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지 Apr 28. 2020

캠프힐 - 장애학생들과 한 지붕 아래 함께 살기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우리 학과 행사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하나는 ‘ 특수교육과를 선택했는가?’였다. 가족 중에 장애가 있는 분이 계셔서, 부모님께서 특수교사셔서, 오랫동안 장애인과 관련된 봉사활동을 하면서 꿈이 생겨서 등등 저마다 관련 있고 뜻깊은 이유들이 있는데 나만 그렇지 않은  같았다. 나는 당시  수능 점수나 내신으로는 소위 말하는 명문 대학교에 가기가 어렵고 내가 지원했던 대학은 집에서 걸어 다닐  있을 정도로 가까워서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인데. 학과도 사실은 수능을 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범대 자체를 전혀 생각조차 못하다가 뒤늦게 이모께서  적성과  맞을  같다고 추천해 주셨기에 원서를 넣은 거였다. 뭔가 그럴싸하게 둘러대기라도  답변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얼떨결에 특수교육과 신입생이 되었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3월의 어느 날 신입생 환영회가 있었다. 1학년 새내기인 우리들과 2학년 선배님들과의 식사 자리. 같은 테이블에 앉은 선배님 한분이 얘기해 주신 덕분에 그때 처음 캠프힐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지금은 전 세계  20 나라에 100군데가 넘게 있는  캠프힐은 장애가 있는 아동이나 성인의 교육, 고용, 일상생활 등에 대한 지원을 제공하며 학교와 거주지가 같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 같은 공동체라고 한다. 흥미롭기는 했으나 그때는 특수교육의 특자도 모를 때라 그냥 그런 것도 있나 보다 싶었다.
 시간은 금방금방 흘러가서 벌써 1 반이 나갔고, 2학년 2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개강총회 회식 중에 캠프힐에 대해 처음 얘기해주셨던  선배님을 다시 뵙게 되었다. 미국에 있는 캠프힐  한 곳에서 1년간 있다가 얼마 전 돌아왔다는  선배님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이번에는 예전과 달리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래, 가보자.

 그렇지만 캠프힐은 내가 가고 싶다고 무작정   있는 게 아니었다.  세계 각지에 여러 캠프힐 공동체가 있기는 하지만 영어권 국가가 아니라면  높은 언어 장벽 때문에 애초부터 지원 자체에 제약이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지원자가 몰리는 반면 선발 시기는 일 년에 한 번 정도로만 제한이 되기 때문에 내가 선발될 확률이 희박했다. 선발이 된다고 하더라도 마냥 좋아하기만 할게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1 동안 공동체 안에서 장애 학생들, 그리고 다른 코워커들과 함께 살면서 일하는 게 원칙이라 적어도 1 동안의 휴학은 필수였다. 하지만 사범대의 특성상 다들 최대한 빨리 임용고시에 붙으려고 하지 군대 외의 다른 이유로 휴학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편이라 여러 가지로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시작이 반이니까, 캠프힐 수십 곳의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내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기를 5개월.

 그리고 2014 8 29, 나는 모든 캠프힐의 시초이자 원조가 , 영국 스코틀랜드의 아버딘이라는 곳에 있는 캠프힐에 도착하게 된다. 자원봉사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직업이라 하기도 애매하긴 하지만 다양한 연령대의 영국인 장애 학생들과 다양한 나라에서  코워커들과  지붕 아래에서 함께 먹고자며 지내는 다소 특이하고 평범하지는 않은 생활이 시작되었다.
 개인 방과 모든 식사  식재료가 무료로 제공되고 한 달에 170파운드의 용돈을 받는다.  대신 일주일  5, 하루 8시간씩 집에서는  전담 장애 학생을 집중적으로 도맡아서  학생의 의식주 일상생활 모든 것을 케어하고, 학교나 외부활동에서는 그때그때 시간별로 내가 맡는 또 다른 학생들을 케어해야 했다.

 매주마다 특수학교 고등반에 찾아가 200시간 넘게 자원봉사를 하면서 실습 경험을 해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대학교 안에서는 이론 위주로만 배운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특히나 입학 전까지는 특수교육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전무하다시피했던 나라서 캠프힐과 같은 실무적인 경험은  분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에 많은 도움이   같아 도전했던 것이었고, 몇 달 동안 열심히 매달려서 준비할 정도로  열정과 열의가 매우 높았기 때문인지 어쨌든  도전이 후회 없는 선택과 결과로 이어졌던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하더라도 특수교육과는 누구보다도 가장 거리가 멀었던 내가, 캠프힐이라는 인생의 또 다른 도전을 통해서  분야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갈  있었던 것은 좋은 기회였다.

 괴테가 남긴 명언으로  글을 마치려고 한다.
꿈을 품고 뭔가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시작하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 당신의 천재성과 능력과 기적이 모두 숨어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만 19살, 유럽에서 살아남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