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 이중섭
붉은 바탕에 굵은 선으로 그려진 황소의 얼굴, 전체적으로 투박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
배경지식이 없던 나에게 작가 이중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인 <황소> 뿐이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하기 어렵고 전시 규모도 그리 크지 않다고 들었지만, 미술관을 찾은 지 너무 오래되었고 전시가 무척 보고 싶던 참에 예약에 성공해서 MMCA 서울관에 다녀왔다.
그렇게 전시관을 찾은 나는 생각지도 못하게, 처음으로 공연이나 영화가 아닌 전시를 보고 펑펑 울었다.
전시회장 입구에는 이중섭이 아내에게 남긴 편지에서 발췌한 문구들이 곳곳에 적혀 있었다. 그냥 지나치기 힘든 다정함과 달달함이 묻어있는 문장들이었다.
그리고 그의 생애를 간략하게 설명하는 텍스트가 있었는데, 거기서 그가 피란생활을 하다가 상황이 어려워져 1952년에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홀로 병마와 싸우다 1956년에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 이 사실을 처음 알았고, 벽에 붙은 그 짧은 텍스트에서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애처가인 사람이, 가족과 떨어져 살다가 홀로 생을 마감했다니? 그 유명한 작가 이중섭이 이렇게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었다니?
전시장 초입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소형 그림이 많이 걸려 있었다. 그가 직접 그려 두 아들에게 보냈던 엽서, 떨어져 지내는 동안 아이들과 가족을 소재로 그린 그림들이었다. 엽서의 그림은 그림체가 귀여웠으며 쨍한 색감이 아니었음에도 오묘하게 조화롭고 예뻤다.
이때까지만 해도 슬픈 감정은 별로 없었고 못 보던 그림을 봐서 새롭다고 생각했다. 엽서가 전시된 공간을 지나자, 조금 더 익숙한 그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주한 그림이 <가족과 첫눈>이었다.
이 작품을 볼 때부터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이 떠올라서가 아니라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가족과 헤어지고 그리운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작품 속에서나마 가족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그렸다는 사실이 너무 먹먹해서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 공간에 있는 모든 그림이 그랬다. <엄마와 아이들>, <소와 여인과 아이들>, <가족>, <춤추는 가족>, <물고기와 게와 아이들>, <가족을 그리는 화가>.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아이들이 웃으면서 장난치는 모습을 그리면 마음이 조금 나아졌을까? 더 보고 싶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긴 공간은 어둑어둑했다. 그곳은 은박지에 그린 그림들이 전시돼 있었는데 빛에 약한 특성을 고려하여 조도를 부득이하게 조정하니 관람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양해를 구한다는 문구가 벽에 적혀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종이를 사기 어려워지자 작가가 양담배나 초콜릿을 포장하는 은박지를 어렵게 구해 그곳에 그림을 그린 것인데, 거기에 그려져 있는 그림 역시 아이들이었다. <다섯 아이들>, <네 아이들>, <세 아이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어김없이 이중섭 작가가 그리는 특유의 그 순박한 아이들 얼굴이 있었다. 그 공간에서는 전시를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로 눈물이 났다.
이중섭 작가는 피란 중이었음에도 제주도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한 1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을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꼽았다고 했다. 그때 게를 많이 잡아먹은 미안함을 그림에 담아서 그의 작품에는 게가 많이 등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순수하고, 부인과 아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을 그리워하다가 조현병과 영양실조 등으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다니. 반면, 그의 부인 이남덕 여사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 시대만 아니었다면, 전쟁만 아니었다면 오래오래 함께 행복했을 가족이었을 텐데. 뭐라 말할 수 없이 안타까운 마음이었고 미술관을 나와서도 오래오래 여운이 남았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전시를 찾은 내 소감을 전하고, 이중섭의 생애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더니 이렇게 묻는다.
그리워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세상을 일찍 뜨게 될 정도라면,
아내를 애초에 만나지 않았던 게 나았던 거 아닐까?
내가 직접 겪은 고통이 아님에도, 그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도 같이 전시를 봤다면, 전시에서 작가가 아내와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작품을 통해 같이 느꼈다면 이 질문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함께 한 7년의 짧은 추억으로 60년을 살아낸 이남덕 여사 역시 작가로부터 받은 큰 사랑이 있었기에 남은 생을 버티지 않았을까.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이중섭 작가의 '남편' 이자 '아버지'로서의 면모를 잘 볼 수 있었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