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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증상 2. 일어나쪄?

by 달빛마차

일어나쪄?

주말부부 3년 차의 어느 금요일 밤이었다. 그날도 그는 늦은 시간에 대전에 도착했다. 씻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고, 집 안은 조용했다. 늘 그렇듯, 나는 그가 내려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한 주를 무사히 건넌 기분이 들었다.

새벽이었다. 카톡 알림 소리에 잠이 깼다. 남편의 휴대전화에서 울린 알림이었다. 원래 나는 남편의 휴대전화를 보지 않는다.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믿고 싶었고, 믿는 게 결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했다. 왜인지 모르게, 아주 사소한 이유도 없이 그 화면이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 메시지를 보았다.

“일어나쪄?”

혀 짧은 소리로 적힌 그 한 문장이 새벽 공기처럼 서늘하게 가슴으로 들어왔다. 이어지는 대화는 더 이상하지도, 더 노골적이지도 않았다.

남편: “어, 일어났어.”

여자: “어젠 잘 들어가쪄?”

남편: “어, 그래.”

그저 안부를 묻는 짧은 대화였을 뿐인데, 나는 그 순간 확신했다. 아, 둘은 친하구나. 어제 만났구나. 그 여자를 만나고, 나를 만나러 대전으로 내려왔구나. 한 번만 만난 건 아니겠구나.

남편이 잠에서 깨자마자 나는 쏘아붙이듯 물었다. 누구냐고, 이런 말투의 문자는 뭐냐고.

돌아온 대답은 더 가관이었다.

“그 여자 뚱뚱하고 못생겼어.”

그 말이 나를 더 깊이 무너뜨렸다. 그게 지금 나에게 할 말인가. 여자의 외모로 상황을 무마하려는 태도, 그 안에 담긴 무례함과 안일함이 나를 지독하게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 이런 질문들이 쏟아졌다. 내가 여기서 아이 키우며 살고 있는 이유는 뭘까. 공부는 왜 하고 있지. 일은 왜 하고 있지. 나는 지금 무엇을 증명하려고 이렇게 애쓰고 있는 걸까. 자신감은 바닥을 쳤고, 마음은 이유 없이 초라해졌다.


그런데 더 기분 나쁜 일은 그다음에 찾아왔다. 남편의 친구였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원래 협력업체 직원들이랑 계열사는 친하다고, 자주 만나고,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시고, 할 거 안 할 거 다 한다고. 그러니까 남편도 믿을 게 못 된다고. 왜 내 주변에는 이렇게 내 불안을 키우는 말들이 많은 걸까. 왜 나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쉽게 무너질까. 나중에야 남편의 친구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게 되었지만, 그때의 허탈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진실보다 더 아픈 건, 그런 말을 아무 책임 없이 던질 수 있는 태도였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의심을 파헤칠 힘도, 따져 물을 용기도 없었다. 그저 며칠을 조용히, 우울하게 보냈다. 아이를 챙기고, 집을 정리하고, 하루를 무사히 끝내는 일만 반복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이 관계를 붙잡는 것도, 무너뜨리는 것도 아니라는 것. 그저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하게 하자고.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하루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자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 메시지 하나에 나의 가치가 흔들리지 않도록.

그날 새벽의 “일어나쪄?”라는 한 문장은 누군가와의 관계를 단번에 무너뜨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말해주었다. 이 결혼 안에서 나는 나를 더 단단히 세우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이혼 대신 경제적 독립과 공부를 선택하게 만든 아주 조용한 전조증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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