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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형 Dec 02. 2019

우리는 모두 투자자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감내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내게 투자란 줄곧 행복을 미루는 일이었다. 미래를 기다리기보다는 '지금의 즐거움과 행복'에 더 큰 만족을 느꼈던 터였을까. 굳이 확실하게 오지도 않을 미래를 위해, 지금의 나를 괴롭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


예컨대, 사랑이 그랬다. '지금은 내가 너무 보잘것없어서, 언젠가 더 멋진 내가 되어 나타날게' 라거나, '사랑하니까 보내줄게, 지금은 떨어지지만 나중엔 행복해질 거야' 같은 말은 내 삶에 없었다. 지금 만날 수 없는 인연이라면, 그 순간 허락된 행복이 아닌 것이다. 그 행복은 미룬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오늘의 내가 무언가를 투자한다 할지라도 얻어낼 수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것이기 때문이다. 


투자란 쉽게 믿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마치 매년 학기초의 담임선생님과 같달까. 초등학교 1학년부터 대학교 4학년에 이르기까지,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올해가 제일 중요하다'라고 으름장을 놓는 선생님들의 말은 좀처럼 믿기가 어려웠다. '올해가 제일 중요해~ 올해 수학을 잡아둬야 대학생 때 편하다~ 그러니까 미리 투자한다 치고 지금 열심히 해'와 같은 말들이 그랬다. 조금 속는 셈 치고 넘어가 줬을 땐 지금 공부를 해야 하는 현실이 억울했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단 한순간도 편하지 않았던 모든 나날을 마주하며 지난날을 원망했다. 해도 힘들 줄 알았으면 그때 조금 더 놀걸!


인생에선 담임 선생님처럼 담보(?)라도 걸고 투자하라고 말해주는 사람이라도 있었지. 돈과 관련된 투자에서는 그런 것도 없었다. 친구 놈의 말에 홀려 이름도 모르는 회사의 주식을 샀을 때에는 오직 믿음만 있었다. '오를 것이다. 오를 이유가 있다. 아니, 그저 너는 올라야 한다.' 같은 무모함도 있었던 것 같다. 평소엔 관심도 없던 경제 동향과 새로운 산업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들으며, 이미 오르지도 않은 주식을 두고선 갖고 싶은 물건들과 밀린 효도를 떠올리며 행복한 미래를 그리기도 했었다. 단 한 번도 제대로 이루어진 적은 없었지만.


그런 내가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늘어가는 뱃살과 주름을 보면서는 오늘 운동에 나 자신을 투자하지 않으면 큰일이 나겠다 생각했다. 영어를 까먹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에는, 외식을 한 번 줄이고 전화영어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줄어드는, 얼마 남지 않은 부모님과의 시간들을 떠오를 때는, 조급한 마음을 달래며 술 약속 대신 엄마, 아빠와의 저녁 식사에 시간을 투자하곤 했다. 일 때문에 평일엔 만나기 어려웠던 연인이 떠나갈 것 같을 때에는, 일을 다 제치고 내 모든 신경을 투자해 지나간 사랑을 만회하려고도 했었다.


투자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엔 늘 어떤 절박함과 만회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이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아서. 소중한 지금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불확실한 무언가에라도 나를 걸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잘 안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혹은 이미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했던 투자들은 결국 다 잘 됐을까? 누가 그랬던가, 투자란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 현재의 무언가를 감내하는 일이라고. 내가 한 투자들이 확실한 미래를 불러오는 것은 아니었기에, 당연하게도 나의 뒤늦은 투자들은 모두 잘되진 않았다. 어떤 것들은 만회되는 듯 보였지만, 결국 흘러가고 떠나보내야 했었고. 그때라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행복조차 지키지 못했을 아찔한 순간들도 있었다. 실패한 것들은 후회하냐고? 아니, 아마 그때의 내가 그 불확실한 '투자'조차 하지 않았다면 아마 오늘과 과거를 더 원망하며 지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투자'란 한풀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 전, 어떤 모임에서 만난 중년의 가장과의 대화가 잊히지 않는다. 주식에 많은 돈을 잃었지만, P2P에도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좋은 투자 기회를 찾고 있다던 누군가의 아버지. 나는 물었다. '돈을 잃었음에도 계속해서 투자를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오히려 돈을 저축하고 있는 것이 더 안전하지 않습니까. 왜 안전한 현실을 택하지 않고, 불확실한 미래를 자꾸 탐내시는 이유는 뭡니까.'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답했다.


"이 돈을 잃어도, 우리 딸 대학교는 보낼 수 있습니다. 내가 더 열심히 살면 되니까요. 그런데, 지금 투자를 하지 않으면 유학을 가고 싶다는 그 녀석의 소원은 들어줄 수 없어요. 내년이면 팔순이신 어머니가 유럽을 가고 싶다 하십니다. 투자라도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이 돈을 그저 모아두기만 해서 얻은 평화는, 제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합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를 뛰어난 투자자라 부를 수 있을까? 돈으로는 모르겠다. 잃은 돈도 있고(경차 한 대는 뽑았을 거라며 웃었다), 앞으로 잃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으니. 하지만 그는 분명한 투자자다. 자녀, 배우자, 부모님에게 자신을 헌신하며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미래를 위해, 오늘의 나를 헌신하는 투자자다. 적어도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 오늘을 베팅하는 그는 인생의 주역이자 탁월한 투자자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집에 오는 길에, 어쩌면 우리 모두는 다 투자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투자란 결핍이 있어야지만 하게 되는 비이성적인 행위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조금씩의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모자란 부분을 채우기를 마음먹는 순간, 각자는 각자의 방식대로 본인이 지닌 어떤 것을 태워가며 투자를 한다. 절실하게 잡고 싶은 미래의 행복을 잡고, 흘려보낸 무언가를 만회하기 위해서.


만약, 마음속에 떠오르는 절실함과 결핍이 있다면, 그리고 그 모자란 부분을 채우기 위해 오늘을 버텨내고 있다면, 당신도 멋진 투자자다. 굳이 돈을 걸고 리스크를 감내하지 않더라도, 이미 삶을 걸고 오늘을 버텨내는 당신이 진정한 투자자다.


투자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게 아닌 만큼, 우리가 조금은 헛살아낸 인생과 만회하고 싶은 순간들도 다 투자의 과정일 뿐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실수와 고난은 얼마나 다 멋진가.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 위험을 감내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멋진 투자의 과정이 아니던가. 오늘 내가 의도치 않게 힘든 하루를 보냈다면, 어떤 미래를 위해 오늘 하루를 감내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누구나 멋진 투자자가 될 수 있다.


오늘, 그리고 지금.

당신은 어디에 투자하고 있는가.

당신은 어떤 투자자인가.

무엇을 위해 오늘을 바치고 있는가.


#어니스트펀드 #월간투자문예 #우린모두투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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