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문온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라고 배웠다.

국어책 어딘가 감정의 조합처럼 배열된 단어들 사이에서.

기쁨과 슬픔, 사랑과 증오, 그리고 행복과 불행.

아주 단순한 게임처럼 하나를 고르면 나머지 하나는 자연스럽게 멀어진다고 믿었다.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행복은 생각보다 자주 불행을 데리고 왔다.

불행은 뜻밖에도 행복의 옷을 입고 웃고 있었다.

행복도 불행도 선명하지 않았다.

꼭 연필로 흐리게 그린 선처럼 둘 사이에는 늘 묘한 회색의 여백이 있었다.

완전한 행복은 없었고 완전한 불행도 없었다.

기뻤던 순간에도 눈앞이 흐려졌고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날에도 작은 웃음 하나쯤은 있었다.


행복의 반대말을 처음 배운 그날로부터 딱 10년이 지난 어느 봄날.

휴대폰이 진동했고 나는 합격 문자를 받았다. 오랫동안 준비 해왔기에 기뻤고 웃었다.

다시 휴대폰이 진동했고 나는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었다.

합격 문자와 부고 문자가 찰나를 사이에 두고 도착했다.

휴대폰이 두 번 진동했는데 그게 그렇게 잔인한 신호가 될 줄은 몰랐다.


기뻤고 웃었다.

무너졌고 울었다.

살면서 그런 날은 처음이었다.

감정이 한쪽으로 흐르지 않고 두 방향으로 동시에 쏟아졌다.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이 지옥 같은 불행으로 이어졌다.


그날 알았다.

세상은 국어책처럼 명확하게 "이건 기쁨 그리고 이건 슬픔" 하고 표시해주지 않는다는 걸.

현실은 늘 감정이 섞여 있는 상태로 우리를 시험했다.


그리고 며칠 뒤 문득 생각났다.

작년 겨울 그 친구와 마신 마지막 커피.

평소보다 말이 없던 날이었는데 이상하게 분위기가 좋았다.

눈이 내리던 오후 커피가 다 식도록 우리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내가 먼저 물었다.

"요즘엔 좀 괜찮아?"

그 애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했었다.

"응 요즘은 나쁘지 않아."


그 말이 왜 그렇게 기억에 남는지 그땐 몰랐다.

그 애가 진짜 괜찮아서 그런 줄 알았다.

"나쁘지 않아"는 "좋다"의 또 다른 말인 줄 알았다.


지금은 안다.

사람이 힘들 땐 "좋다"는 말보다 "나쁘지 않다"는 말을 더 자주 꺼낸다는 걸.


그 애는 아마도 그날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조용하게.

행복해 보였지만 그 안에 슬픔이 조용히 숨겨져 있었다.



딸기를 한 입 베어 물다가 갑자기 울었던 날도 있었다.

작은 접시에 가지런히 담은 딸기, 좋아하던 노래, 조용한 밤.

분명 행복하다고 느꼈는데 눈물이 났다.

행복이었는데 마음 어딘가는 계속 시렸다.


행복과 불행은 서로 다른 세계에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몸에 두 개의 마음처럼 공존하는 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제 누군가에게 "행복하니?"라고 묻지 않는다.

대신 조심스레 이렇게 묻는다.

"요즘은 나쁘지는 않아?"

그리고 그 대답이 "응 나쁘지는 않아."라는 말뿐이라 해도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무게가 들어 있는지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묻고 그렇게 대답하며

여전히 매일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