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oon Road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지 Apr 15. 2020

스쿨리 - Schoolie

호주의 독특한 졸업 문화

  브리즈번에서 다시 골드코스트로 돌아왔을 때, 서퍼스 파라다이스 여기저기에 ‘Be safe and watch your mates’라고 적혀있는 못 보던 현수막들과 Schololies라는 사인들이 보였다.

 스쿨리가 뭐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호주에서는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을 스쿨리라고 부르고 그들은 학교 기말고사가 끝난 직후 11월 말부터 12월 초 사이에 친한 친구들끼리 1-2주씩 졸업 여행식으로 놀러 간단다. 유래를 보니 1970년대에 골드코스트 서퍼스 파라다이스에서부터 시작되었고 80년대에는 호주 전역에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처음 와있는 동안에도 전혀 몰랐던 사실인데 우연히 1년에 한 번뿐인 호주만의 또 다른 독특한 문화를 접해볼 수 있다는 게 기뻤다.

 호주에 온 지 며칠 안되어 집 앞에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길에서 내게 말을 건 조던은 할아버지 댁 바로 근처에 산다고 했다. 그때부터 조던은 종종 자기 친구들이랑 함께 놀러 가자고 연락이 왔었는데, 그동안은 면접 때문에 그럴 정신도 없고 밤에 딱히 밖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 거절하곤 했다. 하지만 조던에게 또다시 연락이 왔던 그날은 토요일이기도 하고 이때부터 스쿨리들이 모여 재밌는 경험이 될 것 같아서 알겠다 하고 조던과 조던 친구 쌔미를 열두 시에 만나 서퍼스 파라다이스에 있는 클럽에 같이 놀러 갔다. 낮에 나갔을 땐 쥐 죽은 듯 한산해서 의아했던 거리가 밤이 깊어질수록 스쿨리들로 북적북적 넘쳐났다. 앳된 얼굴로도 쉽게 구별되지만 스쿨리들은 저마다 목에 스쿨리를 입증하는 카드를 걸고 있어서 한눈에 알아보기가 더 쉬웠다.

 그날 밤 우리는 Sin City라는 클럽과 The Bedroom Lounge Bar 이렇게 두 곳을 갔는데 조던이 VIP 회원이라서 나도 입장료를 안 내고 들어갔다. 조던이랑 쌔미 덕분에 호주에 온 뒤로 가장 술을 많이 마셨는데도 오랜만의 해외 클러빙이 신선하고 흥미로워서인지 취기가 전혀 안 올라 이상했지만 어쨌든 스쿨리들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했다.
사람 구경은 둘째치고 Sin city에서는 미모의 바텐더들이 속옷과 가터벨트만 입고 있어서 놀랐고 다른 클럽은 화장실을 갔더니 안에 넓은 화장대와 함께 킹 사이즈의 침대가 있어서 놀랐다.
 Sin city에 있던 중 정말 순식간에 엄청난 싸움이 벌어지는 걸 목격했다. 처음엔 덩치 큰 남자 두 명이 치고받고 싸우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말리려다가 싸움이 떼거지로 커지는 바람에 결국엔 클럽 경호원들이 모두 달려들어 제압하고 나서야 끝이 났는데, 체격 큰 남자들 다수의 싸움이 굉장히 격해서 나에겐 충격적이었지만 조던은 자주 있는 일이라며 아무렇지도 않아했다.

 새벽 6시 넘어서까지도 문 열고 있는 한국 클럽들과는 달리 여기도 유럽 대부분의 클럽처럼 3시쯤 전후로 문을 닫는다. 문 닫기 전에 클럽을 나온 우리는 근처에서 같이 케밥을 사 먹고 잘 가라며 인사하고 헤어졌다. 한국에서는 한번 클럽에 놀러 가면 집이 멀어서 피곤한 상태로 첫차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고역이었는데 여기는 집 바로 앞이라 걸어서 10분 만에 돌아갈 수가 있다는 게 나에겐 신세계였지만 혹시라도 할아버지 주무시는데 방해될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고등학교 우리 반 친구들 모두가 함께 졸업 직전과 직후에 각각 가평 펜션과 학교 앞 오피스텔을 잡아 일박 이일로 놀러 간 적이 있다. 3년 동안 매일같이 웃고 울며 지지고 볶았던 우리들이 그 순간엔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길지만 짧았던 학창 시절의 마지막을 다 같이 장식할 수 있었던 그때.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의미가 깊은 학창 시절의 마지막을 이런 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평생 기억될 즐거운 추억으로 마음껏 장식할 수 있는 문화가 있는 호주의 학생들이 부러워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18/11/1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