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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Jun 15. 2023

돈에 관한 서로 다른 생각.

돈 쓰는 건 둘 다 좋아합니다. 엄청 많이 벌면 전혀 상관없을지도요.

     남편에게 돈에 관해 들은 말 중에 가장 충격적인 말 중 하나는 '빚도 자산이다'라는 겁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 사람이 나를 놀리나 생각했습니다. 아니, 카페인까지가 내 체력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빚도 재산이라는 말은 내 생전 처음 들어본다! 내가 아무리 숫자에 약하고 경제관념이 투철하지 못하기로서니 얼토당토않은 말로 사람을 농락하네. 내가 속을 줄 알고?!


결혼 후 당장 다음 학기 학비를 두고 의논할 때 남편이 학자금 대출을 알아보자며 했던 말이었습니다.


   "학자금 대출 이율이 2% 대라고? 그건 안 받으면 바보야!!"

   "뭐가 안 받으면 바보야? 빚인데 안 낼 수 있으면 당연히 안 내야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학자금 대출이라서 그 정도인 거야. 요즘 이율이 얼마나 비싼데! 2%면 거저인데 혜택을 누려야지."

   "뭭웱켍똻뵎놽??"

 

어느 한 구다리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없어서 고장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이 사람이 경영대 학위가 없고 재무 통이 아니었다면 '이 철없는 님아' 하며 훈계를 늘어놓았을 타이밍이었지만 순간 움찔했습니다. 저따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저렇게 당당하게 할 때는 뭔가 있긴 있는 건가 하는 의심이 슬며시 고개를 쳐들었거든요.




     저는 평생 공무원으로 일하신 아버지의 월급 이외에 전혀 다른 수입원 없이 살아온 여섯 가족의 일원으로 자랐습니다. 낮은 직급부터 시작해 착실하게 호봉을 쌓고 승진 시험을 치르며 지방 근무도 마다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월급은 안정적이지만 아이를 넷이나 기르기에 결코 넉넉하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 가족에게 '빚'은 지옥에서 온 뿔 여섯 개 달린 악마의 자식 같은 존재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먹고살기 위해 악마의 손을 빌리더라도 어떻게든 이 악물고 벌어 빨리 갚아버리고 탈출해야 하는 악의 근원. 저와 언니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돈을 함부로 빌리지 마라, 보증을 절대 서지 마라, 가족 간에 금전 거래는 하지 마라, 같은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제 기억 속에 빚을 진다는 건 목에 쇠사슬을 여섯 겹으로 감고 악마의 하수인이 되어 어둠 속으로 끌려들어 가는 이미지 같은 거였다니까요.


남편은 다릅니다.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시부모님은 큰 부동산을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특히 시어머님은 부동산에 대한 감각이 남다르신 분이어서 그보다 훨씬 가난했던 시절에도 적은 돈으로 집을 사서 비싸게 파는 부동산 투자로 이윤을 크게 남기신 경험이 몇 번이나 있으셨다고 해요. 크건 작건 사업을 하는 집안의 분위기는 월급을 받는 직장인의 집안과 판이하게 다른 법이지요.


타고난 사람의 성향도 쫄보 개복치인 저와는 달리 남편은 대담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돈에 대해 더 진지하고 진심인 것도 남편이었지요. 우리는 결국 학자금 대출을 진행했습니다. 제 인생의 첫 대출을 받았던 그날, 저는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그렇게 결혼 생활 10년을 지나면서 저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가치관을 바꾸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함께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때 그가 말했던 '빚도 자산'이라는 말을 이제 조금은 이해합니다. 은행이 평가해 준 저와 제 라이선스의 가치가 아니었다면 이 사업은 시작도 못했을 테니까요.


물론 아직 남편의 진도를 다 따라잡은 건 아닙니다. 특히 코로나 시국에 남편이 정부 지원으로 낮은 이율의 대출을 새로 뚫어올 때마다 '올해 내 할 일은 다 했다'며 의기양양해하곤 했거든요. 아니 대출을 더 받았다는 건 빚이 더 늘어난 것인데 그게 뭐 저렇게 신날 일일까 싶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건물을 사자고 얘기하면서 더 큰 대출을 일으키자고 눈을 반짝일 때면 머리가 아찔해지기도 합니다. 사업에서 빚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 데까지는 왔지만 아직은 간이 작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의 간은 성장형입니다.


돈에 대한 우리의 서로 다른 생각은 더 있습니다. 남편은 뛰어난 사람의 한 시간은 얼마간의 돈보다 비싸기 때문에 너와 내 시간을 아끼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지요. 어릴 때부터 돈이 아까워서 무엇이든 '그냥 내가 하지 뭐'라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웠던 저와는 정반대인 셈입니다.


생각이 다른 것과는 별개로, 중요한 건 우리가 이제는 같은 편이라는 겁니다. 사업을 시작한 이후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남편은 저의 체력과 시간을 아껴주기 위해 많이 고민합니다. "너의 한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의 자존감이 고원의 침엽수림처럼 아주 조금씩 자라는 기분입니다. 가끔은 나와 다른 생각이 더 좋을 때도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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