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의 시작이 어려운 이유

시작은 엉성하고 부족하게 하는 거야

by 달토끼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 둔 지 2개월이 다 되어간다. 그만두면 하고 싶던 일들보다는 해야 할 자잘한 일들을 쳐내다보니 (그리고 게으름도 좀 피우다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하고 싶던 일들 중 하나가 퇴사 과정에서 든 생각의 기록, 육아 기록을 어딘가에 정갈하게 남기는 것이었는데, 어디에 남겨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시작도 하지 못했다. 블로그를 하나 만들까, 노션이 그렇게 좋다는데 나도 다시 한 번 제대로 써볼까, 업로드가 한참 뜸했던 인스타그램을 다시 부활시켜 볼까. 브런치만 해도 주제별로 어떻게 분류를 해볼까, 작가명은 뭘로 해야 좋을까, 매거진을 발행할까, 등등 소소한 것들을 계획만 하다가 방치된 지 오래였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미루고 미루고 계획만 세우는 나에게 질리는 시점이 왔다. 일단 뭐라도 쓰는 게 좋지 않겠니? 글이 있어야 분류도 하고, 매거진도 발행하고, 작가명도 의미가 있지.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라고 정의내리기에는 부족함이 너무 많지만, 어떤 일을 시작하는 단계에 있어서 나는 전형적인 완벽주의자다. 생각과 계획단계가 너무 길고, 실행력이 부족하다. 완벽하게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기 전에는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하다가 처음 계획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의욕이 급격히 떨어진다. 한 시간 운동하려고 했는데 50분밖에 시간이 안 난다든지, 혼자 외출을 계획하고 12시에 나가려고 했는데 12시 40분이 되어버렸다든지. 그런데 50분만 운동해도 전혀 하지 않은 것보다 낫고, 오히려 무리해서 한 시간 동안 하는 바람에 다음 운동 시간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것보다 나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12시 40분에 외출해도 얼마든지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집에 눌러 앉아 기분이 우중충해지는 것보다는 훨씬 유쾌한 하루를 보내게 될 수도 있다. 머리로는 알지만 실행으로 옮길 때는 항상 주저하게 되는 이 진리를, 앞으로는 더 자주 실천해야지.


그래서 어떻게든 시작해보려고 글을 남긴다.

꾸준히 하다보면 지나간 시간의 흔적도 남아 있고, 보기 좋게 정리도 할 수 있게 되겠지.

엉성하고 부족한 기록일지라도, 나를 알아가고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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