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드 Oct 14. 2022

외삼촌의 집

외삼촌의 댁은 서울 신촌 홍익대학교 뒤편 언덕 어디쯤에 있었다. 그 집에는 내 어머니보다 열두 살이나 위였고 장남이셨던 외삼촌의 다섯 식구와 홀어머니, 즉 내 외할머니가 함께 살았다. 그럼에도 내가 그 집을 외할머니 댁이라 하지 않고 ‘외삼촌 댁’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그 집이 너무나도 진하게 외삼촌의 향취가 배어 나오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집에 일 년에 서너 번 정도 방문했다. 서울에서 태어났음에도 아버지 직장 때문에 아홉 살 때부터 지방에서 살아야 했던 나는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서울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을 품고 있었다. 손꼽아 서울 가는 날을 기다렸고, 서울 가는 날은 으레 외삼촌의 댁에 가는 날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차를 타고 서울에 오는 길은 너무도 괴로웠다. 나는 멀미가 심했다. 헛구역질하다가 까무룩 잠들었다가를 반복했는데(그래서 나는 서울은 고통이 끝나는 곳에 홀연히 나타나는 신기루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거의 다 왔다”는 어머니의 말이 들려오면 아버지의 차는 어느덧 산울림극장 앞길을 달려 홍대 정문을 지나고 있었다. 그 순간이면 항상 거짓말처럼 머릿속이 맑아졌다. 나는 창밖으로 아버지의 차가 홍대 정문으로부터 몇 번째인지 모를 골목에 들어선 뒤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고, 골목길에서도 몇 번째인지 모를 이층 집 앞에 멈추는 것을 내다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짐을 챙기는 동안 나와 내 동생은 검은 철제 대문 앞에 달린 초인종 버튼을 눌렀다.


 ‘딸깍’ 소리와 함께 대문이 끼익 하고 열린다.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문을 들어서면 좁고 기다란 잔디 깔린 정원이 나오고, 우리는 그 위에 놓인 납작한 징검다리 돌을 하나씩 퐁퐁 건넌다. 예닐곱 뜀이면 왼편으로 집으로 올라가는 석조 계단참이 나오는데 우리는 으레 계단참을 지나쳐 잔디가 끝나는 안쪽 담벼락까지 뛰어간다.


 담벼락을 따라 이름 모를 꽃나무와 사철나무 들이 심어져 있고, 석조 조각상들이 듬성듬성 깊게 뿌리내린 듯 꿈쩍 않고 자리하고 있었다. 담과 담이 만나는 구석에는 커다란 돌수반이 있었다. 잎사귀가 보드라운 부레옥잠과 자그마한 연잎들이 둥둥 떠 있었고, 푸른 물이끼가 어른거리는 물속은 언제나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이따금씩 금붕어 몇 마리가 돌아다니기도 했던 것 같다. 돌수반 옆에는 돌로 된 테이블을 마주한 채 철제 벤치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 앉아서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며 오늘은 이 집에서 어떤 모험을 할 수 있을까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할머니 여깄는데!”하는 소리가 할머니의 방 창문에서 들려오면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작은 불상이 층마다 넉살 좋게 죽치고 앉은 계단참을 단숨에 올랐다.


 현관문을 활짝 열어젖히면 바로 왼쪽으로 할머니의 방이 있었다. 집에서 가장 해가 잘 드는 곳이었던 할머니의 방은 두 면에 창이 나 있어서 하늘이 잘 보였고, 그것들이 꽃나무였는지 과일나무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할머니의 창문은 언제나 멋들어진 나뭇가지들이 무늬를 만들어냈다. 창틀을 따라 할머니의 소박한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TV 아래 서랍장에는 박하사탕과 약과가 가득했고, 우리로부터 받은 편지들이 오래전 도서관의 열람 카드처럼 상자 안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쓴 편지들을 하나하나 꺼내서 읽어보고는 했다. 그 편지들은 은은하게 박하 향과 약과 향을 풍겼고, 벌써 군데군데 얼룩이 져 있기도 해서, 너무나 익숙한 글씨체임에도 불구하고 낯선 보물들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벽면에는 할머니의 사진이 커다란 액자에 걸려 있었는데 사진 속 할머니는 옥빛 저고리를 입으신 채 희미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그 사진은 이후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되었다.


 할머니의 방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바로 까슬까슬한 나뭇결이 그대로 만져지는 방문이었다. 문 위쪽에 불투명한 유리가 끼어져 있어서, 밤에 잠들려고 누웠을 때 밖에서 새어드는 주홍색 빛이 보석무늬를 만들며 희미하게 어른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무늬를 보면서 나는 어떤 애달픈 감정-그리움이나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소망 같은-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도 오래된 건물에 가서 그런 종류의 창을 보게 되면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진다.


 할머니의 방 옆에는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 부엌만 한 화장실이 있었다. 욕조에 항상 물이 가득 채워져 있던 기억이 난다. 화장실 옆, 즉 현관문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곳에는 부엌과 식당으로 들어가는 작은 아치문이 있었다. 그 아치문에 들어서면 아마도 ‘부엌데기’가 쓰는 용도로 만들었을 것이 틀림없는 아주 작은 방이 붙어 있었는데, 막내 사촌언니가 사용했다. 풋풋한 고등학생이었던 사촌언니가 침대와 책상만 간신히 들어갔던 그 작은 방에서 내게 스티커며 엽서며 예쁘고 아기자기한 문구류를 챙겨줬던 기억이 난다. 그 방은 마치 빨간 머리 앤이나 소공녀 세라가 썼음 직해서 나는 언니가 참 부러웠다.


 언니 방 옆으로 나무로 된 미닫이문이 있었는데 그 문을 열었을 때 펼쳐지는 세상에 대해서는 이따가 얘기하겠다. 그곳은 외삼촌 댁이 왜 ‘외삼촌 댁’인지를 말해주는 가장 핵심적인 공간이자 내 유년기의 가장 중요한 공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치문을 되돌아 나오면 아담한 응접실로 이어지는데 그곳에는 커다란 창이 나 있었다. 처음에 들렀던 좁고 기다란 정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였고, 그 창을 통해 고소한 햇살이 작은 테이블 위로 타닥타닥 내려앉았다. 벽을 따라 세워진 책장에는 미술 관련 서적들로 가득했고 책장이 끝나는 지점에 사촌 언니 둘이 함께 쓰던 방이 있었다. 그 옆으로는 외삼촌과 외숙모의 침실이 깊숙이 자리했다. 그 방은 한낮에도 빛이 잘 안 들었는데 검푸른 커튼이 늘 쳐져 있어서 그랬던 듯도 싶다. 그 방에 들어서면 차가운 물속 같은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는데 나는 이 방이 꼭 외숙모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동생이 보이지 않아서 한참을 찾았는데 이 방에서 외숙모가 동생을 앉혀놓고 시계 보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나보다 영특했던 동생이 샘났던 마음보다는 사탕이든 눈길이든 동생에게 먼저 주던 외숙모에게 서운했던 마음을 품었던 것 같다.


 자, 이제 ‘그곳’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부엌 끝에 붙은 미닫이문은 늘 닫혀 있었다. 우리에게 그 문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마법의 문이었다. 곧 펼쳐질 모험의 문 앞에 서서 우리는 안달이 났지만 함부로 열어젖힐 용기는 없었고, 그렇다고 외숙모에게 허락을 받아서 될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볼일이라도 있는 척 서성이다가 외숙모가 긴 통화를 하기 시작하거나 다림질 거리를 안고 응접실로 나가시면, 우리는 서둘러서, 그러나 한밤의 자객처럼 소리 한 톨 내지 않고 미닫이문을 열었다.

 
 미닫이문을 열면 발 디딜 공간 거의 없이 바로 좁고 가파른 계단이 아래로 이어졌다. 나선형으로 돌아내려 가는 계단은 중반부터 깊고 무거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우리는 손을 꼭 맞잡고 다른 손으로 벽을 짚어가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 짧은 순간이 얼마나 짜릿했는지, 나이가 들어서 보니 젊음이라는 게 바로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몇 개 안 되는 짧은 계단, 다가올 것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한 찰나.   


 마지막 계단에 이르면 문이 하나 더 있었다.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문을 열면 ‘그 냄새’가 훅 끼쳐왔다. 과장하자면 그 공간은 ‘그 냄새’로 존재한다고 해도 되었다. 가장 근접하게 설명하자면 ‘환기가 잘 안 되어 나는 지하실의 퀴퀴한 냄새’였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 지류에 깊게 배어든 물감 냄새, 방금 갈아놓은 먹에서 나는 향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오래된 세월의 냄새라고 생각했다. 이후에 나는 이와 비슷한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종로의 어느 영화관에서, 인사동 거리에서 지하에 위치한 어느 화랑에서였다. 그러나 그 어느 곳도 외삼촌 댁 지하실의 냄새와 똑같지는 않았다.  


 문 바로 옆에 있는 스위치를 켜면 희미한 전등에 불이 들어오고, 지하실의 전경이 찬찬히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는 발을 내디뎌 깊고 깊은 모험의 세계로 들어섰다. 벽면은 나무로 되어 있고 바닥에는 짙은 초록빛의 카펫이 깔려 있어서 안 그래도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그곳은 더욱 어둡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그곳은 미대 교수였던 외삼촌의 아뜰리에이자 세계 곳곳을 여행하시며 수집한 물건들의 전시장이었다. 한가운데에 커다란 작업 테이블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생경한 그림 도구들과 한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종이들이 둘둘 말려서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곳곳에 커다란 화구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고, 여기저기에 놓인 높고 낮은 서가들에는 두껍고 오래된 책들이 꽂혀 있었다. 알아보기 힘든 글자들-알파벳과 한자였을 것이다-로 된 책들에서는 깊은 숲 속에서 나는 냄새가 났다. 또한 가까이 가기만 해도 깨뜨릴까 봐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던 조각상과 도자기 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한쪽 벽에는 커다란 유리장이 있었는데 각 나라의 특징을 잘 살려 만든 기념품 병따개 수십 개가 표본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저 중에 딱 하나만 내 것이었으면’하고 바랐다. 그러나 한 번도 훔치거나 달라고 말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유리창을 살짝 열어 만져보았을 때 손끝에 느껴지는 금속의 차가움에 소스라치게 놀라 다시는 그런 생각을 품지 않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컬렉션이 주는 풍요로움에 압도되어 감히 건드릴 생각을 못했던 건지도 모른다.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라고, 지방 소도시에 사는 여자아이는 주눅이 잔뜩 들었을 것이다. 동경의 눈빛은 여전히 거두지 못한 채.


 그곳은 지하실이었지만 몇 개의 내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문으로 막혀 있지는 않았고 턱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오르내리고 싶어 지게 만들었다. 그랬다. 그곳은 우리가 구석구석 탐색하고 발견하고, 이것도 저것도 지루해지면 숨바꼭질을 하거나 술래잡기를 하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외숙모가 미닫이문을 항상 꼭 닫아놨던 것도 바로 그 까닭 때문일 것이었다.


 한 번은 그곳에서 놀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가 깼는데 지하실의 추운 공기에 손이 곱고 엉덩이와 다리가 꽁꽁 얼어 꼼짝도 못 하게 된 일이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함께 놀던 동생은 보이지 않고, 그날따라 희미한 조명은 더욱 어둡게 느껴졌는데 그 순간 나는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혔다. 입술도 얼어붙었는지 아무리 소리를 지르려고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낀 그때 처음으로 나는 이곳에서 여러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 골목길을 지나는 자동차 소리, 위층 부엌에서 물 흘려보내는 소리, 지하실 오래된 공기가 술렁이는 소리, 도자기와 장식품이 달그락거리는 소리, 그림 속 사물들이 살아 꿈틀거리는 소리, 먹으로 생겨난 검은 시내와 구름이 흐르는 소리... 나의 귀는 활짝 열리고 두렵던 마음이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굳은 몸이 사르르 풀리기 시작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진정 오롯이 나 혼자만의 공간이었다. 나를 위해 멈춘 시간이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내 안에 예술가로서의 열망이 태동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예술은 가장 내밀하고 고독한 순간에 시작된다고. 꿈을 꾼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조작된 기억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그 공간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아주 큰 부분의 시작점이라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외삼촌 댁에 대한 기록이다. 이 기록은 군데군데 구멍 난 기억에 의한 것이라 정확하지 않고, 확인할 길도 없다. 왜냐하면 외삼촌 댁은 이미 오래전에 헐렸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는 외삼촌 부부의 노후를 위해 4층짜리 원룸 건물이 들어섰다. 돌수반이 있던 정원도,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던 창문도, 우리가 모험을 떠나던 지하실도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외삼촌의 댁에 가려면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서 내리면 되었다. 그즈음에는 할머니도 돌아가신 지 오래였고 나도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첫 방문 이후로 다시 외삼촌 댁을 찾지 않았다.


 내 유년기에 그런 공간이 있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비록 세월과 함께 사라져 버렸지만 그 공간을 떠올리며 마음 한구석이 뻐근하게 아려오는 것을 보니, 나는 아직 감성이 메마르지 않은 청춘이거나, 자꾸 옛것에 기대어 감상에 젖으려 하는 나이 든 영혼 인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chet bake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