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일뻔 했던 하루

in Bruxelles

by 김민지

브뤼셀로 돌아오자마자 곧장 마티스네로 돌아갔다.


"돌아온걸 환영해 민지! 재밌었어?"

보자마자 역시나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는 제니퍼와 마티스!

"응 덕분에! 뭔지 하나도 모르니까 기대를 별로 안 했었는데 너무 잘 다녀온 거 같아. 그래도 같이 갔었으면 분명 훨씬 재밌었을 거야."

"우리도 못 가서 아쉽긴 하지만 네가 즐거웠다니 다행이다."

"아, 근데 나 아무래도 이따가 암스테르담으로 떠나는 게 좋을 거 같아."

"오늘 떠난다고?! 오늘 꼭 가야 돼?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거야?"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너네랑 될 수 있는 대로 오래 더 같이 있고 싶긴 한데 옆방 문이 고장 나는 바람에 여기서 너네한테 계속 신세 지기도 내가 너무 미안하고, 내 기차표가 기한이 한정돼있어서 계속 움직여야 되거든."

"우리는 진짜 전혀 신경 쓸 것 없어. 그런데 네 기차표 기한이 한정돼있다니 유감이야."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오늘 떠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독일에 이어 겨우 두 번째 나라인데 여행을 시작한 지 일주일 중 벌써 4일을 머물렀으니,

앞으로도 갈길은 멀고 어차피 언젠가는 떠나야만 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너무 피곤해서 일단은 마티스와 제니퍼에게 두 시간 후에 깨워달라 하고선 기절하다시피 깊은 잠에 들었다.

단잠이었지만 눈 녹듯 풀린 피로에 개운해하면서 눈을 뜨니 그사이 미겔도 와있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넷이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무사도 올라왔다.

무사와 함께 다른 젊은이 3명도 함께였는데 한 명은 무사의 이복동생이고 다른 두 명은 동생의 친구들이란다.

이복동생인데도 무사와 무사 동생인 아르노는 서로 친형제처럼 스스럼없이 친해 보여서 내심 놀랐다.

한국에서도 점점 늘고 있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내 주변에서는 재혼가정이 흔하지는 않아 현실에서보다 드라마 속의 이복남매나 형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내게 더 선명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이 친구들은 집에서 모이는 게 너무 당연하고 편해 보여서 문득 한국과는 대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이 우리 집에 종종 놀러 오곤 했지만 이렇게 그냥 일상처럼 친구들이 우리 집으로 온 적도,

내가 친구 들네 집으로 간 적도 딱히 없었다.

나중에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는 나도 전보다 더 자주 친구들을 집으로 놀러 오게 하곤 했는데

늘 밖에서 만나 식사를 하고 카페를 가던 것과 달리

집이라는 편한 곳에서 여유롭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이 친구들을 만난 후로 비로소 알게 된 것 같다.


한참을 떠들다가 다 같이 스케이트파크에 가기로 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날이 정해져 있거나 만나는 날이 정해진 게 아니라

이렇게 시간이 있을 때마다 같이 모여서 스케이트보드를 즐겨 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마티스를 처음 만난 날, 그와 다른 친구들이 타는 것은 봤어도

제니퍼, 미겔, 무사와는 처음 스케이트 파크에 같이 가는 것이라 이들이 타는 것은 보지를 못했었다.


브뤼셀에 있는 내내 계속 날씨가 화창하고 맑았다.

스케이트파크로 가는 길에 내가 여기는 날씨가 너무 좋은 것 같다고 했더니

원래는 맑은 날보다 흐린 날들이 많다면서

"네가 해를 가져온 거 아니야? 네가 떠나면 다시 흐려질 거 같은데."라며 미겔이 웃으며 장난쳤다.

해를 가져온다...라는 장난 어린 말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스케이트파크에 도착하니 다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자유롭고 활기차게 보드를 타기 시작했다.

제니퍼와 마티스가 내게도 보드를 하나 빌려주었는데

타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으나 거기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 실력이 꽤나 훌륭한 데다가

오늘도 역시 아시아인이라고는 나밖에 보이지가 않아서 괜히 시선들이 의식될 것만 같아 망설여졌다.

결국 그냥 벤치에 앉아서 다른이 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내가 사는 집 근처에도 스케이트파크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는 주로 남학생들만 있었던 것과 달리

이곳에는 여자들도 많았고 연령층도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되보이는 어린아이부터 40대 정도 되보이는 어른까지 다양하다는 차이가 있었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유독 눈에 띈 이유는,

우리나라였다면 30-40대 되보이는 사람을 봤을 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나이 먹고 주책 맞게 젊은애들이나 타는 스케이트보드라니...'

그런데 여기선 그 누구도 나이 많은 사람들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혈기왕성하고 체격 좋은 젊은이들처럼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지는 않아도

내 눈엔 오히려 그분들이 더 멋있고 대단하게 보였다.

나이와 남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한다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서.

타인과 사회의 시선 때문에 내가 원하는 걸 포기하거나 시도조차 하기를 두려워한 적이 없지 않나

하나하나 헤아리다 보면 꽤나 많을 것만 같다.

앞으로 또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이분들을 기억하고 용기를 내리라


나이가 어려 보이는 친구들도 스케이드보드를 많이 타고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점프며 회전이며 놀랄만한 수준의 실력자들도 몇몇 보였다.

유럽의 다른 나라 청소년들도 그런지는 모르겠었으나

여기는 유독 스케이트보드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보였다.

단순한 취미생활 이상으로 스케이트보드=일상과도 같은 느낌도 적잖이 받을 수 있었다.

마티스도 무사도 매일매일 스케이트보드를 타는데 이런 공원에서만 타는 것이 아니라

동네 슈퍼에 갈 때나 그랑플라스에 갈 때 등 어딘가를 갈 때에도 스케이트보드를 주로 탄다고 해서 놀랐다.

이 둘도 아주 어릴 적 저 꼬마만 할 때부터 보드를 타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저기서 열심히 작은 발을 굴리며 기술을 수없이 연습하고 있는 꼬마 친구들에게도

스케이트보드는 단순한 놀잇거리가 아닌 그들의 열정이 담긴 일상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나 혼자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있는데 보드를 타던 제니퍼가 다가오더니

"민지, 왜 안 타고 여기 앉아있어?"라고 묻는다.

"나 정말 타 본 적이 없어서 탈 줄 모르거든. 며칠 전에 여기서 잠깐 처음 타 본 게 다인데 넘어질까 봐 겁나기도 하고... 나는 너네 구경 잘하고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얼른 타."라고 손사래를 쳤더니

"내가 가르쳐줄게. 차근차근 시도해봐. 나도 마티스 만나기 전까진 한 번도 타 본 적도 없었는데 자꾸 타다 보니까 지금은 재밌어.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타 보는 거랑 안 타 보는 거랑 많이 다를 거야."라며 내 손을 잡아 끈다.

며칠 전 내게 권유한 사람은 마티스였는데 누가 그의 여자친구 아니랄까 봐 이번엔 제니퍼가 권유한다.

타 보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스스로 용기가 나지를 않았는데

제니퍼가 아니었다면 영영 시도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기에 나를 신경 써주는 그녀에게 고마웠다.

친절히 하나하나 설명해주며 격려해주는 덕분에 조금씩 자신감이 붙어서는

타원으로 둘러진 큼직한 벤치 주변을 여러 번 빙빙 돌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재미 붙여 보드를 타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들이 스케이트파크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브뤼셀에 처음 도착한 날, 길을 걷던 내게 뜬금없이 배고프지 않냐고 물었던 이즈마엘이다!

안 그래도 결과적으로 마티스와 제니퍼, 그리고 다른 모든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계기인 그에게

너무 고마운 마음이 커서 떠나기 전에 꼭 제대로 인사를 하고 싶었어서

그가 더욱더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날 그가 내게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날 하루 빠르게 브뤼셀 시내를 구경하고 떠났을 수도 있고,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났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무엇보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이즈마엘도 한눈에 나를 알아보고 내게 다가와 내 양볼에 번갈아가며 키스하며(비쥬) 인사했다.

독일에서는 그냥 인사만 했는데 벨기에에 오니 만났을 때, 헤어질 때 인사를 비쥬로 하니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는데 지금은 그래도 적응이 많이 된 것 같다.

이즈마엘이 "잘 지냈어?" 라며 묻길래

"응, 너무 고맙게도 마티스랑 제니퍼네서 머물렀었어. 나 오늘 저녁에 암스테르담으로 떠나려고 하는데 너 못 보고 가면 어떡하나 걱정했었어. 나한테 말 걸어 준거 진심으로 고마워.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도 없었을 거고 이렇게 잘 먹고 잘 지내지도 못했을 거야."

"오늘 떠난다고? 여기서 더 오래 있다가지 벌써 떠나는 거야? 나도 너를 더 알게 되면 좋을 텐데 아쉽다."

"나도 너희 모두랑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쉬운데 그래도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되니까. 언젠가 꼭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

"그럼, 다시 돌아와도 언제든지 환영인 거 알지? 여행 끝까지 무사히 잘 다니고!"


이즈마엘 말고도 그저께 광장에서 만난 마티스의 친구 니콜도 있고

첫날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만난 지미도 있었는데

옆에는 아시아인 같기도 하고 서양인 같기도 한 내 또래의 여자도 보였다.

제이드라는 이름의 그녀는 호주에서 왔는데 친척들이 벨기에에 살고 있어 1년 전에 놀러 왔다가

우연히 지미랑 친해져서 이번에 다시 놀러 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호주인인데 어머니는 중국인이셔서 종종 아시아에서 왔는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며 웃었다.

불과 4일 전까지만 해도 브뤼셀에 아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던 나였는데

벌써 인연이 인연으로 꼬리를 물어 열댓 명이나 되는 좋은 친구들을 알게 되다니

사람의 인연은 참 소중하고 신기하다.


오후 5시 반쯤이 됐을 즈음,

마티스와 제니퍼가 지금 집으로 돌아가 짐을 싸고 다시 나오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기차 시간을 기차역에 가서 확인해야 하는데

내 유레일패스로는 어떤 지역 열차던지 탈 수가 있었고

브뤼셀과 암스테르담은 거리가 가까워서 기차가 늦은 시간까지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급하게 허둥 지둥 대고 인사도 제대로 못하는 것보다는

여유롭게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해가 지기 전까지 스케이트파크에 남아있을 사람들에게 정말로 안녕이라는 작별인사를 나누고

마티스, 제니퍼, 미겔, 무사, 아르노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고작 며칠 됐다고 벌써 이 방에도 정이 들었나 보다.

짐을 싸는 중 틈틈이 방안 구석구석을 훑어보며 눈에 익혔다.

짐만 얼른 싸들고 우리는 다시 햇살이 환한 바깥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스케이트파크를 지나 브뤼셀 왕궁의 정원으로 향했다.

나와 미겔을 제외한 4명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두두두두 소리를 내며 멋있고 빠르게 움직였다.

그저께는 벤치에 앉았지만 오늘은 계단에 걸터앉았다.

이들의 스케이트보드 애착은 도무지 멈출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계단 위에서 아래로 보드를 타고 높이 점프하며 날기도 하고

꽤나 시끄러운 바퀴소리를 드르륵 내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이들과 함께 있는 내내 이런 여유로운 시간들로 가득하더니 헤어지기 전까지도 여유로움이 넘쳤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늘 왜 이렇게 빨리도 가는 건지,

그저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하고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을 뿐인데도 아쉬울 만큼 시간은 빨리 흘렀다.

이제 정말 떠나야 한다.

마티스와 제니퍼는 기차역까지 데려다 준다고 하여 남아있는 친구들과 먼저 작별인사를 나눴다.

슬프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내가 떠나고 나서도 이들은 이렇게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겠지.

나는 거기에 동참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서도 그들은 나를 기억해줄까? 내가 그들과 함께한 시간들을 그리워하듯 그들도 그러할까?

비록 내가 그들에게는 생소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왔다지만

서로 매일같이 보는 저들과 달리 나는 고작 4일, 그중에서도 단 몇 시간 만을 함께했을 뿐이다.

그러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며 마음을 다독였다.

훗날 그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은 오래도록 좋은 추억으로 간직될 테니

그것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지도 모른다.


기차역에 다다랐다.

이번엔 북역이 아니라 내가 처음 도착했던 중앙역 이었다.

여기는 늘 많은 사람들로 북적북적 거리는 것 같다.

기차역 안 중앙에 높이 위치한 전광판을 이리저리 보며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기차가 있는지 찾아보는데

보이지가 않는다.

마티스와 제니퍼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찾아보지만

어디에도 Amsterdam이라는 목적지는 적혀있지 않았다.

이건 분명 좋지 않은 징조다.

마티스 안내데스크로 뛰어가더니 잠시 후에 돌아와 나에게 말했다.

"오늘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기차는 더 이상 없대. 내일 가야 될 것 같은데 괜찮겠어?"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었건만 왜 벌써 기차가 끊겼다는 말인가!

내일 가는 거야 상관없지만 이미 모두에게 제대로 작별인사를 마치고

모든 짐을 싸서 제니퍼와 마티스네도 나왔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갑작스레 난감해졌다.

이런 내 민망한 마음을 아는 건지 제니퍼와 마티스가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어쨌든 오늘은 떠날 수가 없게 됐으니 오늘도 우리 집에서 자고 내일 기차를 타고 가는 게 어때?"

이 둘은 정말 내게 내려온 천사가 아닐까...?


결국 발목이 묶인 나는 민망한 마음에 슬프면서도 어이없는 이 상황이 웃기기도 했다.

제니퍼와 마티스가 배웅을 위해 기차역에 같이 가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민망함과 미안함을 견디지 못해 그냥 기차역에서 밤을 지새웠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사이 해가 뉘웃뉘웃 지더니 짧은 시간 내로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정원에 남아있던 미겔과 무사와 아르노도 아까 집에 돌아갔을 테니 우리도 집으로 발을 옮기는 듯했는데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다시 스케이트파크로 갔다.

낮에 그렇게 오랜 시간 스케이드보드를 탔음에도 마티스는 아직 여운이 남았는지 어둠 속에서도 잘만 탔다.

그러는 동안 제니퍼와 나는 벤치에 앉았는데 옆에는 한 무리인 듯한 남자 네다섯 명이 있었다.

그중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는 아저씨는 근처 도로변에 주차된 차에서

빵과 흰 종이봉투에 든 여러 음식들과 과일들을 꺼내어 벤치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야밤의 피크닉인가...? 지금 이 시간에 여기서...?'

궁금했지만 그 무리는 약간은 거리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어서 최대한 안 쳐다보려 했다.

그런데 음식 세팅을 마친 아저씨가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거 먹어보고 싶으면 먹어봐."

내가 배고프게 생겼나? 아니면 이 나라 사람들은 원래 낯선 이에게 음식을 잘 권하나?

이즈마엘도 그렇고 이 아저씨도 그렇고 왜 이렇게 나만 보면 먹으라고 하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괜찮다고 몇 번을 사양했는데도 계속 권하시길래 과일만 먹었다.

처음 그 무리를 봤을 때 그리 나쁜 사람들 같지는 않아 보여도 왠지 어두운 느낌이 들어서 피하고 싶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그 아저씨만큼은 꽤 친절한 것 같았다.



청포도를 집어먹으며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데 갑자기 마티스가 오더니 이제 집에 돌아가자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아저씨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마티스와 제니퍼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티스가 하는 말이,

나와 이야기를 나눈 아저씨 말고 다른 두 명의 남자가 나를 보면서

"왜 쟤는 불어를 못해? 멍청한 거 아니야?"라고 하는 말을 듣고서 바로 집에 가자고 한 거란다.

그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자기들 모국어를 말하지 못해 멍청해 보인다니.

흥분할 가치도 없는걸 알면서도 그들에게 돌아가 뭐라고 반박하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눌러야만 했다.


여차저차 잠깐이나마 그리웠던 그들의 집에 다시 돌아왔다.

온몸이 녹초가 되어 당장이라도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오늘 저녁 암스테르담으로 갔다면 지금 이 시간 즈음에야 도착했을 텐데

아무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너무 늦은 시각에 도착하느니 차라리 내일 좀 더 일찍 떠나는 게 나은 것 같다.

마티스와 제니퍼까지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긴 하지만 어찌됐든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일은 정말 정말 떠나야지라는 다짐과 함께.


Avec Martes
Avec Jimmy
Avec Jade
Avec Moussa
Avec Arno
Avec Miguel
Avec Nicole


매거진의 이전글Lasemo Festiv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