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emo Festival

in Belgium

by 김민지

오늘 아침도 마티스와 제니퍼보다 일찍 일어났다.

여행자의 흥분이 아직도 가시질 않아서일까, 내 집이 아니라서일까.

곤히 잠든 그들을 보니 깨려면 한참 더 있어야 될 것 같아 혼자 조용히 시내로 나갔다.


이른 아침이라 어제와 같이 사람이 드문 한산한 거리를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어젯밤 내가 쓸 수 있던 방의 문이 고장 난 것은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최소 며칠을 좀 더 여유롭게 여기서 지내도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아무리 제니퍼와 마티스가 말은 괜찮다고 하더라도 오래 머무를수록 내가 마음이 불편해질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어제서야 마티스와 제니퍼 외에 다른 좋은 친구들도 처음 만났는데

오늘 곧바로 떠나기엔 아무래도 아쉬움이 클 듯했다.


계속 같은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무의식 중에 어제 왔던 그랑플라스에 다다랐다.

작지만 이렇게 웅장한 광장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여기는 몇 번을 자꾸 와도 좋았다.

뾰족하게 높다란 유럽풍 건축물들로 사방이 둘러싸인 그 광장 한가운데서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있었다.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카메라를 들고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 한 손에 먹을 것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 여럿이 떼 지어 몰려다니는 사람들, 나처럼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는 사람들

내 시선은 이제 건물들보다는 사람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보면서 그들의 표정과 행동을 읽는 것은 실로 재밌는 놀이와 같았다.


광장을 쭉 한바퀴 돌고서는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볼까 싶었는데

어제 마티스가 고등학교 동창인 프랑스와와 안드레아를 마주쳤던 그 계단이 보였다.

그러자

'내일 라세모라는 음악 페스티벌에 갈 건데 너도 가고 싶으면 같이 갈 테니 마티스 통해서 연락 줘'라던

프랑스와의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왜 어젯밤에는 생각나지 않았던 걸까!

유럽에서의 페스티벌이라니 생각만 해도 흥분되는데다가

그들은 2박 3일간 캠핑을 하며 지낼 거라고 했으니 여기를 간다면

적어도 오늘 밤은 마티스와 제니퍼네서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급한 마음으로 당장 마티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내가 잠을 깨운 것 같지는 않은 목소리였다.


"어, 마티스 일어났구나! 어제 네 고등학교 친구들이 같이 가자고 했던 페스티벌에 갔다 오면 어떨까 싶은데 너랑 제니퍼는 정말 못가는 거야?"

"우리 둘은 일 때문에 못 가는 데 가고 싶으면 정말 괜찮으니까 너라도 내 친구들이랑 같이 다녀와도 돼. 걔네들은 나쁜 애들도 아니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아 정말 그래도 될까? 그럼 혹시 나 대신 네 친구들한테 연락 좀 해줄래? 혹시 걔네가 벌써 떠났으면 어쩌나 싶어서."

"응, 친구한테 전화해보고 곧바로 다시 전화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벌써 시간이 11시가 넘었는데 그 페스티벌은 브뤼셀이 아닌 기차로 좀 떨어진 근교 도시에서 열린다고 했으니

그들은 이른 오전에 이미 떠났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다시 오늘 바로 브뤼셀을 떠날지 말지를 고민해야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마티스에게 정말 금방 다시 전화가 왔다.

"아직 각자 집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이따 1시까지 브뤼셀 북역에서 만나자고 하니까 아직 시간은 있어 걱정 마!"

"오, 다행이다! 고마워. 나 그럼 일단 너네 집으로 다시 갈게. 좀 이따 봐"


이렇게 즉흥적으로 마티스의 친구 2명과 음악 페스티벌에 가는 것으로 결정됐다.

역시 어젯밤에 오늘 계획에 대해 너무 고민하지 않길 잘했다.


광장에서 마티스의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왠지 와플을 한번 더 먹어봐야 될 것 같았다.

어제는 맛이 기대에 훨씬 못 미쳐 실망했지만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누텔라가 듬뿍 얹힌 와플을 시도했다.

오늘 것은 2유로라 어제 것보다 2유로나 저렴했음에도 결과는 대만족

남들 보기에 겉으로는 덜 화려하더라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이 더 낫다는 아주 훌륭한 예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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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가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졌는지 헤매지도 않고 한달음에 마티스네 집에 잘 도착했다.

1시까지 어딘지로 모르는 북역으로 가야 했으니 시간이 꽤 빠듯했다.

대충 짐을 챙기면서 제니퍼와 마티스와 말을 주고받았다.

"그럼 오늘 갔다가 언제 오는 거야?"라고 마티스가 물었다.

"걔들은 2박 3일로 갈 거라고 했는데 나는 그건 좀 무리인 거 같고 하루 캠핑하고 내일 와도 될까?" "그럼! 오늘 오게 되면 오늘 와도 되고 내일 오게 되면 내일 와도 되고 우린 정말 상관없으니까 네가 편한대로 해. 우리 몫까지 재밌게 잘 놀다오고!"
마티스와 제니퍼도 함께 가면 정말 좋을 텐데... 아쉽지만 사정이 있으니 억지로 설득하기는 싫었다.

거기서 하루를 지내고 와야 하는데 잠은 어디서 자는 거지...?

마티스에게 물으니 자기들이 텐트 등을 챙겨온다 했으니 나는 아무것도 가져갈 필요가 없단다.

안 그래도 시간이 촉박한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마티스와 제니퍼에게 잠시 동안의 이별을 고하며 작별인사를 나눴다.

그것마저도 너무 아쉬운데 정말로 떠나야 될 때에는 얼마나 더 크게 아쉬울까...


캐리어나 배낭은 모두 집에 놓고 작은 가방만 메고 떠나니 발걸음이 가벼워서 좋았다.

그런데 북역이 어디지...? Gare du Nord으로 오라 했는데 내가 갔던 기차역은 중앙역 뿐이었다.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물어물어 가다 보니 시간이 더 지체돼서 마음이 급했다.

가뿐 숨을 내뱉으면서 기차역 입구에 도착했는데 7분이나 지나있었다.

늦기도 늦었지만 아뿔싸... 북역으로 오는 것만 알았지 정확한 만날 장소를 모른다!

둘 중 누구의 전화번호도 모르므로 다시 또 급한 마음으로 마티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티스에게 내가 있는 위치를 설명했더니 거기 그 자리에 서있으라고 했다.

그리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프랑스와와 아드리다!


조급함이 얼굴에도 드러났을 나와 달리 그 둘은 미소 띤 얼굴로 아주 여유롭게 내쪽을 향해 걸어왔다.

"안녕! 뛰어왔어? 숨을 헐떡이네"

"안녕, 혹시 나 때문에 기차 놓치는 건 아닌지 걱정돼서. 여기 위치도 몰라서 시간이 더 지체됐거든. 여기까지 왔는데도 너네 놓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얼굴 보니까 진짜 반갑다."

"아냐, 기차도 많이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돼. 근데 페스티벌 열리는 도시로 가기 전에 다른 기차로 잠깐 아드리네 같이 가서 짐 좀 챙겨와야 돼. 괜찮지?"

뭐야, 그렇게도 마음이 조급했던 게 약간은 억울할 정도로 너무 느긋해 보이잖아!


북역에서 기차를 타고 15분쯤 가다가 내려서 기차역 앞에 있는 트램을 타고 3 정거장을 가니 아드리네 집 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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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으로 들어가니 아드리네 어머니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는데

어제 광장에서 잠깐 얘기를 나눠본 것 외에는 그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나를

뭐라고 설명하기가 약간은 애매할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지만 다행히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만 물어보셨다.

3층짜리 복층 주택이었는데 이렇게 여러 층의 주택은 처음 와보는 것이어서

신기한 마음에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아드리와 프랑스와를 따라갔다.

1층 야외에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초록빛 잔디가 고르게 깔린 정원이 있었고

우리 셋은 1인용 의자에 각각 앉았다.

아드리가 우리에게 'Jupiler'라는 맥주를 건네고 짐을 챙기러 간 사이

우리 둘은 뜨거운 햇볕 아래 한껏 늘어져서는 맥주를 들이켰다.

햇빛이 너무 밝아서 눈을 뜨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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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깔끔하게 맥주 한 캔씩을 비우고선 아주머니께 인사를 나누고 집을 나섰다.


정말 가볍게 세면도구, 화장품, 옷가지 한벌, 카메라 정도만 챙겨온 나와 달리

그들의 가방은 프로여행가들의 가방처럼 크고 묵직했고 어깨 한쪽에는 텐트도 걸려 있었다.

아까와는 반대로 트램을 타고 북역에 다시 도착했다.

그들 말대로 기차가 정말 자주 있는 건지 오래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우리가 갈 목적지로 향하는 기차에 앉았다.

우리가 가는 목적지는 Enghein이라는 곳으로 기차로 4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기차가 출발하고 나서 아드리가 가방에서 캔맥주와 은박지에 싸인 무언가를 꺼냈다.

집에 들렀을 때 아주머니께서 우리들을 위해 샌드위치를 싸주신 거란다.

만국 공통으로 엄마가 만든 것은 뭐든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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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구름 하나 없이 맑았고 차창밖 풍경은 브뤼셀을 약간만 벗어나고 있을 뿐인데도 전원느낌이 나서 예뻤다. (중간중간 작은 공장 같은 칙칙한 들이 감상에 해가 되긴 했지만)

이 두 친구들은 도저히 초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친화력이 높고 유쾌했다.

나이도 모르고 아는 것은 이름뿐이지만 상관없었다.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도 전혀 부담 없이 편하게 느낄 수 있다니

유럽 사람들이 원래 그런 건지, 이 친구들이 유독 그런 건지, 나조차도 원래 그런 건지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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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했다.

유독 우리의 목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루루 내렸는데

옷차림이나 바리바리 가지고 온 짐들, 들뜬 표정들로 봐서 다들 우리와 같이 페스티벌에 가는 사람들인 듯했다.

시끌벅적한 사람들 외에 기차역 주변은 너무나도 조용하고 한적해서

사람들이 없었다면 여기에서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것조차도 모를 지경이었는데

여기서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페스티벌장으로 가야 한단다.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갔을 즈음 드디어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세상에나.....!

그렇게 조용했던 기차역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모습으로

주차장은 셀 수 없이 많은 차들로 빼곡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입구부터 길게 줄을 서서 티켓을 구매하거나 입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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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입장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그 광경을 보자마자 나 역시 흥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의 설레발 치는 모습에 프랑스와와 아드리가 웃으면서 아직 시작도 아니라며 진정하란다.

둘은 이미 예전에 인터넷으로 티켓을 구매했지만 나는 표를 사야 했다.

매표소 직원도 물론 영어를 못하지는 않겠지만 둘이 도와줘서 나는 말 한마디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캠핑장 이용값이 추가된다고 하지만 70유로라고....!?

기껏해야 5만 원 내외로 들겠지 싶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높은 가격에 순간 후회가 됐다.

이제 여행 시작한 지 고작 6일째인데 이렇게 충동적으로 지출하다가는

금세 경비가 바닥날 것 같은 불안감마저 엄습했지만

이미 여기까지 온 마당에 되돌아간다고 할 수는 없었다.

속으로는 이 둘을 무턱대고 따라온 것을 마구 후회했지만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척 카드 결제를 했다.

내 속사정을 알 리가 없는 둘은 내 팔목에도 입장팔찌가 둘러지는걸 보고는 더 신나서 환호했다.

'그래, 이왕 온 거니까 정말 제대로 즐기면 되는 거지. 좋은 경험이 될 거야.'

그렇게 우리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여러 번 이곳에 와본 그들 답게 이곳이 너무나도 익숙해 보였다.

그들이 이끄는 대로 간 곳은 캠핑장이었는데, 제각각 다른 수많은 텐트들이 여기저기에 쳐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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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은 오후부터 이른 아침까지 밤새 이어지는데 캠핑장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무 때나 가능하 다했다.

프랑스와와 아드리의 다른 친구들도 있는데 그들은 이미 텐트까지 다 쳐놨다.

그 친구들의 텐트 근처의 적당한 장소에 그들도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텐트에서 자본 게 언제더라...?'

20살 여름 이모네와 섬진강 근처 캠핑장에 간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텐트를 전혀 칠 줄 모르는 나는 옆에 서서 구경만 했다.

문제는 텐트가 단 하나라는 점이었다.

'세상에, 이제는 하다하다 외국인 남자 둘과 한 텐트에서 잠을 자다니....!'

그나마 다행히 텐트는 꽤 큰 편이었어서 셋이 누워도 공간이 남을 것 같아 보였다.

어차피 나는 내일 최대한 빨리 브뤼셀로 돌아갈 생각이었어서 여기서 잠잘 시간도 별로 없을 것 같긴 했다.

프랑스와가 가방에서 통조림 소세지와 빵과 치즈 등의 먹을 것들을 꺼내더니 내게도 먹으라며 권했다.


여기서도 어제처럼 시간을 틈틈이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하늘을 보아 이미 꽤 늦은 오후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우리는 함께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그동안 가본 페스티벌이라고는 한국에서 열리는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밖에 없었는데

라세모 페스티벌은 그 페스티벌과는 분위기부터가 완전히 달랐다.

큰 호수의 가운데에 있는 긴 다리를 건너니 그곳부터가 시작점이었는데

오픈 페스티벌이라서 모든 스테이지가 야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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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형형색색의 예술 조형물들도 여기저기 많이 보였고

일렉트로닉과 하우스뮤직이 있는 울트라와 달리 여기서는 컨트리음악이나 밴드 음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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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있긴 있겠지만 나는 아시아인을 단 한 명도 볼 수가 없었는데

거기 온 사람들 대부분은 벨기에인들인 것 같았다.

페스티벌답게 독특한 옷차림이나 화장을 한 사람들이 많았어서 사람 구경도 재미가 쏠쏠했다.

거기 있는 사람들 중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가 한껏 즐겁고 신나 보였는데

나도 그런 분위기에 함께 어울려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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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기 전 캠핑장에서 아드리와 프랑스와, 그리고 친구들이 건넨 맥주와 와인을 꽤 많이 마셨더니

페스티벌장에서는 알코올의 알딸딸함이 살짝 올라와 즐거움이 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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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이라 해가 매우 늦게 지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에 있은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날이 어둑해졌다.

그만큼 시간이 정말 아쉬울 정도로 빨리 흐른 것 같다.

어떤 컨트리송을 부르는 밴드의 노래에 맞춰 앞 옆에 있는 사람들과 다 함께 어깨동무하고 방방 뛰며 춤을

추던 것이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 기억된다.

새벽 5시가 넘는 시간까지 정말 쉼 없이 여기저기 스테이지를 옮겨 다니며 소리 지르고 점프했는데

짧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마치 한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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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해가 뜨기 전에 캠핑장으로 돌아왔는데

온몸의 에너지를 바닥끝까지 사용해서 불태우고난 뒤여서

자리에 눕기 도전에 갑자기 피곤함이 미친 듯이 몰려오더니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자리에 누울 때는 담요를 덮어도 새벽 공기의 차가움에 몸이 으슬으슬 떨렸었는데

텐트 안까지 뚫고 비추는 뜨거운 햇살의 열기로 인해 눈이 떠졌다.

'지금 몇 시지!? 얼마나 잔 거야.'라는 생각으로 놀라서 시계를 쳐다보니

아직 10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도 몸에 피로가 다 풀리지 않아 푹 더 자고 싶긴 했지만

오늘은 정말로 브뤼셀을 떠나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원래는 하루만 있으려고 했던 벨기에에서 오늘로 벌써 4일째였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기차표에 적힌 기한이 계속 마음을 짓눌러왔는데

대부분의 이별이 그렇듯이 아쉽고 슬픈 마음이 들긴 했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떠나야 할 터였다.

부스럭거리며 일어나는 내 소리에 프랑스와와 아드리는 내게 더 자도 된다고 말했다.

아직 잠결에 취해있는 그들을 정말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여기서 시간이 지체되서는 안될 것 같았다.

"저기 정말 미안한데, 나는 지금 브뤼셀로 돌아가 봐야 될 것 같아."

이 말에 프랑스와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왜냐고 물었다.

"어제 말했듯이 나는 1박 2일만 오려했는데 오늘 마티스네 들려서 인사하고 짐 챙겨서 암스테르담으로 넘어가려면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아서."

"암스테르담으로 간다고? 오늘!? 아쉽긴 하지만 네 사정이 그러면 할 수 없지. 대신 우리가 기차역까지 데려다 줄게."

"아냐, 나 혼자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너네도 밤새서 많이 피곤할 텐데 신경 쓰지 말고 얼른 더 자."

"에이, 우린 괜찮아. 어차피 이따 페스티벌은 늦게 갈 거니까 너 데려다 주고 와서도 오래 잘 수 있어. 걱정 마."


나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많이 피곤할 텐데도 선뜻 데려다 주겠다는 말에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마티스가 말했던 것처럼 참 좋은 친구들이구나.

기차역에서 여기로 올 때는 셔틀을 탔지만 기차역으로 돌아갈 때는 그냥 걸었다.

길을 걷던 중에 아드리가 아침을 먹자며 어느 허름한 카페에 들어갔다.

무엇이든 결정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내가 한참을 메뉴판을 들여보고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보고

프랑스와가 "이거 되게 맛있어. 먹어볼래?" 라며 어떤 메뉴를 가리켰다.

불어로 써진 메뉴를 내가 읽을 수 있을 리가 없고 그냥 그를 믿기로 했는데 그러길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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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로는 금방이었는데 걷는 데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게다가 태양이 뜨거워서 도로 위를 걷는 내 온몸이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내 양 옆으로 걷고 있는 이 두 남정네에게 드는 미안함이 커져가는데 오히려 이 둘은 전혀 내색도 안 한다.

드이어 기차역에 도착했는데 바래다준 것으로 충분히 고맙다고 해도 기어이 기차 타는 것을 보고 간다며

기차역 플랫폼 안으로까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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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소규모의 기차역이었는데 몇 개 되지 않는 플랫폼의 어떤 벤치 위에 갈색 원피스 같은 옷이 걸쳐 있었다.

누가 흘리고 간 건지 버리고 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프랑스와는 그 옷을 쭉 펼쳐 들어 올리고선 독특한 생김새를 보고 마구 웃더니 순식간에 그 옷을 입었다.

그 옷을 입은 채로 양팔을 위아래로 마구 흔들며 웃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웃겨서

기차가 오기 직전까지도 한참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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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기차는 금방 왔다.

여기까지 배웅을 나와준 그들과 진하게 포옹을 하고는 기차에 탔다.


어제 잠깐 이들을 따라 페스티벌에 온 것을 후회하긴 했지만

지금은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여름밤의 꿈처럼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좋은 친구들과 함께 생각하지 못했던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로 큰 가치가 있었다.

자리에 앉고 나서도 우스꽝스러운 그 둘의 모습에 자꾸 웃음이 터졌다.


기차는 다시 브뤼셀을 향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