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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형 Oct 04. 2019

프로덕트 마케터, 핀테크 마케팅의 핵심

금융은 문과생과 마케터의 무덤이다? 이제는 옛말입니다.


어니스트펀드에는 프로덕트 마케팅(Product Marketing)이라는 역할이 있습니다. 퍼포먼스 마케팅, 브랜드 마케팅, 그로쓰 해킹은 들어보셨어도 프로덕트 마케팅이라는 단어는 조금 낯선 분들이 있을 텐데요. 얼마 전, '내가 하는 일의 본질은 무엇일까' 고민하며 생각을 정리하다 나온 단편들을 한 데 모아 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프로덕트 마케터란 무엇일까요? 쉽게 말하면, 제품 혹은 상품의(Product) 개선 작업에 직접 참여하고, 이를 통해 마케팅과 브랜딩이 목표로 하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직무를 말합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낯선 개념이지만, 실리콘 밸리에서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직무이고, 판매하는 상품이 제품 그 자체인 앱이나 플랫폼을 만드는 기업에서는 더욱 중요한 직무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핀테크 기업에서의 프로덕트 마케팅은 어떤 역할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의 제 경험을 토대로 보자면,


1) 핀테크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금융 상품2) 그 금융상품이 진열되어 있는 매대를 함께 관리하고 개선 작업에 참여하며, 마케팅-브랜딩 요소가 반영되어야 하는 3) 웹 프로덕트에 의견을 내고, 관련 과업을 관리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직무라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낯선 직무처럼 보이는 프로덕트 마케터가 왜 핀테크 기업에 있는 걸까요? 마케팅 캠페인 하고, 브랜딩 하고, 콘텐츠 만들고, 수치 관리하고, 물건 파는 것 말고도 더 해야 하는 게 있는 걸까요? 핀테크 마케팅은 일반적인 마케팅과 다른 점이라도 있는 걸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프로덕트 마케터의 직무 속성과 금융 산업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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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마케터는 보통, 상품을 '잘' 판매하는 일에 집중합니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판매고를 올리는 것이 마케터의 목표이기 때문에,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모든 일을 다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때때로 마케터는 상품 제작 단계에 관여하기도 합니다. 더 좋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제품 제작에 기여하고, 다시 더 좋은 제품이 나오면 마케팅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죠.

 

이 선순환 구조가 있는 회사에서 마케터는 회사의 성장에 엄청난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마케터라는 타이틀도 이 과정에서 획득할 수 있습니다. 소비재 영역에서는 비교적 마케터가 제품 제작에 개입하기가 쉽습니다. 제품 자체가 일상과 친숙하기도 하고, 아이디어가 반영되는 과정도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입니다.


태극당은 마케팅의 적극적인 제품 개입을 통해 좋은 성과를 낸 케이스입니다


하지만 금융 상품은 그렇지 않습니다. 금융상품은 보통 '숫자'와 '기업 이미지'가 전부입니다. 금리가 저렴하거나, 보험료가 낮으면 선택받을 수 있습니다. 상품 내용을 잘 몰라도, 브랜딩이 잘 되어 있으면 선택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금융은 워낙 어렵다 보니 설명을 하는 쪽도 듣는 쪽도 모두 포기하기 쉽습니다. 보험과 대출은 그나마 많이 나아졌지만, 투자는 여전히 어렵고 복잡합니다. 


특히 투자는 대부분 기관과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었다 보니, 설명을 쉽게 하려고도 하지 않고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일반 고객들에게 팔 때도 '설명'이 친절해지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그동안의 금융은 오프라인 중심의 경험이었다 보니, '은행원의 말투', '펀드매니저의 관상', '주변 사람들의 간증' 같은 정성적인 부분이 고객 선택의 요인이 됩니다.


이 때문에, 금융업은 마케터와 브랜더들의 무덤으로 불리곤 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상품 설명서에 의견을 낼 수도, 오프라인 현장에 나가서 설명을 해줄 수도 없습니다. 오직 숫자와 브랜드 이미지. 두 가지 앞에서 금융 마케터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탁월한 금융 마케팅 사례가 드문 것도, 금융 마케팅이 늘 다른 산업에 비해 뒤처지는 것도, 뛰어난 탤런트가 없는 것도 다 이 때문입니다.


수도 없이 죽어나간 금융 마케터들(...), 그러나 핀테크의 마케팅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러나, 핀테크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모두가 금융을 쉽게 이용하는 시대. 금융의 민주화 시대. 투자의 대중화 시대가 눈 앞에 있습니다. 자연스레 금융 상품도 입장이 달라졌습니다. 투자를 고민하지 않던 평범한 직장인들도, 이제 어니스트펀드, 뱅크샐러드, 토스, 카카오페이를 통해 투자를 하고 금융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비슷한 조건 속에서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많아졌습니다. 


반복되는 바일 경험 속에서 단순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 금융 상품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매력이 없거나 고객 경험이 안 좋아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선택의 이유였던 숫자는 무한 경쟁 앞에 모두 낮아지고 저렴해졌습니다. 


자연스레 금융도 일반 재화처럼 소비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같아진 상품 사이에서, 회사들은 각자 '우리 상품'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와, 상품을 이해시키려는 노력, 그리고 매력성과 안정성을 상품에서부터 어필하는 작업이 필요해졌습니다. 즉, 금융 상품도 제품 제작 단계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죠.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오랜 시간 금융 전문성을 쌓아온 금융인들일까요? 가능하겠지만, 그들이 대중의 언어를 사용하고 고객을 이해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대중의 시선에서 상품을 팔아본 경험이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핀테크 기업에서 이 역할은 조금씩 다른 사람들에게 나뉘고 미뤄져 있습니다. 보통은 기획자나 디자이너가 이 역할을 맡긴 하지만, 상품 판매에 대한 성과와 책임을 이들에게 전가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마케터가 앞으로 나서기도 할 테지만, 금융 조직의 특성상 마케터들에게 상품 개입의 권한을 주지 않기 때문에 교착상태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금융산업에서의 프로덕트 마케팅은 마케터 개인에게도, 조직 차원에서도 큰 도전인 것입니다. 


금융, 소비자, 개발, 브랜딩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 그러면서도 상품 판매의 성과에 기여하고, 지속적으로 상품과 매대를 관리하는 사람. 전통 금융 산업에서는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신인류가, 이제는 핀테크의 홍수 속에서 필수 직무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어니스트펀드는 이 역할을 금융 프로덕트 마케팅(Finance Product Marketing)이라 부르고 있고, 현재는 브랜드팀에 소속된 멤버들이 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어니스트펀드의 프로덕트 마케팅을 위해 고심하는 (갈리는) 팀원들


그럼 프로덕트 마케터는 실제로 어떤 일을 할까요? 

정말 많은 일이 있지만, 간단하게 한 가지만 소개해보려 합니다.


최근 어니스트펀드의 프로덕트 마케팅이 가장 집중했던 영역은 '올바른 투자상품 선택 유도'였습니다. 투자 상품을 선택할 때에는 여러 조건을 따져봐야 합니다. 담보는 안정적인지, 상환 시나리오는 명확한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인지 등 여러 가지를 봐야 하죠. 그러나 고객들은 고수익과 단기 상품을 선호했습니다. 수익률이 높은 상품, 빠르게 상환되는 단기 상품은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금융에서는 보통 금리가 높을수록 위험이 높습니다. 금리가 낮은 상품들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만큼 안정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고위험 상품을 좋아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상품을 선택하는 매대에서 투자 위험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객들은 사실 고위험 상품만을 좋아한 게 아니라, 고수익 상품이 좋아 보이는 환경이 노출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상품을 선택할 때 리스크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면? 고수익 상품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면? 고객은 당연히 위험도도 함께 고민할 겁니다.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은 투자는 그저 가즈아일 뿐입니다.


부작용은 더 있었습니다. 고수익 상품만 잘 팔리게 되니, 진짜 주목받아야 할 안정적인 상품들은 외면받기 일쑤였습니다. 모든 기업들이 높은 수익률의 위험한 상품만을 취급하기 시작했고, 이는 고스란히 투자자 손실로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위험도를 노출하는 회사는 드물었습니다. 아마도 '위험' 딱지를 붙이면 상품이 잘 안 팔릴 거라는 걱정을 했기 때문일 겁니다.


어니스트펀드는 오랜 고민 끝에 '리스크'를 함께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고객이 본인의 투자성향에 따라 상품의 리스크를 미리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매대에서 수익률과 투자기간 말고도 '리스크'를 판단할 수 있는 라벨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연 14% 상품과 연 8% 상품을 동시에 출시하면 언제나 연 14% 상품이 승리했지만, 이제는 연 8% 상품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연 14% 상품이 '균형지향' 라벨에 B2 등급을 달고 나온 반면, 연 8% 상품엔 '안정지향' 라벨과 A2 등급이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본인의 투자 성향에 맞게 상품을 선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만 선택해서 투자하던 고객들이 오히려 두 개의 상품에 금액을 나누어 분산하기도 했습니다. 위험을 함께 말했지만, 상품 판매는 더욱 성공적이었던 것이죠.


이에 힘입어 우리는 투자 설명 페이지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예전에는 간략하게 적었던 투자 리스크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적었습니다. 문제는 언제 생길 수 있는지,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할 건지, 해결이 안 되면 손실이 날 가능성이 있는지를 더욱 자세하게 적었습니다.

 

리스크를 표시한 상품 리스트와(좌) 리스크를 자세하게 적어놓은 상품 페이지(우)


결과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고객들은 점점 더 본인의 투자 성향과 리스크를 더 잘 알게 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희는 단점을 함께 말했지만, 고객들은 오히려 그걸 원했다는 것을 이제 서로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담이지만, 단점을 함께 파는 마케팅은 금융 마케팅이 유일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만큼 어려운 것이죠. 살려주세요)


이처럼 핀테크 기업 마케터는 적극적으로 상품과 제품에 개입해야 합니다. 어려운 상품 설명을 함께 고민하고, 보통의 고객을 위한 상품 전략을 세우고, 상품이 진열되어 있는 매대를 더욱 고객 친화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어니스트펀드가 가야 할 길도 멉니다. 더 쉬워지고, 더 친절해지고, 더 고객 친화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차이가 비록 미세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문제 인식을 지니지 않은 기업과의 차이는 더욱 커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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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당연하지만, '프로덕트 마케팅'만 잘하는 마케터란 없습니다. 최근 퍼포먼스 마케팅 열풍이 불며, 수치와 데이터 중심의 마케팅이 떠오르는 듯 하지만 이는 물건을 잘 팔기 위한 하나의 역할에 불과합니다. 새로운 마케팅이 등장한다 해도, '문제점을 찾아 개선하고, 개선을 통해 성과를 낸다.'는 마케팅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프로덕트 마케팅을 잘하기 위해선 카피도 잘 써야 하고, 개발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하며, 수치 분석에 능해야 하고, 결정적으로 속한 산업군의 대한 이해와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네 가지를 다 잘하는 마케터는 어떤 마케팅도 다 잘할 수 있습니다(...) 다만 프로덕트 마케팅은 그중에서도 '제품'과 '상품'에 집중할 뿐이며, 핀테크에서는 마케터들의 진입이 허용되지 않던 '금융 상품'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을 뿐입니다.


핀테크는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그 변화의 물결은 직무로까지 넘어오고 있습니다. 새로운 산업에는 새로운 마케팅이 필요합니다. 금융과 기술이 합쳐 새로운 영역이 생겼으니, 마케팅도 '새로운 것'을 합쳐야 합니다. 핀테크 산업에서 일하는 마케터에게 필요한 '새로운 것'은 금융 지식과 기술 이해일 것입니다.


이제 금융 상품을 단순히 은행 창구, 텔레마케팅, 이메일로 팔던 시대는 갔습니다. 기존의 금융기업들이 여전히 기존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적극적으로 상품과 제품에 의견을 내는 마케터와 핀테크 기업을 이기기 어려울 겁니다. 금융 전문가들이 아무리 즐비하다 하더라도, 고객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문과인 팀원들과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금융 조금 공부했다고 으스대지 말고, 금융 바보였던 문과생의 초심을 잃지 말자'고요. 마케터들이 금융 전문가들과 함께 토론하고 논의해서 상품을 개선하는 모습은 적어도 어니스트펀드에서는 낯선 모습이 아닙니다. 게다가 전문가의 시선과 고객의 시선을 함께 갖고 있으니, 더 나은 금융 상품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요. 어쩌면 고객 친화적인 금융상품이란 것은 가장 대중과 가까운 사람들의 시선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닐까요? 


모든 사람이 금융을 쉽게 사용하는 '금융의 민주화'. 우리가 만들어내려는 미래는 어쩌면 '프로덕트 마케팅'에서부터 시작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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