈에 보이지 않는 육류 사용(육수나 다시다 같은)이나 나도 모르게 먹게 되는 육류까지는 용납하기도 한다는 . 비건 음식점이 하나둘씩 생겨나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생활권에 비건 음식점은 보기 드물고, 비건 인구가 늘고 있다고 하지만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이 비건이 아니라면 음식점 선택이 쉽지 않을 때가 있으니 원치 않게 타협점을 찾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 전 채식 주간에는 집에서 카레를 만들었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카레는 '카레의 여왕'이지만 그 제품에 들어있는 퐁포드육수가 사골이기 때문에 다른 제품을 구입했다. 집에 도착하여 야채를 썰고, 카레 포장을 뜯은 후 알게 된 것은 각종 육류소스(비프엑기스, 쇠고기분말, 닭고기조미분말)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쇠고기, 닭고기가 함유되어 있다는 표시가 별도로 되어 있었다. 역시나 '어쩔 수 없지' 하며 카레를 만들어 먹었고, 실패의 채식 주간이 되었다. 그래도 이 날의 경험 때문에 채식 주간에는 제품 포장 뒷면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사골육수를 피하려다 소고기엑기스, 소고기분말, 닭고기분말, 굴소스를 한번에 만났다.


평소 자주 먹지 않던 과자가 채식 주간에 당길 때도 있었다. 어릴 때 좋아했던 썬칩은 역시나 소고기와 닭고기가 함유되어 있었고, 왠지 육류 시즈닝이 없을 것 같았던 감자깡과 포스틱, 콘칩에도 육류가 포함되어 있었다. 입에 착 감기는 짭조름한 맛은 돼지고기와 소고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채식주간에는 역시나 짜고 매운 맛이 당겼고, 그걸 과자로 채워보려했더니 기억하고 있는 맛은 대부분 고기 맛이었다. 나는 짜고 매운 과자가 좋은데 비건들은 어떤 과자를 먹을까?


성분 확인 후 선택한 과자는 꼬깔콘과 꿀꽈배기. 소파에 앉아 열심히 꿀꽈배기를 먹던 중 발견한 정보는 아! 그럴 수 있겠다 싶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엄격한 비건들은 꿀벌을 착취한다는 이유로 꿀을 먹지 않는다 했는데 꿀꽈배기 포장지 뒷면에 적혀있는 내용을 읽곤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꿀벌 1마리가 약 70회에 걸쳐 모은 양의 꿀을 나는 1,20분 만에 비웠다.  


육류 시즈닝을 피해 선택한 꿀꽈배기는 꿀벌이 70회에 걸쳐 모은 꿀이 들어가 있었다.


또 어느 날 채식 주간 외식은 얼큰한 순두부찌개였다. 역시나 선주문을 하고 난 뒤 아차! 싶어 찌개에 고기가 들어가는지 확인했다. 고기 유무를 물어보는 것은 이상하게 두근거렸는데, 답변은 조금 싸늘한 시선과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말투로 돌아왔다. 결과적으로 고기를 뺀 순두부찌개를 먹었고, 계산을 할 때 음식점 직원은 웃으며 음식 조리가 시작된 상태에서는 변경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금 당황했다고 했다.


직원의 말을 듣기 전까지 순두부찌개를 먹으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비건들은 음식점에서 편하게 밥 먹기 힘들고, 고기 유무를 확인하는 질문을 하는 것도, 고기를 빼 달라는 요청을 하는 것만으로도 세상 차가운 눈초리(이것도 혐오라면 혐오일까?)를 받겠구나. 순두부찌개 집에서의 나의 일화는 오해와 착각의 에피소드로 끝났지만 바깥 음식에서 경험할 수 있는 비건들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식사를 집밥으로 하고, 나름의 노하우가 생겨 무사히 채식 주간을 넘길 때도 있다.


몰라서 실패하기도 하고, 지인과의 식사를 핑계로 실패하기도 하지만 다행히 집밥이 있어 성공한 날(물론 플렉시테리언으로)도 적지는 않다.


매장 근처, 집 근처만 봐도 바깥 음식 중에 육류와 생선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기는 매우 매우 힘들다. 다행히 매장에서도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기 때문에 육류가 포함되지 않은 음식에 대한 고민은 적지만 가끔 도시락을 싸기 귀찮을 때는 바깥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매장 근처에 있는 호랑이김밥에 가서 햄을 뺀 김밥을 주문한다. 김밥집 사장님에게 여쭤보니 정말 야채만 넣은 김밥을 주문하는 손님들이 꽤 많다는 말을 듣고 나도 다음번엔 완전한 비건 김밥을 주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호랑이김밥에서 햄만 빠진 페스코 베지테리언 김밥에서 어묵, 맛살, 계란도 빠진 완전한 비건 김밥을 드디어 주문했다.  




이렇게 고기를 좋아하는데 왜 굳이 채식을 하는 거예요?
ㅎㅎㅎ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이런저런 이유로 채식을 실패하면서도 월간 채식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짧지 않은 기간 동안의 월간 채식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엄격한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불편함과 그들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차가운 시선을 알게 된 것. 비단 비건들만 그런 시선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명상을 통해 얻게 되는 '깨어있는 삶'을 일상에서 채식을 통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계기를 모른 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말과 행동, 마음이 너무나 많은데 일주일 간의 짧은 채식 주간은 내가 무엇을 먹는지 뚜렷하게 인식하고 행동을 결정하게 하는 것이 있다. 아주 반복적이고 깊은 명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깨어있는 삶'이 채식을 하는 동안에는 조금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물론, 일주일 간 열심히 채식을 했지만 마지막 날 저녁, 고기가 들어간 만두 하나를 집어 먹고 난 뒤 아차 했던 적도 있다(이때 나는 확실히 깨어있지 않았다).  


이번 달 채식을 실패해도 나에게는 돌아오는 다음 달이 있으니 오늘도 그저 Keep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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