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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외로움 사이에서 내가 혼자 감당한 것들

by 달빛마차

결혼 13년 차, 주말부부 9년 차.

이 숫자들은 누군가에게는 오래 버텨낸 기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매주 금요일과 일요일 사이를 오가는 감정의 온도 차이를 뜻한다. 주말이 되면 문이 열리고 금이 가던 마음의 틈들이 잠시나마 봉합된다. 그러나 일요일 오후가 되면 다시 그 틈이 벌어진다. 그 반복되는 주기가 내 삶의 리듬이 되었다. 주말부부 첫해,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애썼다. 남편은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을 도와주려 노력했고,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함께 있는 시간이 귀함을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노력은 점점 희미해졌다. 금요일에 내려올 때의 설렘은 사라졌고, 남편의 마음은 일요일이 되기도 전에 이미 서울을 향했다. 집은 더 이상 두 사람이 함께 꾸려가는 공간이 아니라, 남편이 잠시 머물다 떠나는 휴게소가 되어갔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꽤 오래 걸렸다. 그러나 가장 나를 지치게 한 건 집안일이 아니었다. 연락 문제. 작은 휴대전화 화면 너머의 공백이 이렇게 많은 감정을 집어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지난 9년 동안 뼈저리게 배웠다. 주말 동안에는 잘 이어지던 연락이 일요일 오후부터 흐려지기 시작한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의 짧은 통화, “도착했어”라는 메시지가 마지막인 날도 많다.


“나는 이혼녀 같아. 당신이 나에게 양육비를 지급하는 거 같아.” 농담 삼아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건 농담이 아니다. 오히려 평소에 말하지 못한 감정이 그런 농담 뒤에 숨어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중요한 일을 혼자 결정하고, 혹시 모를 긴급 상황을 혼자 감당한다. 급하게 남편과 연결되어야 하는 순간조차 연락이 닿지 않을 때면, 가슴속에서 서늘함이 지나간다. 코로나가 심각하게 유행했을 때, 첫째만 코로나에 걸리고, 둘째와 나는 걸리지 않았었다. 격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음식이며, 여러 가지 준비할 것들이 있어 둘째를 봐줘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역시나 연락이 닿질 않았다. 겨우겨우 연락이 닿았는데, 그땐 이미 준비를 다 마친 상황이었다. 이런 위급 상황에서조차 연락이 안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 점점 더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일이 끝나고 나서야 전화가 오고, “아까 너무 바빴어”라는 반복되는 말은 어느 순간부터 변명이 아니라 ‘무관심의 형태’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경제활동을 시작한 뒤에는 상황이 다른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생활비 외의 모든 지출 이를테면, 아이의 학원비, 예상치 못한 병원비, 집안의 크고 작은 비용들이 자연스럽게 내 책임이 되었다. 맞벌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말은 우리 집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나는 버는 만큼 모으지 못했고, 남편은 점점 더 나에게 경제적으로 기댔다. 육아도, 살림도, 경제적 활동도 어느새 나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남편의 부재가 만든 공백을 내가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빈자리가 아예 내 자리가 된 느낌이었다. 서울에서의 남편은 마치 총각처럼 사는 것 같이 느껴졌고, 나는 이곳에서 아내와 엄마, 그리고 가장의 역할까지 떠안은 채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마음속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처음에는 단순한 피곤함이었다. 그다음에는 서운함으로 번졌고, 결국엔 말해지지 못한 깊은 외로움으로 남았다. 남편에게 전하지 못한 마음들이 층층이 쌓여 갔다. 주말이 되면 남편을 반길 마음 한편에서, 또다시 떠나는 순간을 준비하는 또 다른 마음이 생긴다. 남편을 보내고 나면, 텅 빈 현관을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생각이 있다. ‘다음 주도 내가 나를 버텨야겠구나.’


사람들에게 주말부부라고 말하면, 보통은 “부럽다.”,“그래도 금요일마다 오잖아”, “다들 그렇게 살아”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이 생활의 곳곳에 스며 있는 감정들, 기대와 서운함, 책임과 독박, 사랑과 외로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 복잡한 감정들은 단순한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 나는 여전히 남편을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감당해 왔던 마음의 무게를 남편이 알아채기를 바라고, 인정받고 싶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묵묵히 넘겨온 것들이 사실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말하려 한다. 주말부부 9년 차의 삶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과 혼자 버티는 일 사이에서 매주 균형을 잡아야 하는 고독한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