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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써 Mar 16. 2024

총기난사 가해자의 엄마는, 가족이 화목하다고 생각했다

‘어른스러운 모습'은 아이에게 떠넘겨진 비극의 자취일 뿐이다

1999년 4월. 전 세계인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났다. 콜럼바인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이 사건으로 학생과 교사 13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했다. 범인은 콜럼바인 고등학교의 재학생 에릭과 딜런이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의 엄마가 콜럼바인 사건이 일어난 날부터 자신에게 일어난 일과 감정을 쓴 책이다.


이런 대형 사건이 일어나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가족들이 흩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사건이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 건지 확인되지는 않지만, 딜런네 부부도 이혼을 했다. 


가해자의 가족이라면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한다. 특히 성인이 되지도 않은 자식이 문제를 일으켰다면, 대중들의 손가락은 부모를 향하기 쉽다. 


가해자가 저지른 범죄가 그 가족의 육체적 정신적 학대나 무관심 등의 이유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아니면 애초에 폭력적인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교육이 안 되었을 수 있다.


실제로 주동자인 에릭이 남긴 글과 그가 해왔던 행동에는 세상을 향한 반발심, 사람에 대한 증오심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반사회적인 사람이 하는 전형적인 행동 패턴이 보였다. 


에릭의 부모는 그런 에릭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았고, 아이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원래부터 폭력적인 성향을 가졌던 에릭과 달리, 딜런의 경우 굉장히 조용하고 존재감 없는 아이였다.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었다.


자살하기에 용기가 없고 나약했던 딜런은 카리스마와 매력을 가진 에릭에게 끌려 같이 범행을 저질렀다. 에릭은 남을 죽이고 싶어서, 딜런은 자기를 죽이고 싶어서 학교로 향했다.


이건 딜런의 엄마가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우리 아들이 착한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 정도의 이야기는 아니다. 수사 과정에서 나온 딜런의 일기 같은 것들을 보고, 전문가들이 내린 추측이다.


단순히 우울했을 뿐이던 아이가 어떻게 그런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는지는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고 있지 않다.


딜런의 엄마는 가해자의 가족이 느끼는 아픔을 알리고, 아이가 우울증을 겪고 있는 걸 모르고 있는 부모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싶어 이 책을 썼다. 부모들이 아이의 우울증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치료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서 이 책 전반에서 자신의 가족은 화목했고 평범한 중산층 가족이었는데도, 아이의 우울증을 눈치채지 못해서 이런 파국을 맞이했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졌다.


딜런의 엄마가 자신의 가족을 화목하다고 생각한 근거는 이거였다. “주말마다 저녁 식사를 함께 했고, 이야기를 많이 했다"라는 거였다. 


그리고 이 ‘화목한 중산층’ 가정의 저녁 식사는 참사가 있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딜런에게 관심이 정말 없어 보였다. 에릭의 부모가 보인 무관심과는 달랐다.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아들로서의 딜런에게는 관심이 많았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딜런에게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딜런은 말이 없는 아이였다. 그래서 저녁 식사 시간에 있는 대화라는 것도 깊이가 없었고, 일방적으로 진행됐다. 엄마는 딜런에게 “딜런, 괜찮니?”라는 질문을 했고, 딜런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가족끼리의 약속인 주말 저녁 식사에 참여했다는 게 중요해 보였다.


화목한 가족이 되려면 아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조용하고 말 없는 편이 유리하다. 친구와의 주말 약속을 잡지 않고, 가족과의 저녁 식사 약속을 꼭 지키는 상황이 더 유리하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아이는 자신의 주장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게 더 유리하다. 


한마디로 아이가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규칙을 잘 지키는 편이 유리하다. 


엄마는 이러한 모습을 자기 아들이 얼마나 착한 사람이었는지 보여주는 표지로 삼았다. 가족 구성원으로서는 너무나 완벽한 모습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말 저녁마다 있었던 가족과의 저녁 식사가 딜런에게는 우울감을 숨기고 괜찮은 척 노력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어른스러운 모습'은 아이에게 떠넘겨진 비극의 자취일 뿐이다. 어른스러운 아이들은 어른들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욕심, 감정 변화, 욕구들을 억누르고 있다.


나 또한 ‘어른스럽다'는 칭찬이라도 얻으려고 많은 것들을 억눌러 왔던 시절이 있었다.


집안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서, 부모가 너무 엄해서,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등등 많은 이유로 참아왔던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나날들을 엄마는 ‘내가 엄마 말을 잘 듣던 시절'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삶을 이제부터라도 살아가기 위해서 목소리를 내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생겼다.


엄마가 생각하는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이 유지되기 위해서 가족 구성원의 행복이 꼭 필요한 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구성원 각자는 자신의 불행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내가 가족에 속해 있다고 해서, 가족의 행복을 위하는 게 곧 나의 행복을 위하는 길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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