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i, Amsterdam

by 김민지

어제의 피로 때문인지 꽤 일찍 잠들었는데도 눈을 뜨니 벌써 오후 열두 시가 넘었다.

어젯밤 다짐했던 대로 일어나자마자 씻고 짐을 정리하며 분주히 떠날 채비를 했다.

어제 한번 작별인사를 한 덕분인지 오늘은 어제보다 마음이 더 차분해졌다.

어제는 미처 쓰지 못했지만 지난밤에 잠들기 전 고마움을 담은 편지와 작은 선물을 제니퍼와 마티스에게 건네었더니

제니퍼는 내게 자신의 그림이 인쇄된 티셔츠와 함께 무언가가 들어있는 파란 봉다리를 내밀었다.

"이 안에 있는 건 뭐야?"라고 물으니

"별건 아니지만 너를 위해 도시락을 쌌어. 기차에서나 도착해서 배고플 것 같아서."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녀를 꽉 안아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까지 이렇게 나를 생각해주는 그녀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마티스와 제니퍼가 어제처럼 기차역까지 배웅해준다는 것을 간신히 말렸다.

오늘은 어제 같은 일이 반복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티스와 제니퍼, 진심으로 고마워. Au revoir(또 만나)!'


여행을 시작한 8일째 되는 날에 비로소 브뤼셀을 떠나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3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서 마치 다른 나라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기분이었다.

주말이라서 더욱 그런지는 몰라도 기차 안은 사람들로 꽉 찼는데

불어뿐만이 아니라 난생처음 들어보는 네덜란드어도 많이 들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네덜란드어는 정말 정말 정말로 내게 생소했다)

좌석도 빈자리 하나 없이 만석이었는데 만약 자리가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 복잡한 기차 안에서는

짐들 때문에 앉기가 어려울 듯싶어 그냥 캐리어에 걸터앉았다.

기차가 두 역을 지난 후 어떤 부자(父子)가 탔는데 아버지께선 연세가 꽤 많아 보이셨다.

여전히 자리는 만석이었다.

그런데 내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 금발의 소녀 두 명이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 남성분들께 여기 앉으시라며 자리를 양보해드리는 것이 아닌가.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초등학생 때 '개인주의'에 대한 내용이 수업시간에 다뤄졌을 때 선생님께서는 서양의 개인주의를 말씀하시며

'어르신들께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것'을 그 예로 드셨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 이후로 '서양인들은 자기 자리를 잘 양보하지 않는다'라는 선입견이 무의식 중에 잠재되어 있었는지

약간은 놀라웠다.

여행을 계속하면서 이후에도 종종 이런 장면들을 많이 보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오랜 시간 가지고 있던 서양인에 대한 내 선입견들은 더욱 희미해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옳은 행동과 옳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때로 너무 지나치게 일반화하고 구분 짓고 있지는 않을까...


두 소녀도 내 곁으로 와서 벽에 기대어 섰다.

눈이 마주치자 수줍게 미소를 교환한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안녕, 어느 나라에서 왔어?"

"한국! 너네는 벨기에니?"

"아니, 우린 독일인데 여행 중이야. 너는 혼자 여행하는 거야?"

"응, 나는 혼자 여행해. 너희는 친구 맞지?"

"응, 고등학교 절친인데 방학이라서 같이 유럽 배낭여행 다니고 있어."

"나도 방학 중에 여행하는 거야. 너네는 얼마나 오래 다니는데?"

"우리는 딱 21일 동안인데 사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서 집에 돌아가는 거야."

"아 정말!? 여행 무사히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기분이 어때?"

"물론 여행이 너무 즐겁고 좋았긴 하지만 사실 집으로 돌아간다니 행복해. 드디어 집에서 편히 쉴 수 있겠다 싶어서. 얼른 집에 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부터 하고 싶어."

"그래? 나는 오늘이 여행 시작한 지 8일째인데 한국 돌아가려면 아직도 7주 정도 남긴 했지만 벌써부터 너무 아쉬운데."

"아직 7주나 남았다고!? 우와 너 정말 길게 여행하는구나. 한국이 너무 그립지 않아?"

"응, 물론 그립긴 한데 이렇게 혼자 배낭여행 다녀보는 게 어릴 적부터 내 꿈이었거든. 그리고 여행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도 운 좋게 너희같이 좋은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서 외롭다고 느낄 새가 없었어."

"그래도 우리는 혼자서 외국을, 그것도 그렇게 오래는 못 다닐 거 같은데. 대단하다."

"아냐, 내가 할 수 있을 정도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거야. 아, 그리고 나 처음 여행 시작한 나라가 독일이었는데!"

"아 그래? 독일 어디?"

"프랑스푸르트. 그리고 벨기에로 오기 전에 마인츠, 맨하임, 하이델베르크, 코블렌츠, 쾰른도 짧게 씩 들렸었어."

"꽤 많이 갔었네! 우리는 브레멘이라는 곳에 살아. 독일 어땠어?"

"아, 그 브레멘 음악대 맞지? 내가 아직도 유럽 도시들이 생소해서 아는 건 그것뿐이지만 반갑다. 독일은 역시 생각했던 대로 너무 좋았어. 도시들도 깨끗하고 건축물들도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응 맞아 하하. 도시마다 특징이나 분위기가 다 다르니까 나중에 다른 곳도 기회가 되면 여행해보고 우리 도시도 놀러와."

"응, 그러고 싶어. 고마워. 그런데 너네는 20일 동안 여행을 어디 어디 어떻게 다닌 거야?"
"우린 독일에서 시작해서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벨기에 이렇게 다녔어. '인터레일'패스라는 기차 패스가 있는데 이 표로 기차를 타고 이동했고."

"인터레일? 나도 기차 패스가 있는데 내껀 유레일이야. 유레일은 비유럽 국가 사람들을 위한 패스거든. 여행 다니면서 힘든 점은 없었어?"

"음, 대체로 괜찮았는데 우리는 캐리어가 아니라 배낭을 메고 다녀서 오래 걸을 경우 종종 어깨가 아팠던 거랑 잠을 우리는 숙소에서 안 자고 텐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캠핑장에서 잤거든. 캠핑장 찾는 게 쉽지 않을 때도 있었어서 그때 조금 힘들었던 것 같아. 아, 샤워를 제대로 할 수 없었을 때도."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고 잤다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여행 다니는 내내 그랬다면 정말 대단한 거 같아. 나같으면 짐을 가지고 캠핑장을 찾아다니는 게 고역이고 귀찮아서 못할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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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암스테르담에 도착할 즈음까지도 우리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리사와 당가는 기차에 계속 남아 네덜란드와 독일 국경 근처의 다른 도시에서 내리면

리사의 아버지께서 데리러 오실 거라고 했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다시 만날 생각에 둘은 굉장히 들떠보였다.

'내가 두 달 후 집에 돌아갈 땐 어떤 기분일까? 마냥 즐거울까? 아니면 돌아가기 아쉬울까?'

기차가 암스테르담에 멈췄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동행이 되어준 리사와 당가에게 작별인사를 하고는 기차에서 내렸다.

여기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다!


네덜란드 하면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풍차, 운하, 자전거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어릴 때부터 언젠가 이곳에 꼭 와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는데,

초등학생 시절 어느 날 우연히 본 네덜란드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인상 깊었기 때문이었다.

암스테르담 운하를 따라 골목골목 사이를 달리는 자전거들도 인상 깊었다.

그때 봤던 장면의 잔상을 떠올리면서도 내가 정말 암스테르담이구나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반이었으므로 벌써 하루의 반나절도 훌쩍 지났지만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있었다.

암스테르담이 어떤 도시인지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알 길이 없으니

여기서 얼마나 머물러야 될지도 가늠이 잡히지 않았다.

벨기에에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들만 간단히 챙기고선 기차역 락커에 짐을 모두 넣었다.

기차역을 걸어나오자마자 보이는 암스테르담의 풍경은 예뻤다.

제니퍼가 싸준 도시락을 기차에서는 먹을 새가 없기도 했지만 안 먹길 잘했다.

이렇게 예쁜 경치를 보면서 먹을 수 있다니 더 맛있을 것만 같다.

파란 봉다리에서 도시락을 꺼내는데 제니퍼의 메세지가 적힌 종이가 있는걸 그제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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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메세지였지만 물밀듯이 감동이 밀려오면서

브뤼셀에 있는 제니퍼와 마티스, 그리고 다른 모든 친구들이 갑자기 너무 그리워졌지만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암스테르담이다.

새로운 곳에 온만큼 마냥 상념에 빠져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도시락을 다 먹고 힘차게 발을 옮겼다.

일단은 기차역 중앙으로 길게 나있는 큰 대로변을 따라 직진으로 쭉 걷기 시작했다.

다른 도시들보다 유독 더욱 관광도시 같은 느낌이 물씬 났던 이유는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거나 레스토랑, 혹은 유명 브랜드샵이 다닥다닥 즐비했기 때문이었다.

현지 네덜란드인들보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더 많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느 한 기념품 가게에 구경을 하러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노골적으로 성적인 상품들이 너무나도 많은 까닭이었다.

남성의 성기 모양의 볼펜이나 실리콘 재질의 유방장난감, 올누드의 여성들이 그려진 카드 등등

가게 한쪽면을 꽉 채운 그 다양한 상품들이 일반 상점에서 그렇게 적나라하게 팔리고 있다니 충격적이었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불순해 보이고 불쾌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유쾌하게 느껴졌다.

역시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불법인 성과 대마초 모두가 합법적인 네덜란드답다.

대강 구경을 마치고는 상점 주인에게 아까 기차역에서 챙겨온 암스테르담 지도를 보여주며 물었다.

"내가 암스테르담에 대해 전혀 몰라서 그런데, 어디 어디를 가보면 좋을지 추천 좀 해줄래?"

"관광객인데 어디가 유명한 지도 모른다고? 글쎄, 암스테르담에는 가볼 곳이 너무 많아. 무엇에 관심이 있는데?"

"음, 딱히 무엇이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을 가보고 싶어."

"(지도에 표시하며) 일단 유명한 박물관은 반 고흐 미술관, 국립 박물관, 마담 투소 밀랍인형 박물관 등이 있고, 여기쯤 있는 꽃시장도 유명해. 마담투소 박물관 앞에 담 광장이라고 제일 유명하고 큰 광장이 있는데 주변에 왕궁이랑 교회도 있어. 이쪽 편에는 하이네켄 맥주공장이 있고 여기서 좀 더 위로 올라가면 본델이라는 공원이 있는데 굉장히 크고 좋아."

"하이네켄? 하이네켄이 네덜란드 맥주였어!?"

"응, 하이네켄이 네덜란드 맥주인걸 몰랐구나. 응 거기 가면 하이네켄 역사랑 맥주 제조 공정도 볼 수 있어."

"근데 나는 본델 공원이 얼마나 크고 좋은지 보고 싶은걸. 아, 그리고 밤에 재밌는 곳은 어디야? 내가 밤을 샐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면 펍이랑 클럽들이 모여있는 레이체플라인이랑 램브란트 광장 두 곳이 유명해. 관광객들은 규모가 좀 더 큰 클럽이 있는 램브란트 광장을 많이 가는데 네덜란드 젊은이들은 레이체플라인을 선호해."


친절하게 지도에 하나하나 표시까지 해주며 설명해준 아저씨 덕분에 어디 어디를 가야 할지 감이 좀 잡혔다.

암스테르담 지도를 보면 다른 도시와 달리 방사형의 모양이라 신기했다.

(나중에 암스테르담을 몇 번 더 가본 후에야 비로소 도시 구조를 완전히 익혔지만

처음이었던 그때는 아무리 지도를 보고 또 봐도 여기가 거기 같고 비슷한 거리 모습에 혼란스러웠다)

상점을 나와 직진으로 좀 더 올라가니 아저씨가 말했던 담 광장이 나왔다.

광장답게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사람과 주위를 둘러싸고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담 광장을 지나자마자 각종 브랜드샵으로 가득한 쇼핑거리가 나왔는데

감사하세도 쇼핑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소중한 시간을 가게 안에서 허비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십 개의 상점들을 지나고 나니 꽃시장이 나왔다.

양재꽃시장처럼 큰 규모는 결코 아니었지만 이곳 역시 관광객들에게는 필수 코스 중 한 곳인가 보다.
하지만 시간이 늦어서인지 벌써 주인들은 가게를 닫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기차역에서부터 길을 쭉 따라오는 동안 그 유명한 박물관들을 몇 군데 지나오긴 했는데,

시간이 늦어 역시 일찍이 문을 닫았을 뿐만 아니라 열려있더라도 굳이 가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유명한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가보지 않을 수 있냐는 비난이 있을 수 있지만,

솔직하게 말을 하자면 나는 예술에 그다지 큰 흥미가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스스로 잘 알았다.

물론 그림이나 사진으로만 보던 유명한 작품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즐겁지 않지는 않겠지만

건물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사물을 감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건물 밖에서 생동감 있는 풍경과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시간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더욱이 나의 시간은 무한한 한계가 있었다.

즉,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만

동시에 나는 정해진 날짜에 여행을 마치고 한국을 돌아가야만 하는 시간의 제약이 있는 것이다.

이 시간들을 나는 남들의 기준이 아닌 나의 가치에 따라 효율적으로 쓰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들르지 않은 이유'를 구구절절하게 변명같이 늘어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쨌든 이런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후회는 없다.


꽃시장을 지나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본델 공원에 가봐야지 싶었는데 지도를 봐도 봐도 길을 알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지나가던 여성에게 길을 물었는데 갈리아라는 이름의 그녀 역시 러시아 관광객이라 모르겠단다.

나처럼 암스테르담에 오늘 처음 도착한 그녀도 어디가 어딘지를 잘 모르겠다며 투정 부렸다.

계획이 없는 나와 그녀는 정처 없이 운하를 따라 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갈리아는 내가 처음 만난 러시아인이었다.

그녀가 자신이 묵는 호스텔로 돌아간다며 작별인사를 했을 때

나도 그녀가 묵는 호스텔에 숙박을 할까 순간 고민을 했지만 그냥 더 돌아다녀보기로 결심했다.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지고 있을 즈음 나는 홀로 레이체플라인 광장에 다다랐다.

낮에는 어떤 광경일지 모르겠으나 밤의 레이체플라인은 빨간색, 푸른색, 초록색 빛으로 현란했다.

생각보다 작은 규모의 그 광장은 가지각색의 소규모 펍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우리나라의 술집들이 몰려있는 홍대나 신촌, 이태원, 강남 등과는 분위기가 너무나도 달랐는데

밤문화를 즐겼던 나로써는 더할 나위 없이 신나는 장소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유럽에서 아직 한 번도 클럽에서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었다.

(쾰른에 하루 머물 때 시내를 구경시켜준 성진 아저씨를 따라 잠깐 구경만 하고 나온 것을 제외하면)

'월요일인 내일보다는 일요일 저녁인 오늘이 좀 더 낫지 않을까'

'내일은 내가 암스테르담을 떠날 수도 있잖아?'


이런 생각들이 든 나는 오늘 밤을 새우겠다는 의지로 무작정 이름도 모르는 펍에 들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오늘 밤 어떤 인연을 만날 지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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