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희'와 ‘락'만을 전시하는 세상에서
며칠 전 다른 동네로 이사를 했다.
동네든 집단이든 소속감 같은 걸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내가 평소 좋아하던 카페는 이사 가기 전에 한번 들러야겠다 싶었다. 먼 곳으로 가는 게 아니라 언제든 올 수 있겠지만, 떠나기 전에 마음속으로라도 작별인사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카페는 나와 달리 정말 감성적이다. 공간도, 그 공간을 운영하는 주인도.
이 카페의 단골이 된 이유는 손님마다 이유가 다르겠지만, 카페의 분위기도 한몫 크게 하는 것 같았다. 카페에 놓인 방명록에는 ‘분위기가 너무 좋다'는 글이 꽤 많다.
내가 이 카페에 방문하는 이유는 아인슈페너 때문이었다. 내 입맛에 맞는 아인슈페너를 하는 집은 극히 드물었다. 맛없는 아메리카노야 얼마든지 먹어 줄 수 있지만, 맛없는 아인슈페너는 제사상에 올라가는 젤리를 먹는 것만큼 싫어했다. 카페의 분위기를 나도 좋아하긴 했지만, 지하철 역 앞 토스트 파는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아인슈페너를 팔더라도 나는 갔을 거다.
그 카페에서도 뭔가 생산적인 것을 하고 싶어서 펜과 노트라도 꼭 들고 가긴 하는데, 결과물을 얻는 데는 늘 실패한다. 이 카페에서는 뭔가 이성적인 사람에게 있어 쓸데없다고 여겨지는, 힐링과 감성을 충전하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 왜인지 그렇게 된다.
내가 앉은 구석진 자리 옆에는 ‘인스타 글을 적은 노트'가 있었다. 카페 주인이 운영하는 인스타에 일기 같은 글을 적었는데, 그것을 노트에 옮겨 적어 둔 것이었다. 노트는 2020년부터 2021년까지의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그 노트에는 카페 주인이 사랑하던 강아지와 연인에 대한 글이 꽤 많았다. 강아지는 나이가 들어서 몇 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카페 주인은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 제대로 머물 곳도 없어 여러 군데 전전하던 시기를 강아지와 함께 보냈다.
그 글을 통해 카페 주인의 과거이자 이 사람의 현재가 된 원인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불안, 슬픔, 그리움. 흔하디 흔한 감정들이 담겨 있었지만 왜인지 눈을 끌었다. 잘 짜인 소설이나 에세이도 잘 안 보는 내가 거의 1시간을 넘게 책장을 넘기고 또 넘겼다.
내가 보는 카페 주인은, 늘 정돈된 상태로 온전하고 평온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가진 채 존재했고, 내가 그것을 운 좋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글들이 진실했기에 내 마음을 끌었다.
진실한 글은 귀하다.
모두가 ‘희'와 ‘락'만을 전시하는 세상에서, 진실한 글을 보는 것이 너무 귀해졌다. 그리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강아지의 안녕을 바라고, 카페 주인의 외로움과 슬픔이 조금은 위로를 받기를 바라게 하는, 그런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