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바빴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고 뭔가를 해내고 싶다는 욕심도 컸다.
수학이 좋아서 과외를 시작했고 하루에 세 타임씩 수업을 했다.
사진을 배우며 인턴을 했고 기획안과 콘셉트 회의로 하루가 채워졌다.
틈이 나면 내 사진을 찍고 친구들을 만났다.
그 시절 나는 내가 가진 에너지가 끝도 없이 솟아날 줄 알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에너지는 분명 유한한 자원이었다.
적당히 나눠 써야 한다는 걸 몰랐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렸다.
그리고 어느 날,
수학이 재미없어졌다.
셔터를 누르는 손끝이 예전만큼 설레지 않았다.
내가 나를 갉아먹으면서 만들어낸 결과들은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아무 의미도 주지 않았다.
대학 4년 동안
매일 수업을 듣고
수업을 하고
콘셉트를 짜고
촬영을 했다.
그 과정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수학 과외만 하던 내가 학원에 스카우트될 정도였고
좋아하던 사진작가님의 어시스턴트 자리를 얻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엔 잘 나가고 있었고
꿈을 현실로 바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자리에 서 있는 내가 행복하지 않았다.
내 안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무너졌고, 부서졌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막혔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버거웠고
셔터를 누르는 일이 지옥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결국 모든 걸 멈췄다.
서점에 가서 문제집을 사지 않았다.
카메라는 먼지를 뒤집어썼고 내 손에 닿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을 시골에서 보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밥 먹고 자고 가끔 산책하고...
그게 전부였다.
가족들의 걱정도 친구들의 메시지도 그 시기의 나에게는 아무 위로가 되지 않았다.
위로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라"는 부담처럼 느껴졌다.
그 무렵 우연히 그런 글을 봤다.
"정상만 보고 달리면 주위에 핀 들꽃을 지나치게 된다.
정상에 섰을 때의 짜릿함도 좋지만
가끔은 그 들꽃이 더 큰 힘이 되더라."
생각해 보면 나는 늘 정상을 보고 달렸다.
그리고 그 사이 들꽃 같은 것들을 놓쳤다.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멈춰서 숨 돌릴 시간이.
그렇게 1년이 지났고
조금씩 괜찮아졌다.
지금도 예전처럼 타오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며
내 속도대로 주위를 둘러보며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