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겁이 없는 아이였다.
마당 끝에 수돗가가 있던 시골 학교.
겨울이면 운동장이 얼어붙고 방과 후엔 친구들과 논두렁을 따라 걷다가 해가 지면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던 시절.
그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단순하게 그림처럼 살았다.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다.
누군가의 소중한 순간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사람.
내가 바라본 아름다움을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선물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마음을 꿈이라고 불렀다.
그땐 시골 작은 마을이었고 사진작가라는 말조차 낯설던 시절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선 꿈이란 대개 선생님, 공무원, 의사 같은 익숙한 직업들로만 가득했다.
지금이야 크리에이터나 예술가들이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다양하지만 내가 초등학생이던 당시엔 사진작가라 하면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어주던 아저씨 정도만 알던 시절이었고 사람들은 그걸 "꿈"이라기보다 그냥 "일"로 여겼다.
그런데 나는 그게 꿈이었다.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 내 꿈은 사진작가입니다."
그 한 줄을 적은 종이 위엔 빨간색 0점이 남겨졌다. 무슨 말도 듣지 못했고 무엇이 틀렸는지도 설명받지 못했다. 그 충격은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았다.
내가 그 선생님 나이가 되었는데도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내 안에 가시처럼 남아 있다.
어른들이 허락하지 않은 꿈은 그저 틀린 답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꿈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입도 뗄 수 없던 나를 보며 할아버지는 조용히 말씀하셨었다.
" 잘못한 게 없으면 기죽지 마라.
나아가기 겁날 땐 그 자리에 우뚝 멈춰.
바람이 용기를 데리고 올 때까지 기다려도 돼."
그 말이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았다.
누가 나를 밀어주지 않아도 그 말 하나에 의지해 나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 다르게 걸었다.
남들이 비웃는 꿈을 품고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겁 없이 달렸다.
그 길 위에서 사진은 어느새 꿈이 아닌 내 삶의 한 조각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남들이 비웃는 꿈으로 꽤 인정을 받는 꿈을 이룬 어른이 되어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건 더 이상 직업도 목표도 아니고 그저 조용히 곁에 남은 취미가 되었다.
나는 결국 다른 일을 하게 되었고 다른 꿈을 꾸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겁이 없었다.
비가 쏟아져도 우산 없이 걷는 사람처럼, 강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다.
가끔 가지가 부러져도 다시 싹을 틔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나는 강한 사람인 줄 착각했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떠났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엔 아무 느낌이 없었다.
내가 이렇게 무감각한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슬픔도, 눈물도, 심지어 허전함조차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슬픔은 시간차를 두고 온다고.
그 말이 뭔지 나는 아주 늦게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게 시간이 지나서 올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할아버지가 머물던 시골집엔 가지 않았다.
외가 쪽 친척들과 연락을 끊었다.
엄마와도 특별한 일 아니면 말이 없었다.
그건 애도도, 외면도 아니었다.
나는 이별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않으려 했다.
그냥 연락이 안 되는 것뿐이라고.
지금은 잠시 멀리 계신 것뿐이라고.
내가 그렇게 믿고만 있다면 이건 아직 이별이 아닐 수도 있다고.
지금은 잠깐 곁에 없을 뿐이라고.
그렇게 1년을 살았다.
아프지 않은 척.
괜찮은 척.
계속 살아냈다.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가 할아버지가 자주 사주시던 과자를 불쑥 내게 건넸다.
그 순간 모든 평온이 무너졌다.
이제는 다시는 그 과자를 할아버지 손에서 받을 수 없다는 걸 그때서야 뼈에 새기듯 알아버렸다.
단 하나의 장면, 단 하나의 깨달음이 그동안 꼭 다물고 있던 감정의 문을 한꺼번에 열어버렸다.
그 작고 사소한 순간 하나로 내 안의 세상이 무너졌다.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강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
지금 와서야 안다.
내가 우뚝 서 있었던 게 아니라 누군가가 내 세상을 받쳐주고 있었던 거라는 걸.
그 사람이 할아버지였다는 걸.
내 삶의 기둥이었다. 기둥이 빠졌는데도 나는 한참을 무너지지 않은 척하며 버티고 있었다.
기억을 남기고 싶어 했던 아이는 정작 가장 소중했던 기억을 거의 남기지 못했다.
사진을 좋아했지만 그 사람과의 시간은 몇 컷 남기지 못했다.
그게 참, 서글펐다. 그리고 무서웠다.
그 사람을 내가 아닌 누군가의 사진으로만 기억해야 할까 봐.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이 내 카메라 렌즈가 아닌 기억 저편으로만 남아 있을까 봐.
나는 그게 두려웠다.
이제야 그 이별을 조금씩 인정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없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그 자리를 그리움으로 채워야 한다.
1년이 지났다.
나는 지금 혼자의 힘으로 내 세상을 다시 세우는 중이다.
여전히 바람은 잘 불지 않는다.
여전히 그 자리에 할아버지가 앉아 계실 것만 같다.
하지만 이젠 조금은 괜찮다.
슬픔이 조금 익숙해졌고 그리움은 시간의 깊이를 따라 천천히 스며들었다.
겁이 나면 멈춰도 괜찮다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도 된다고 말해주던 사람은 없지만 그 말을 기억하는 내가 이젠 내게 그렇게 말해준다.
바람이 불어올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어도 괜찮아.
모든 일이 지나가고 무너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그 자리에 서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