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3

3부 떠난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by 연두씨앗



<경로 이탈자들의 생존신고>


"딱 서브까지 하다가 '탈방송'했어요. 막내 때 월 80만 원 받으면서 잡다한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결혼 후 떠나서 평범한 아이 엄마가 되었는데 행복합니다. 방송할 땐 그 나름대로 가슴 떨리는 설렘이 있었지만 그만큼 숨 막히는 뭔가가 있었던 것 같아요. 경력이 짧기도 하지만 다시 가긴 힘들 것 같아요.... 목과 허리에 디스크 하나씩 남기고 방송을 떠났네요." P.207


브런치에서 알람이 울렸다. 언젠가 방송작가에 대한 글을 읽고 지나치지 못하고 달았던 댓글에 대한 알람이었다. 책을 지필 중인데 댓글 내용을 인용해도 되느냐는 정중한 문의였다. 나는 미처 해보지 못했던 방송가의 불합리함을 폭로(?)하겠다는 그녀를 응원했다. 나는 못했지만, 나는 떠났지만,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었다.

어쩌면 나의 일하는 방식이 나 개인의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 어찌 됐던 중도 포기한 나와 달리 싹싹하고 눈치 빠른 우리 팀 막내였던 동생들은 공중파의 유명 프로그램의 메인까지 됐었다.

코로나가 한참인 시절 우연히 작가 동생의 프로필을 보고 결혼식 소식을 알았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이 있는데, 나와 2살 남짓 차이 나던 작가 동생은 이제야 결혼을 한다고 했다. 그녀에게는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의 메인작가라는 간판이 붙었다.

나는 이력 대신 삶을 선택했다. 방송작가를 포기한 것에 대해서는 가끔은 아쉽고, 대부분은 잘했다고 생각했다. 25살 내가 막내일 때 만삭까지 원고를 마치고 아이를 낳으러 가시던 옆 팀 메인작가님이 이런 얘길 하셨다.

"좋은 사람 있을 때, 빨리 시집가는 것도 방법이야. 방송하다 보면 결혼도 육아도 자꾸 늦어져."

30대 중반이었던 작가님은 20대 중후반에 결혼을 못하면 한참은 하기 힘들다고 조언했다. 함께 듣던 왕선임 막내작가였던 언니가 이유를 물었다.

"작가들이 제일 일을 많이 하는 게 4~5년 차 서브인데... 그때 결혼하고 중도 포기하고 나가는 작가들이 많으니 7~8년 차 되면 일이 많아져. 닥치는 대로 일하다가 정신 차려보면 30살 중반이더라고... 그러니깐 결혼할 생각 있으면 좋은 사람 있을 때 빨리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때 나는 다짐했던 것 같다. 나는 오래가지 않고 중도 탈락하겠노라고. 30살 되기 전에 방송계를 떠나겠노라고...


리뷰를 하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나의 경험담 폭로가 되었다.

방송에서 즐거웠던 일도 참 많고 좋은 인연들, 고마운 사람들도 많은데 무엇이 나를 이렇게 괴롭게 만들었을까?

전직 방송작가의 고백이 왜 에세이가 아니고 사회 고발인지는 뒷부분에 보면 나온다.

방송을 떠났어도 '방송'이라는 단어를 보면 자동으로 반응을 한다. 이한빛 PD에 대한 글도 많이 담겨있다. 내가 방송을 떠난 뒤이기에 내 일처럼 와닿는 사건은 아니었지만 그 이름과 사연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

대책위는 이 PD가 의상, 소품, 촬영 준비, 영상파일 딜리버리, 촬영장 정리, 정산, 편집, 차량 통제 등의 일을 맡았던 것으로 파악했다.

고강도, 장시간의 디졸브 노동보다 더 그를 괴롭힌 건 그가 느껴야 했던 자괴감이었다. 이한빛은 공감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월급의 일부를 매달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한 416 연대, KTX 승무원 대책위원회, 빈곤 사회연대에 기부했다. 이한빛은 또한 연대하는 사람이었다. 용산 참산 추모미사에서 또 재벌 기업의 노동 탄압에 항의하는 퍼포먼스 현장에서 이 PD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타인에게 공감하고 연대하는 사람으로 살았던 그에게 드라마 제작 당시 비정규직 계약 해지 관련 업무가 주어졌다. 특히 해고된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선입금됐던 돈을 돌려받는 일은 이 PD를 가장 괴롭게 했다. 노동자와 약자를 위해 투쟁하던 그가 방송 제작 현장에서는 그들을 궁지로 내모는 역할을 맡게 된 셈이다.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하는 삶이기에 더 이어 가긴 어려웠어요." P.194


방송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일도 이와 비슷한 일이다. 나는 섭외하나 하나 신중하게 했다. 나의 섭외에 응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가끔은 '방송'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그게 내가 애쓰게 섭외한 누군가에게 해가 되거나 실망을 시키는 일이 될 때 나는 자괴감에 시달리고 괴로움에 몸서리쳐야 했다.

나는 따뜻한 방송이 되길 원했다. 내가 만든 방송으로 누군가가 도움이 되었으면, 누군가는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맛집을 방송하면 손님들이 더 많이 찾아오길 바랬고, 여행지를 소개하면 그 지역에 더 많은 관광객이 가길 바랬다. 처음의 기획과 촬영과 편집을 거치다 보면 기획의도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내가 겪은 일은 아니지만 촬영을 갔던 한 PD가 촬영 녹화 버튼을 제대로 누르지 않아 촬영된 테이프 전부를 날려버린 일이 있었다. 해당 가게에서는 방송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도와줬지만 방송은 나올 수 없었다. 실수는 담당 피디가 했지만 해결은 담당 작가의 몫이었다. 화가 난 해당 가게는 뒤로 하고 새로운 업체를 섭외해 촬영을 전부 다시 하고 기획 조차 새롭게 수정해야 했다. 어찌어찌 방송은 무사히 나갔지만, 애초에 약속했던 가게와의 문제가 남아있었다. 해당 가게 업체 사상님은 담당 작가에게 불같이 화를 냈고, 해당 작가는 그 모든 화를 다 받아내야 했다.

또 한 번은 몇 번의 실수로 촬영이 꼬여버리자 잠적했던 조연출이 있었다. 사고를 크게 치고 잠적해버렸다. 이 좁은 방송 바닥에서 이렇게 날라버린 거면 방송계를 떠나는 거겠지 생각했지만, 몇 년 후 다른 프로그램에서 피디로 입봉 한 그를 다시 만났다.

한 편으론 동료를 버리고 잠적한 것은 괘씸했지만 문제를 벌려놓고 느꼈을 압박감과 무게감을 버티고 살아서 있는 것 자체가 대견했다.

뒤늦게 생각한다. 그는 대책 없이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는 받았을지언정 본인 살 길을 제대로 아는 똑똑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간혹 방송일을 하다가 목숨을 끊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방송을 그만두면 되는데... 왜 자신을 극으로 몰았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살기 위해 도망간 그 조연출은 잘한 거다. 어찌 됐든 살아남았으니까...



책 앞면에 작가의 친필 사인과 함께 "작가님이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은 무엇인가요?"라는 물음이 들어있다. 내가 쓰지 않고 덮어버린 기억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반짝반짝 빛나는 방송이라는 '빛' 아래 방송 스태프라는 '그늘'도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리뷰]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