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가 없는 봄을 맞이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문온

한때 사람이라는 존재를 혐오하다시피 미워한 적이 있다.
지금 돌아보면 꽤 뿌리 깊은 감정이었고
그 감정은 세상 전체를 미워하게 만들었고
결국엔 나 자신까지 미워하게 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아끼던 사람이 너무 쉽게, 너무 잔인하게 무너지는 걸 봤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감정 표현이 서툴고 누군가 내 옆으로 다가오는 일조차 어색해했다.

내가 먼저 누군가의 곁에 서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불편하면 말하지 않았다.
말하는 대신 조용히 멀어졌다.



그런 나에게 먼저 다가와주고 멀어지지 않고 남아준 친구가 있었다.

10대의 시작을 함께했고 그냥 가볍게 웃고 떠드는 사이였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 보니 그 사람은 나에게 유일한 사람이었다.

친구라기보단 멘토였고
가끔은 선생님 같았고
가장 자주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 친구는 맑은 아이였다.

세상을 쉽게 미워하지 않았고,
사람을 너무 쉽게 믿었으며,
누군가 아프면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었다.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면서도
혹시 무지개가 뜰지 모른다며
기대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내가 처음으로 부러움을 느꼈다.
진심으로.

내 세상은 늘 무채색인데
그 친구의 세상은 늘 색이 넘쳐났다.

나는 그 색이 좋으면서도
때로는 부담스러웠고

가끔은 부러웠다.




그 친구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세상이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동안
누군가는
그 다름을 위로라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가 노래를 하게 되면 사진은 네가 찍어줘.
가사는 너밖에 못 써.”

나는 귀찮다고 했고
그 친구는 웃으면서
“그래도 해줄 거잖아.”라고 말했다.

결국 마지못해 알겠다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
그 친구를 둘러싼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했고 나와 또 몇 명의 친구는 당연하다는 듯 그 친구 편을 들었다.

그 친구는 말했다.
“믿어주는 사람만 있으면 나는 괜찮을 수 있어.”

그때 나는 내가 믿어주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게
얼마나 무력한 존재일 수 있는지를 몰랐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말을 바꾸고,
너무 쉽게 침묵했다.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었다.
단지 사람들이 기대한 모습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

그게
그 친구가 잘못한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싸웠다.
말했고,
화냈고,
지키고 싶다고 발버둥 쳤다.

그런데
오히려 그게
그 친구를 더 힘들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점점 그 친구의 얼굴에서 빛이 사라지고
표정에서 색이 빠지고
말투에서 향기가 없어졌다.

그걸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상처받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무너지는 걸 보는 일이
더 아프다는 걸 알게 됐다.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있다.

“나는 늘 옆에 있어.”


“고마웠어. 나 대신 화내줘서.”

고마웠어.
그 말이 과거형이라는 걸
그땐 몰랐다.



그 봄
그 친구는 떠났다.

정말로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내가 아무리 손을 뻗어도
이제는 닿지 않는 자리.

사진 속 환하게 웃던 얼굴은
내가 부러워했던 세상을 품고 있지만
지금 보면 어쩐지 조금은 쓸쓸해 보인다.

시간이 지나
그때 소문을 만들었던 사람들을
마주친 적이 있다.

여전히 그 친구를 안타까운 사람이라 부르며
자기들이 했던 말은 기억조차 못 하고 있었다.

착한 척하던 사람들
정의로운 척하던 사람들

너무 쉽게 입을 닫았고
너무 빨리 다른 말을 했다.

그게 지금도
참기 힘들게 만든다.

나는
아직도 그들을 미워한다.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나쁜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정작 죄책감은
그 친구를 진심으로 아꼈던 사람들이
지금도 품고 있다.

매년 생일이면 케이크를 챙겨주는 어머니,
혼자서 조용히 우는 누나,
그때 조금만 더 붙잡았더라면
달라졌을까 하는 자책을 놓지 못하는 친구들.

그들 사이에
나도 있다.

그 친구가 없는 이후에도
우리의 일상은
어딘가 구멍 난 채로 계속되고 있다.

나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고
그 사람들을 미워하고
그 친구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쓴다.

그 친구가 전하고 싶었던 말을
이제는 내가 대신 쓰고 싶어졌다.

사진도 찍어주지 못했고
가사도 써주지 못했지만
그 약속만큼은 이렇게라도 지키고 싶다.

다름이 틀림이 아닌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던 그 친구.
그 말을 믿고 있던 16살의 우리.

나는 그때 몰랐었다.
그 친구를 이렇게 글로 담게 될 줄은.

그럼에도 불구하
나는 오늘도 그 친구가 없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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