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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주 변호사 Sep 05. 2024

내가 소년사건, 국선보조인을 하는 이유

법률사무소 봄 정현주 변호사

이런 부분은 변호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보람된 일 중에 하나일 수 밖에 없다.


나는 2024년 초부터 의정부지방법원 국선보조인으로 위촉되어 현재까지 국선보조인 일을 하고 있다. 국선보조인이라니 일반인들에게는 약간 특이한 어감일 수도 있다. 일반 형사 사건을 맡아 무죄 주장을 하거나 어떻게든 형량을 낮추려는 시도를 하는 국선변호인과는 달리 국선보조인은 소년재판을 받는 보호소년에 대한 변호인을 일컫는 말이다. 보조인이란 변호인이란 말과 달리 말 그대로 소년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많은 변호사들이 의외로 소년사건을 맡을 기회가 많지 않다. 일반적으로 소년사건은 형사 처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시설(6호 처분 이상)에 들어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변호사 상담을 오기 때문이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사고를 쳐서 경찰서에 가야 할 상황이 되면 걱정을 하지만 우선은 소년재판을 가더라도 크게 전과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말에 안도한다. 그런데 소년재판을 받으러 갔더니 판사님이 아이를 싸늘하게 보시고는 갑자기 '분류심사원에 갔다 오라. '는 말을 한다. 



분류심사원이란 쉽게 말해 소년범들을 위한 구치소로 소년재판을 받기 전인 3주 전~5주까지 일시적으로 감금되어 있는 시설을 말한다. 소년재판을 받다가 '분류심사원 행'을 고지 받으면 아이는 그 자리에서 즉시 부모와는 생이별이다. 핸드폰 등을 모두 두고 입고 있는 옷도 그대로 바로 분류심사원으로 향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경우 부모들은 큰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분류심사원으로 가는 경우는 사실 정해져 있다. 소년이 이미 4호 처분 이상의 처분을 받는 중에 여러 건의 범행을 저지른 경우나, 또는 소년 재판을 받은 후 바로 범행을 하는 등 소년에게 반성의 여지가 없다고 느껴질 때 판사는 재판을 미루고 일단 소년을 분류심사원으로 보낸다. 이렇게 갑자기 소년분류심사원으로 가게 되면, 많은 부모들이 이제 보호감호시설 또는 소년원 처분을 받을까 봐 전전긍긍하게 된다. 이런 경우가 변호사를 찾아 가장 많이 상담을 받는 경우다. 조금 더 검색을 해보면 일반 변호사들이 소년사건을 잘 모르거나 실제 경험을 많이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년사건 전문 변호사를 찾는 것도 그 이유다. 



법률사무소 봄 정현주 변호사



 ' 국선보조인과 사선변호사와의 차이가 있을까? ' 



가장 큰 차이는 물론 선임료이다. 분류심사원에 가게 되면 무조건 국선보조인으로 보조를 받을 수 있는 반면, 사선변호사는 수백에 달하는 수임료를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과에도 차이가 있을까? 



물론 있다. 나도 잘 몰랐지만 국선보조인은 사실상 무임금에 가깝다. 10여 년 전, 사법연수원 때 가정법원 시보를 하면서 국선보조인을 했을 때의 수당을 그대로 받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국선보조인을 하기 위해 안양에 있는 분류심사원에 갔다가 부모를 면담하고 보조인 의견서를 작성하여 제출까지 하고 재판을 받았는데 여비가 없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수당을 거절당한 적도 있다. 시간이 금과 같은 나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일이다. 많은 국선보조인들이 이런 이유로 분류심사원도 가지 않고 의견서를 쓰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사선으로 선임을 한다고 해도 소년사건은 변호사에게 돈이 되는 사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소년사건은 반드시 소년을 만나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듣고 그 마음을 교화해야 하며, 진심으로 의견서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과 마음 씀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법률사무소 봄의 소년사건들은 모두 내가 직접 소년들을 만나고 있다. 다른 소속 변호사를 보내지 않는다. 




시간이 금와 같은 나는, 왜 여전히 소년사건을 왜 하고 있을까? 




법률사무소 봄 정현주 변호사



최근에는 다음 주 재판을 앞두고 있는 소년을 만나러 안양에 있는 분류심사원으로 갔다. 그때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 변호사님, 분류심사원에서 3번이나 면회 온 변호사님은 변호사님이 처음이래요. ' 


사실, 아이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의뢰인인 부모님의 간절한 요청이 있었다. 아이가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니 변호사님이 가셔서 좋은 말씀 많이 해달라는 취지였다. 물론 바쁘신 것은 알고 있지만... 이란 이야기도 함께였지만 몇 번이나 진심으로 부탁을 하셨기에 어렵사리 시간을 내서 면회를 온 것이다. 


내가 소년사건을 하는 이유는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변호사로서는 가장 보람된 일이기도 하다. 나는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변호 사일을 하다 보면, 습관적으로 같은 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사기라는 죄명으로 재판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기 전과가 있고, 성범죄도 마찬가지이며, 음주운전도 대부분 동종 전과가 있다. 


상담을 하면 또 어떠한가? 왜 이런 일을 하게 되었냐고 물으면, 계속 본인은 잘못이 없으며 모든 것은 상황이나 상대 탓이라고 하거나 또는 변호사에게 거짓말을 한다. 자신의 잘못을 바로 보고 인정을 해야 변할 수 있는데 자신은 보지 않고 온통 주변이나 타인만 보고 있으니 변할 리가 없다. 물론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 이미 굳어졌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의 내면은 색깔로도 표현된다. 그 내면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무척 힘이 빠질 때가 많다. 하지만 내가 만난 소년들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이미 형성이 되어버렸고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소년들도 존재하지만, 적어도 사선변호사를 선임할 정도로 부모에게 애정을 받고 있는 소년들은 높은 확률도 방황을 멈추고, 변하기도 한다. 


소년범들은 대부분 결핍이 있는데 그 결핍의 이유가 '사랑'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단 한 사람의 어른이 있다면 아이는 괜찮아질 수 있다. 분류심사원에서의 혼자 있는 시간들은 아이에게 형벌이 아닌 기회가 되기도 한다. 


' 변호사님, 저는 여기 있으니까 혼자서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그건 좋아요. ' 


' 그래, 어떤 생각을 했는데? ' 


' 앞으로 나가서 어떻게 할지에 대한 생각, 뭐 할지에 대한 생각들이요. ' 


나는 소년들에게 주로 이렇게 말한다. 


' 나는 너를 도와주려고 왔어. 부모님은 네가 시설에 들어가는 것을 정말로 바라지 않거든. 나도 바라지 않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 이곳에 있는 동안 너도 변화를 해야 해. 여기에 있는 것은 억울한 일이 아닌, 지금까지의 너의 행동에 대한 결과기도 하거든. 자 생각해 보자. 지금 이 순간은 너에게 기회야. 방황은 나쁜 것이 아니야. 앞으로가 중요한 거지. 


10대 때 방황을 하는 것은 오히려 20대, 30대 때의 방황보다 훨씬 나을 수도 있어. 사람들은 누구나 방황을 해. 나도 방황을 엄청 많이 했어. 하지만 봐봐. 지금은 변호사가 돼서 너를 도와주러 왔어. 그러니 앞으로가 중요한 거야. 나는, 네가 실제로는 변하지 않았는데 거짓말로 서면을 써서 판사님께 올리는 것을 원하지 않아. 

어때,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 


아이들은 주로 말을 하지 않는다.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서 생각에 잠길 뿐이다. 나는 방법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전하기도 한다. 


' 우선은 앞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 어떤 방식으로도. 그리고 나에게 피해를 주려는 친구라고 느껴지면 그 또한 멀리하자. 간단하지? 사실 이 두 가지만 지켜도 인생은 꽤 괜찮아져.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면, 그래서 남을 도와주거나 마음을 쓸 정도가 되면, 그때는 정말로 내 주위가 괜찮은 사람들로 채워질 거야. 그리고 너는 너의 길을 가는 거야. '


이런 이야기가 통할 수 있는 사건은 오로지 '소년사건'밖에 없다. 나는 단지 소년재판을 준비하면서 의견서를 쓰는 것이 아니라 방황하는 소년들에게 조금은 변화를 주고 싶은 것이다. 소년들은 아직 내면이 말랑하다. 때때로 방법을 몰라 방황을 하기 때문에 올바른 방향만 잡아주면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뀐다.이런 부분은 변호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보람된 일 중에 하나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내가 아직까지도 소년사건을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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