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고 있어...
어린 시절 나는 달팽이나 거북이가 되고 싶었다.
상처에 약한 나는 언제나 주변의 우울이나 위협이 생기면 숨을 수 있는 강인한 등딱지가 가지고 싶었다.
그들의 속도가 너무 늦어 도망갈 수 없다지만
수풀에 숨어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숨죽이고 있을 수 있도록..
비록 속도가 느리더라도
천천히 안전하게 가고 싶었다.
어느 누구도 내가 서걱서걱 기어가는 걸
어느 누구도 내가 엉금엉금 기어가는 걸
모르도록...
재미로 발로 펑 차지 않도록
처음 시작했던 원위치로 되돌려놓지 못하도록
아무도 모르게, 들키지않게,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가고 싶었다.
깊은 호수 깊은 바닷속에서 자유롭게 그냥
흘러가는 구름이나 보며 그렇게 살길 원했다.
어느덧 육지에서는
나와 달리기를 하던 부지런한 친구들은 결승점에 도착했다던데...
누군가가 내가 잠든 사이 나를 출발선까지 다시 밀어놓은 건가.
뜬구름을 잡던 나는 아직도 시작점에 가깝다.
어찌 됐든
나의 등딱지는 나의 껍질은 예전만큼 약하지는 않다
여전히 속살은 연약하지만
적어도 재미로 나를 걷어차는 사람들의 발길 정도는 버틸 수 있는 단단함이 생겼다.
이제 물 밖으로 나가서 달리기를 다시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좀 더 많아졌지만... 달리기를 끝내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종착점에 도착하지 않을까?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걷기로 했다..
다시 기어서 오르자.
2022.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