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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틸 라이프 May 08. 2020

  봉준호 마더 오프닝

굿판을 닮은 신들린 시작

불안한 얼굴로 주위를 살피는 여인이 억새밭으로 걸어온다. 이곳은 경사를 타야 하는 산이나   우거진 나무가 하늘을 덮는 숲이 아니다. 산을 오르다 중턱에서 만나는 허리나 평평한 마루쯤일까. 한국 산에 보기 힘든 낯선 지형이  이곳을 어디에도 없는 시공을 초월한 신화적 공간처럼 여기게 한다. 바람에 눕는 억새 사이로 고단한 가을같이 누렇게 마른 어미가 무대 한가운데 멈춘다.

둥둥 북소리로 시작하는 이병우의 음악은 신 내린 무당을 북돋는 박수의 추임새 같다. 영혼이 빠져나간 눈동자와 빈 껍데기 몸에 서서히 기타의 울음이 닿아 들썩이다 흥이 나니 이 춤은 내가 아닌 혼령에 접신한 무녀가 벌이는 굿판이다.
현들의 합주와 어울려 리듬을 얻은 어깨춤은 점점 신명이 난다.  망설이는 손짓으로 시작한 춤은 격렬하게 세상과 싸우고 어린아이처럼 울부짖다 일시에 멈춘다. 실성한 여인처럼 춤을 추던 엄마는 한 손으로 진실을 보게 된 제 눈을 가린다. 입가에 고통의 울음과 망각의 웃음이 동시에 떠오른다. 광끼와 귀기와 백치의 표정이 뒤섞인다. 즐거운 유희에 몸을 맡기지만 가슴에 비극을 잉태한 엄마는 과거를 버리지 못한 채 살풀이를 그친다.
이승 기억이 사라지는 레테의 강가에 도착한 여인은 옷섶 사이로 오른손을 감춘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죽인 손이다.  아름답게 겹겹이 포장된 본능은 피가 묻어 더럽혀진 맨 손을 드러낸다.

영화 '마더'의 맥락 없는 오프닝은 엔딩의 관광버스 춤과 짝을 이뤄 동물적 모성을 각성시킨다. 오프닝, 도진이 '엄마'가 산속에서 벌이던 독무가 관광버스  군무를 추는 세속의 엄마들과 어울려 한 덩어리가 된다. 엄마는 홀로 싸우지 않고  자식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용서받는 범주화된 인류의 '마더', 누구나의 엄마로 보편성을 얻는다. 바늘로 지워버린 고통을 딛고 앞다투어 춤판에 나선 엄마들이 미친 듯 벌이는 혼돈의 춤사위는 버스를 흔들고 지는 해에 뒤섞이고 붉은 해무리에 형태가  모호해진다. 제 각기 다른 아픔의 색과 무게가 노을빛에 벌건 덩어리로 뭉개진다. 숭고한 통념을 벗은 모성의 이기심이 김혜자의 무표정한 얼굴과 춤으로 가슴을 찌르고 민낯을 들킨다.

뒤를 돌아보지 마라. 지우고 묻어라. 그리고, 망각하라. 엄마들의 막춤은 후벼 파듯  절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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