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사람에겐 필요없는, 완벽하지 않아서 하게 되는 딴짓에 대하여
우리는 다 결핍을 안고 살아간다. 결핍은 때때로, (아니 잘 생각해보면 늘) 우리가 무언가를 하게 되는 이유기도 하다. 애정이 결핍되어 있다면, 애정을 얻기 위한 무언가를 떠올리고 행동하게 되는 것처럼.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결핍은 사람의 다음 행동을 결정하게 만든다.
내 경우에는 사이드프로젝트가 그랬다. 요즘엔 직장인들의 필수 교양처럼 여겨지는 이 일곱 글자는, 지난 10년 간 내가 일과 이후에 무언가를 계속하게 했던 기이한 결핍과 과거를 설명해주는 아주 그럴싸한 단어였다.
방과 후, 퇴근 후. 본업에서 요구하지 않는 비생산적인 딴짓들을 하던 나는 그 자체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였다. 왜 학교를 다녔을 땐 창업을 했으며, 굳이 바쁜 와중에 기타를 들고 버스킹을 하고, 생일 파티를 록 페스티벌처럼 하며, 캘리그라피를 배워 작가로 활동하고, 돈을 들여 아지트를 만들고, 페이스북에 돈 안되는 콘텐츠를 연재하는 것까지. 하나같이 모두 설명하기 어려운 비효율적인 일들 뿐이었다.
문제는 나도 내가 왜 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냥 몸과 머리가 움직이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무언가를 하고 있는 나를 나조차 설명할 수가 없었다. 때로는 비생산적인 일들만 벌린다며 비아냥도 들었지만, 그런 말들은 나를 멈추지 못했다. 사이드프로젝트라는 멋진 말도 없었던 때라, 그런 딴짓들을 더 자랑스럽게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런 나를 부정할 순 없었다. 설명할 순 없지만, 자꾸 딴짓을 하는 나를 나 스스로부터 사랑해줘야 했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가진 못생긴 엄지 손가락을 두곤, 손재주가 많은 엄지라고 우겨왔던 것과 비슷하달까. 그럼에도 나는 나를 사랑해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그게 나니까.
그런데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사람들이 내게 사이드프로젝트 노하우를 알려달라더라. 언젠가는 강연도 했다. 상상해보라, 백명의 청중을 앞에 두고 직장인 대표로 나와 딴짓 열심히 하라는 말을 휴가내고 나와 설파하는 모습을 말이다. 웃기겠지만, 나는 구원을 받는 느낌이었다. 차트를 역주행하는 가수들의 기분이 이런 걸까 싶었다. 가만히 있었는데, 시대가 달라붙어 나를 숨겨주니 조금은 우쭐해하기도 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지만, 사이드프로젝트 속 우쭐함의 뒤에는 부끄러운 결핍들이 있었다. 바로, 본업이 충분히 멋지지 않다는 자격지심, 내가 가진 이상에 비해 내가 가진 것들이 충분히 그럴싸하지 않다는 괴리감들이 그랬다.
본업 뒤에 나의 이름을 바로 붙여 소개하기만 해도 모든 설명이 끝나는 그런 멋진 어른이고 싶었다. 하지만 삶은 그렇지 않았고, '사이드프로젝트'는 그리하여 모자란 나를 뽀얗게 만들기 위해 스스로 만든 일종의 비비크림이나 왁스 같은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OO회사에 다니는 아무개입니다"라는 말은 참으로 심플하면서도 위대한 말이다. 회사의 이름 만으로도 나의 모든 과거와 현재가 설명이 되니까. 누구나 원하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저 짧은 문장을 위해 인생이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삶이란게 늘 그렇듯, 나의 문장은 짧지 않았고, 스스로의 삶을 설명하기 위해선 늘 '라는'을 붙여야 하는 장황하고 복잡한 처지에 놓이기 일쑤였다.
"안녕하세요, OO'라는' 회사에 다니는 고재형입니다. OO라는 회사는 이런저런 일을 하는 스타트업이고요, 제가 창업한 회사인데 마케팅도 하면서 이런저런 일도 하고 있고요, 퇴근하고는 캘리그라피도 하고, 뭣도 하고, 뭣도 하고 삽니다 하하...'
'라는'이라는 말은 정말 짜증 나는 말이다. 어떤 모임에 가서 자기소개를 하는 날이라도 되면, 내 머릿속은 늘 복잡하게 돌아갔다. 어차피 회사 이름을 말해도 모를 텐데 그냥 이름만 말할까,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말하는 게 더 멋있을까 아니면 닥치는 게 더 나을까. 그러나 늘 나는 대기업과 멋진 일을 하는 사람들의 심플한 소개 앞에서 가벼워지는 법을 잊곤 했다. 그리고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나를 장황하게 소개하고는 조금은 겸연쩍어했다.
"와, 퇴근하고 그렇게 많은걸 어떻게 다 하세요? 저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존경해요"
내가 가고(갖고) 싶었던 회사를 다니던 수십 명의 김 아무개 씨는 여지없이 이런 말을 했었고, 나는 또 주제를 모르고 내가 어찌 그렇게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늘어놓곤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그 회사를 다녔으면, 나도 부자였으면, 나도 전문직이었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살았을지도 몰라요.'라고.
그러나 삶은 야속하면서도 공정했다. 그 회사를 다니지 않은 덕에, 부자가 아닌 덕에, 평범한 직장인인 덕에, 아득 바득 해온 딴짓들은 모이고 모여 '할 줄 아는 게 많은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주었다. 그런 결핍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무얼 할 줄 아는 사람이었을까. 물론 결핍이 없을 만큼 멋진 무언가를 갖고 살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이었겠지만, 많은 걸 할 줄 알게 된 지금의 나는 그 자체로도 썩 만족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시대가 바뀐 덕에, 나의 소개는 절로 간편해졌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고재형이고요, 직장인이고, 사이드프로젝트를 여러 개 하면서 부업도 하고 취미도 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아, 부족했던 자아가 채워지는 느낌이다. 사이드프로젝트 일곱 글자를 말할 땐 어깨에 힘도 들어간다. 세속적인 명예가 필요했던, 그러면서도 남들에게 나를 멋지게 보여주고 싶었던 치기 어린 나의 결핍은 '할 줄 아는 게 많아진 사람'이 됨으로 인해 비로소 해소된 것도 같다.
그래서일까, 요즘 직장인들이 사이드프로젝트에 집착을 보이는 걸 보면 안쓰러움과 동질감을 동시에 느낀다. 그들은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 걸까, 우리는 왜 갑자기 단체로 동시에 결핍감을 느끼고 있는 걸까. 사실은 그 회사에 다니던 아무개 씨도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걸까. 그들이 채우고 싶은 건 뭘까. 이 결핍의 대행진은 언제 끝나고, 어떻게 끝날까.
최근엔 사이드프로젝트를 검색하면 돈과 관련된 강의들만 나온다. 돈에 결핍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생각한다. 돈을 많이 벌면 우리가 느끼는 대부분의 결핍이 해소되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한다. 사람들이 각자 갖고 있는 결핍의 종류를 안다면, 조금 더 다양하게, 재밌게, 소박하게 딴짓을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했던 수십 가지의 삽질을, 내가 느꼈던 수만 가지 결핍을 글로 남기면 조금 도움이 될까 생각했다. 십 년 가까이 딴짓하며 삽질해온 내게 '사이드프로젝트'라는 멋진 글자를 붙여준 시대에 보답하고 싶다 생각했다.
아주 오래된 생각이지만, 오늘에서야 첫 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