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증상 ① 이. 죽. 골. (이 죽일 놈의 골프)
주말 부부 첫해, 그는 정말 열심히 서울과 대전을 오갔다. 금요일 밤이면 피곤한 얼굴로 내려왔고, 일요일 저녁이면 다시 서울로 향했다. 그 반복 속에서도 나는 우리가 아직 부부라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함께 있다는 믿음 덕분에,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다.
변화는 2년 차부터였다.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골프를 좀 쳐야 할 것 같아.”
나는 반대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겉으로는 반대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내가 고리타분한 아내로 비칠까 봐, 또, 꽉 막힌 사람처럼 보일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골프라는 단어는 이상하게 불안을 가져왔다. 돈이 많이 들 것 같았고, 주말에 더 집에 오지 않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그냥 이유 없는 예감 같은 것이 있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불길한 쪽으로 기우는 감정이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봄이 되자 그는 점점 집에 오지 않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달력을 보며 그가 오는 날을 동그라미 쳐 보았다. 한 달에 한 번 내려온 적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마음이 흔들린 건 친구와의 통화였다.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요즘 골프 친다면서 바람나는 사람 진짜 많아.” 와이프한테는 말 안 하고 골프장 가서 여자 만난대, 내기 골프 쳐서 여자랑 잔다더라, 들을수록 마음이 서늘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웃어넘기려 했지만, 이미 마음 한구석이 무너지고 있었다. 더 힘들었던 건, 그 불안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여전히 연락이 잘되지 않았다. 언제 골프를 치는지, 어디로 가는지, 누구와 가는지, 골프는 몇 시간이나 치는지, 그 어떤 것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번 주는 골프라서 못 내려가.” 그 말이 전부였다.
나는 묻지 않았다. 아니, 묻지 못했다. 괜히 의심하는 아내가 될까 봐, 괜히 싸움을 키울까 봐. 대신 혼자 상상하고, 혼자 무너졌다. 골프를 치는 날이면 전날부터 연락이 끊겼다.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며, 내가 너무 예민한 건지 스스로를 의심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알게 되었다. 그가 골프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나에겐 회사일 때문에 억지로 치는 듯, 본인도 원치 않는다며 일의 연장이라 말했었다. 처음에는 시댁에서 얻은 골프채와 신발로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계절마다 옷이 늘어갔다. 그 사실이 왜 그렇게 서늘했는지, 지금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그 옷들은 나와 상관없는 세계를 향한 그의 준비처럼 느껴졌다.
의심를 크게 할 사건이 발생했다. 주 중 쉬는 날이었다. 주말부부 첫 해에는 주중에 연휴가 끼면 꼭 내려왔다. 하루라도 내려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올라갔다. 그런데 2년 차부터는 그렇지 않았다. 연휴가 있어도 그는 오지 않았다. 물론 연락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남편은 대전으로 내려왔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주중 연휴에는 뭐 했어?” “왜 연락이 안 됐어?”
“골프 쳤어.”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 말 앞에서 나는 무너졌다. 도대체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 걸까. 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걸까. 내가 너무 예민한 건지, 아니면 이미 무언가가 어긋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스쳤다는 사실이다. ‘이 결혼 안에서, 나는 점점 혼자가 되어가고 있구나.’ 나는 그때 이혼을 떠올리지 않았다. 대신, 이상하게도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 관계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감정도 사랑도 아니라는 생각. 내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나 스스로 설 수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그것은 훗날 내가 경제적 독립을 꿈꾸고, 공부를 선택하게 된 아주 미세한 시작이었다.
그의 골프는 일의 연장, 취미가 아니었다. 그건 우리 사이에 생긴 거리의 이름이었고, 내가 더 이상 예전의 나로만은 살 수 없다는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