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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틸 라이프 Nov 20. 2021

영화 자객 섭은낭

-마음이 닿아 실패한 자객 은낭

실패한 자객, 은낭

사실 은낭이 행한 살인은 영화 내내 한 번에 불과하다. 무장한 군대를 먼 거리에서 바라보던 스승 가신은 자신이 키운 자객 은낭에게 살인을 지시하고 이유를 가르쳐 준다. 아비를 죽이고 형제를 독살한 자이다.

원경에서 나뭇잎를 흔드는 가벼운 바람처럼 흐르는 공기에 몸을 맡긴 구름처럼 세상을 지켜보는 하늘의 새같던 은낭이 재빠르게 날아가 상대의 급소를 공격한다. 순간 정방향으로 흐르던 바람과 하늘과 새의 시간은 느리게 속도를 멈춘다. 정지한 시간의 틈으로 재빠른 은낭의 칼이 침입한다. 가신이 은낭에게 은근하게 넘긴 날카롭게 벼리된 단도는 팔딱이던 생명의 숨을 단박에 끊고 카메라는 아무 일 없던 이전 시간으로 돌아가 온갖 자연의 소리와 바람과 나무의 한가로운 희롱을 담는다.

 

#1 조용히 처리하거라. 하늘의 새를 쏘듯 쉬울 것이다.

가신이 은낭에게 한 말은 모순이다. 여러 겹 호위 무사에 숨은 상대를 인간의 속도를 뛰어넘는 새를 제거하듯 빠르고 조용하게 처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은낭은 숲같은 안가와 도량에 은거하며 먹이를 공격하기 전 긴 시간을 참고 벼르는 새의 습성을 훈련받았다. 정혼한 사이었던 계안을 죽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기 전 수련에 몰두하며 사람의 언어와도 멀어졌다. 일찌기 은낭은 땅 아래를 조망하며 홀로 나는 새의 운명을 받아 들인다. 영화에 은낭은 세 가지 모습으로 존재한다. 스승 가신에게 살수의 운명을 세뇌당한 차가운 얼굴의 협객 은낭, 하늘에서 인간계로 내려와 어린 아이 시선으로 마음을 엿보고 관찰하는 가림막 뒤의 은낭, 그리고 밤낮으로 궁과 야산에서 모든 공간과 시간을 가득 채우는 새 소리로 나타나 거울 속을 들여다 보는 난조 은낭.

 

은낭의 등장은 은밀하다. 어릴 때도 숲에 사는 봉황 같았다는 계안의 증언처럼 겹겹이 우거져 적의 형태가 드러나지 않는 자작나무 숲과 구중 궁궐 속내를 감추는 베일이나 깊은 대들보 모서리에 숨어있다. 그녀는 대기의 온도 차로 아른거리는 땅 기운이거나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희뿌연 안개, 형태가 모호한 일렁이는 연기, 언제든 공격할 준비가 되어있는 적을 교란하는 장막 뒤에 검은 그림자로 어느 틈에 주위에 다가와 있고 그녀 마음은 좀처럼 짐작되거나 잡히지 않는다. 적이된 연인을 염탐하는 은낭의 시선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카메라의 눈동자는 촛점이 어긋나 흐릿하다. 부러 뿌옇게 흐린 필터 뒤에 숨어 은낭의 눈을 대리하는 카메라는 가늠하기 어려웠던 계안의 마음을 관음하고 금세 그들 사이에 사라진 시간을 뛰어넘어 그녀 마음에 불쑥 도착한다. 산사에 머물며 품었을 수많은 의문과 홀로 맞출 수 없는 얽힌 해답을 계안의 진심과 견주며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싸운 긴 시간과 결별하며 잃어버린 퍼즐을 완성한다. 이제 그녀는 후경에 덩그러니 떨어진 배경에서 걸어 나와 아버지가 된 계안과 아들의 전쟁 놀이나 나비를 잡으려 바둥거리는 아이의 손짓에 기뻐하는 아비의 웃음을 보며 걸음마 익히듯 조심조심 사랑을 배워간다.

 

#2 너는 검술은 완벽하지만 마음이 약하구나

가신은 잔인하다. 적에게 사사롭게 마음이 흔들린 은랑에게 스승은 상대의 아끼는 것을 먼저 해하고 그 다음 적을 죽이라는 령을 내린다. 가신의 말은 적에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목격하는 더 큰 비극을 경험하게 하라는 뜻이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을 최후 형벌로 내리는 집행자가 되라는 스승의 명령. #2 에서 자객 은랑은 죽음 앞에 자식을 지키려는 아비의 본능적 방어에 흔들린다. 이에 스승은 옛 정혼자 계안이 사는 위박에 함께 돌아와 은낭을 시험한다. 이제 은랑은 애정하던 계안을 제거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

스승 가신의 쌍둥이 자매인 계안의 어머니 가성 공주는 슬피 울다 죽은 난조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주는 선황을 위해 변방 위박에 시집 와 형제와 맺은 모든 약속을 지키며 그의 죽음에 깊이 슬퍼하지만 아들 계안의 왕위 옹립을 위해 은낭과의 정혼 약속을 저버린 사실에 죽을 때까지 마음 아파하는 인물이다. 가성은 동족을 떠나 노래하지 못하고 거울 속 자신의 고통과 외로움을 발견하고 절명하는 난조와 닮았다. 하지만 가성과 거울처럼 같은 얼굴을 가진 가신은 은랑의 흔들리는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계안의 처도 가신처럼 냉혹하다. 그녀의 거울은 온기가 닿는 마음이나 아픔의 공감을 볼 수 없다. 가장 가까운 곁을 지키지만 거울은 외모의 아름다움에만 몰두한다. 계안이 처소에 찾아와도 그녀는 거울을 보며 장신구를 달거나 치장하며 정작 계안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주술로 임신한 첩을 해하려는 사실에 격분한 계안이 공격할 때는 남편이 아끼는 자신의 아들을 방패막으로 사용한다. 이 모습은 #2에서 자식을 보호하던 남자의 태도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영화에서 은랑이 납득한 살인은 아비를 죽이고 형제를 독살해 인륜을 버린 자 뿐이다. 그 외 가신의 명은 자객 은랑을 설득시키지 못한다.

 

#3 아끼는 것을 먼저 죽여라

가신과 달리 속세에 머물때 은랑은 아끼는 것이 생겨 버렸다. 어린 은랑은 혼인이 좌절되고 산사에 맡겨질때 연인과 부모를 위해 운명을 받아 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삼 년간 말을 잃은 난조처럼 과연 이 길이었을까 궁금했을 것이다. 그러나 장막과 숲 안에서 엿들으며 알게되는 계안과 첩의 진심, 어린 은낭을 보내고 후회하는 부모의 고백은 꽁꽁 여미며 애써 누른 그녀의 마음을 쉽게 무너뜨린다. 계안을 먼저 죽이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라는 것을 은랑은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생명을 품은 첩을 아끼는 계안의 마음과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해야 하는 어린 아이 눈 앞에 자객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한다.

 

영화에는 다양한 새 소리가 등장한다. 그것은 입을 닫은 은랑의 말을 대신한다. 동족이 없던 난조와 달리 은랑이 세상에 내려와 만난 소리는 홀로 우는 독백이 아닌 밤 귀뚜라미와 풀벌레도 화답하는 어울림의 합창이다. 음향의 다른 축으로 등장하는 북소리는 소리없는 공격과 일상을 위협하는 긴장감으로 새소리와 겨루다 계안에게 돌아와 즐거운 악기로써 제 기능을 회복한다. 카메라는 떠나려는 검은 은낭의 공격에 실패한 흰 가신의 미련을 오래 붙들어 둔다. 이제 산 위의 가신과 마을로 향하는 은랑의 길은 다르다. 여린 마음을 이기지 못해 실패한 자객 은랑은 거울에 반사된 외로운 난조의 운명을 깨고 거울을 맑게 닦아주는 청년에게 날아가 새 정착지로 기꺼이 떠난다. 은랑의 말 옆에는 이제 스승의 말대신 다정한 청년의 말이 이웃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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