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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oon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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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Apr 15. 2020

바이런베이를 갈까 말까

 섬으로 들어가야 하는 날까지 2-3일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골드코스트에서 쭉 있어도 되긴 하지만 그러기는 뭔가 좀 아쉽다. 근교에 짧게라도 다녀올만한 곳이 있나 싶어 찾아보니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바이런 베이라는 곳이 유명한가 보다. 서퍼스 파라다이스에서 직행버스가 있어 오고 가는 것은 쉬운데 찾아보니 왕복 버스값이 60달러나 된다. 버스표를 알아보는 내 옆에서 할아버지가 거기 볼 것도 없고 별로라고 자꾸 강조하셔서 갈지 말지 아침 내내 엄청 고민됐다. 그렇지만 계속 서퍼스 파라다이스에서만 있다 보니 다른 곳은 어떨까 싶어 결국 당일날 급하게 가기로 결정하고 버스표를 예매했다.

 오후 2시 25분에 집 바로 앞 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잠이 덜 깼는지 졸음이 쏟아져왔다.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 2시쯤 깨워달라 할아버지께 부탁드리고 잠들었는데 자다 말고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시계를 보니 2시 20분. 버스 탈 시간까지 5분밖에 남지 않은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할아버지께서 깨워주시겠다던 말을 믿고 알람도 안 맞춰놓은 내 잘못이긴 하지만 왜 안 깨워주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색이 된 나와는 달리 너무나도 태연한 표정으로 시간이 이렇게 지난 줄 몰랐다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가 일부러 그러셨다는 걸 눈치챘지만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다. 불행 중 다행히 미리 싸놓았던 짐가방을 들고 바로 뛰쳐나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도 괜스레 미안하신지 내가 괜찮다고 만류하는데도 굳이 버스 터미널까지 같이 뛰어 가주셨다.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사시는 적적한 상황에 좋은 말동무가 생겨서 엄청 반가워하신다는 건 안다. 내가 할아버지 집을 떠나 브리즈번에서 하룻밤 더 있다 오겠다 했을 때도, 바이런베이에 일박 이일 혼자 다녀오겠다 했을 때도 탐탁지 않아하시긴 했지만 그래도 설마 이렇게 일부러 못 가게 하려고 하실 줄은 생각조차 못해서 씁쓸한 마음이 몰려왔다.

 턱끝까지 차오른 숨은 버스가 출발하고 나서야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도착 예정 시간이 약 3시간 뒤였는데 왜 그럴까 생각하다가 골드코스트와 바이런베이의 시차가 한 시간 차이 나기 때문이라는 걸 버스에서 뒤늦게 알아챘다. 두 시간 정도 여정이지만 차창 밖 구경 삼매경에 빠지다보니 그 두 시간도 아쉽다고 느껴진다. 자연이 너무 예뻐서 중간중간 멈춰 버스에서 내리고 싶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원래는 내일 오후 12시 버스로 다시 돌아갈 생각으로 표를 끊어놨었다. 너무 빠듯한 걸 알지만 하도 계속 바이런베이가 별로라고 말씀하시던 할아버지 때문에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새로운 장소로 기분 전환만 할 수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바이런베이에 도착한 후 버스에서 막 내리기만 했을 뿐인데 이상하게 이 장소가 지니고 있는 느낌과 분위기가 나에겐 너무 좋았다. 이곳에 바다와 등대가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래도 왠지 내일 돌아가면 후회할 것 같은 건 확실했다. 그래서 곧바로 그 자리에서 돌아가는 날짜를 하루 미뤄버렸다. 즉, 이틀 뒤에 나는 여기서부터 골드코스트로, 또 골드코스트에서 브리즈번까지 하루 내에 이동해야만 한다는 것이었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지금은 내가 여기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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