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면,

진정한 행복은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by 정현주 변호사


나는 조금 더 산뜻한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읽고 있던 책을 가지고 나와 통창이 보이는 카페로 걸어갔다. 그야말로 숨이 턱 막히는 더위였지만 나는 이글거리는 땅을 바라보면서 묵묵히 앞을 향해 걸었다. 오늘은 출근을 하며 귀걸이와 목걸이를 모두 잊어버리고 담백하게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4년간 출근을 하면서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나는 카페로 들어가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서 바로 앞 쇼케이스에 놓인 케이크를 주문할까 잠깐 고민했다.


설탕을 녹여만든 브뤨레 치즈케이크가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갈 만큼 달달해 보여서 커피와 함께 주문한다. 쇼케이스를 좀 더 구경하다가 사선으로 만든 카페 가운데에 놓인 커다란 탁자 바로 옆자리에 책을 놓고 커피를 가져와 앉는다. 하드커버의 책은 끝이 여기저기 접혀있는 상태로, 중간 정도에 책갈피가 꽂혀있다. 나는 이미 이 책을 5번이나 읽었다. 나는 새로운 것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면 이미 읽었던 책들 중에서 한 가지를 세심하게 골라 그것이 끝날 때까지 집중해서 읽곤 한다. 그럴 때의 내 머릿속은 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은 낡은 전차의 바퀴가 천천히 돌아가는 것처럼 무겁게, 천천히 움직인다고 느껴진다. 굳어져 있는 것보다는 그런 시간이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 시간이 갈수록 정말로 좋아하는 것들을 만나기 힘들어. '


' 어쩌면 감동이 덜해져서 그런 걸까? '


' 물론. 하지만 정말로 좋은 것들이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 그리고 어릴 때는 그 가치를 모르니까. 뭐든지 정말 좋은 것들은 매우 적고 어려서는 그 가치를 모르기도 하고, 나중에는 알면서도 놓치기도 하는 것 같아. '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나는, 늘 그렇듯이 턱을 괴고 잠시 상념에 빠진다. 시간은 느릿하게 흘러간다. 귓가에서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클래식 피아노 음악이 주위의 공기에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 연약한 소리를 낸다. 너무 더운 덕분인지 카페에는 아무도 없다. 나는 무심코 눈부시게 뜨거워 보이는 바깥으로 시선을 던진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없다. 다들 조금도 걷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잘 보지 않는 tv에는 연일 지속되는 폭염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는 기사가 빠짐없이 떠오른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그림자 분리 작업의 그 이전 세계로, 조금 더 오랜 세계로 나아가있다. 조금 더 글을 남길 수 있었을 때. 사랑을 전혀 모르던 시절. 어디에도 매인 것이 없이 나는 오래도록 길을 걸었고 꽤 많은 사람들을 스쳐갔다.


' 지금은 사랑에 대해 알아? '


사고의 흐름 속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묻는다. 그것은 분명 나를 바라보는 다른 이리와 같은 존재이다. 한때는 불온함으로 가득 찬 그 녀석의 존재가 나를 뒤덮은 것이 무서웠던 나머지 열심히 도망을 치기도 했다. 의미 없는 짓이었다. 우리는 어차피 같은 본질에서 나온 것이므로. 나는 이제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이리가 말을 걸면 나는 그냥 대답을 해주면 되는 것이다.


' 어느 정도는. '


나는 잠시 생각을 한 채 대답한다. 다 안다면 거짓말일 테고 어느 정도 안다면 그것이 지금 나의 상태에서 맞는 말일게다.


' 그래서 지금은 어때? '


나는 그 질문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을 한다. 마치 버퍼링이 걸린 테이프처럼.


' 나는 지금 괜찮아. 아무런 욕망이 없고, 평온한 상태야. 좀 더 잘하고 싶은 것들이 있고 가까운 미래에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있지만 설사 그것들이 모두 사라진다고 해도 나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아. '


나는 조금 더 말하고 싶다.


' 그래, 나는 나로 가득한 상태야. 이곳은 아무것도 없고, 불필요한 소모도 논쟁도 없어. 침묵에 가까운 고요만 있을 뿐이야. 나는 사유(思惟) 하고 그 지점에 존재하지. 물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고 있고 해결책을 제시해 줘야 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에 대한 힘을 쓸 수밖에 없어. 그런 반드시 필요한 일들을 하기 위해 나는 실체를 분리하기로 마음먹었어. 그것은 이미 어느 정도 성공했지. 실체의 나는 이제 평온함을 찾았어. '


' 어떻게 평온함을 찾을 수 있었어? '


너는 묻는다. 너는 '정리'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 본연의 나로서 존재할 것. 나는 꽤 오랫동안을 외로움 속에서 지내왔어. 어쩌면 나의 삶의 대부분이 고독과 함께 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야. 누구나 많건 적건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고 그것들을 끌어안으며 시간을 버텨오지만, 나의 경우에는 삶이 여러 번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변해갔기 때문에 앞으로의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어. '


20대의 시절은 그야말로 번잡했다. 나는 한곳에 머물지 않았으며 미래에 대한 계획은 전혀 세워놓지 않았다. 방황의 끝에 다다랐을 때 다행히 공부를 시작했지만 무엇인가를 이루기에는 이미 마음은 너덜너덜했다. 모든 에너지가 바깥으로 향해 있었고 어디에도 응축된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등대와 같은 이들을 만나 자신감을 얻고 공부에 집중을 하여 5년이 지나 시험에 합격한 직후에는 너무 지쳐있었기 때문에 결혼을 선택했다. 물론 그 시간 속의 나는 여전히 한낮의 유령처럼, 삶이라는 거대한 문제에 대해서 진지함이 없이 그저 어슬렁거리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바깥으로만 나돌고 있었다. 결핍감을 끌어안고 어느 세계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많은 것들을 외면하고 있었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싫을 때가 있다. 혼자라는 것은 어떻게든 바꿀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기 싫다. 나는 두 손을 펼쳐 내 몸을 잔뜩 끌어안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있기도 했다. 마치 높고 높은 산을 끊임없이 오를 수 없듯이 말이다. 나는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주었는가? 나는 타인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 그로 인해 상처받았다. 그래서 우물로 떨어져 버렸다.


종국에 내가 발견한 것은,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않고 서성이던 때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빛이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있었다. 내가 한껏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을 때부터 말이다. 지쳐있던 나는 체념하고 말았다. 바람이 많이 불던 날의 일이다. 나는 그 빛과 함께 있으며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고통의 감정들은 모두 분리하였고 아무것도 아닌 채로 남기로 했다.


' 나는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 삶이란 어쩌면 나의 동반자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사람은 모두 혼자로서 완전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불완전한 상태로 나를 채워줄 사람을 찾아 만남을 지속하고 기대하거나 실망을 하여 결국 떠나게 되는 거야. 하지만 그래,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어. 진정한 행복은 내가 나로서 완전히 존재할 수 있을 때부터 시작하는 거야. 나의 빛을 찾고 나의 존재를 자각하면 타인에게 바라는 것들은 더 이상 기대나 실망이 아니야. 너와 나는 독립된 존재로서 같이 삶을 나아가는 거야. '


그것은 더 이상 결핍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가장 하찮게 여겼던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내가 진정한 나로서 존재할 때, 그것으로 가득 채워질 때 나는 비로소 긴긴 어둠과도 같은 고통에서 해방이 된다. 그것은 타인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나의 본질성을 자각하여야 하며 자발적인 선택으로 타인을, 동반자를 만나야 한다.


이제 나는 나에게 진정으로 전념하는 무엇보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가치로운 사람들에게만 머물 생각이다. 기꺼이 삶을 허락할 생각인 것이다. 유한한 삶 속에서 가치로운 것을 찾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 이상의 평온함이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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