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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Dec 26. 2023

[일기] 벌써 1년...

갑작스런 날벼락을 맞고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

여름밤



여름 방학이 끝났다.

바람이 차가워졌다.

8월이 지나기 전에 밀린 글을 올리기 위해 브런치에 왔다.

2022년 8월...

나는 작년 이맘때 지옥에 있었던 거 같다

온통 환한 태양 아래 나 혼자만 울고 있었다.


왜? 하필 내가?

왜? 하필 나만?

왜? 하필 지금?

모든 것은 의문투성이였고, 억울했고, 화가 났다.


위로도 싫었고

동정도 싫었다.


하필 그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의 생일이었다.

친구에게 축하메시지를 보내는 데 눈물이 났다.

'나 사실은 암 이래...'

친구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알고 지낸 지인에게 카톡이 왔다.

"**님, 안녕하세요?"

너무도 익숙한 안부인사말이 송곳처럼 가슴을 찔렀다.

'저... 안녕하지 못해요...'

안녕하지 못하다는 말이 가슴에 사무쳤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눈물을 참으며 손가락으로 꾹꾹 문자를 눌렀다.

"오랜만이에요~"


내가 울고 있어도 나의 이모티콘은 방방 뛰면 춤을 추고 활짝 웃어주었다.

얼굴을 보지 않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전화였다면 아마 들켜버렸을지도 몰랐다.


실컷 잘 지내는 척, 건강 챙기라는 뻔한 안부인사를 전했다.

'안녕'하지 못할 때

'안녕한 지' 물으면

나는 어떻게 대답했던 가? 떠올려봤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정말 힘들 때 누군가 내게 전화를 했었던 거 같다.

문자라면 완벽하게 속였겠지만, 목소리 연기엔 영 재능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사실은 나 안녕하지 못하노라 얘기하고 싶었는 지도 몰랐다

전화기 넘어 물어오는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입을 열면 울음이 새어 나올 것이 뻔했으니까

꾹꾹 참고 한 마디를 했더니 상대방이 알아챘다.


너무 쉽게 상대에게 들켜버렸지만, 오히려 가끔은 그게 편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들키고 나서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던 거 같다.

한참 울고 나면 개운해진다. 그럼 진짜 괜찮은 감정이 든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그랬던 것 같다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

어디서 뭐가 잘못된 건지 생각하다가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다가

화가 나서 콱 죽어버릴까 생각하다가 눈물이 났다

한참 울고 나니, 서러워져서 꺼이꺼이 울다가 배가 고파졌다

슬프지만, 죽고 싶은 거 아닌가 보다. 배가 고파진 걸 보니


그동안 불리할 때마다, 힘들 때마다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도 후회했다.

그렇게 쉽게 생각했던 죽음이...

'너 진짜 죽어볼래?'하고 덤벼드는 것 같았다.


내 마음은 아프지만, 내 일상은 흘러가야 했다.

내 마음이 아픈 것과 내 몸이 아픈 것은 나의 문제였고

세상은 그대로였다.

사람들도 그랬다.




여름이 끝나가는 길목에서

나 홀로 겨울이었다

분명 여름이었는데, 바람이 차가웠다

분명 괜찮았는데, 아니 분명 아직까지도 이렇게 건강한데...

80살까지 살 거라고 그동안 펑펑 놀았던 게 후회됐다.

글이라도 많이 써놓을 걸

목소리라도 많이 남겨놓을 걸

사진을 더 찍어놓을 걸

그때 여행 가자고 할 때 못 이기는 척 따라갈걸...

하지 못했던 게 후회로 남았다.

당장 죽는 것도 아닌데, 당장 죽을 것처럼 슬퍼졌다.

무서웠다는 게 맞다. 몸에 바늘을 찌르고, 칼로 째고, 바늘로 꿰매고, 그런 것들이 무서웠다는 게 가장 크다.

'나 주사 맞는 게 너무 무서워.'

39살의 아이 엄마가 말하기엔 너무 부끄러운 이야기였다.

'나 혈관 약한데... 병원 갈 때마다 피를 뽑고, 검사를 할 텐데... 그러다 혈관이 다 터져버리면 어쩌지?'

 

그동안 정성을 들이던 아이의 교육이며, 성장은 관심밖이었다.

고작 이렇게 젊은 나이에 아프려고 열심히 산 건 아니었다.

'아직 초기니깐, 치료만 잘 받으면 될 거야.'

'그래도 이제 암환자야. 암이 있다가 치료한 것과 없었던 건 다른 문제니 깐 예전의 나로는 돌아가지 못할 거야'

'왜, 하필 지금일까? 나도 아이들 다 키우고 조금 더 늦게 걸리면 안 됐을까?'

'도대체 언제일까? 엄마가 화내지 말라고 할 때, 그때 말 들을 걸... 그때 화를 내지 않았더라면...'

'그때, 남편과 싸우고 속상해하지 말고, 빨리 잊어버릴걸... 마음을 조금 더 넓게 쓸걸...'

'그때 돈 아깝다고 왜 아꼈을까? 이제는 돈이 있어도 못하게 됐는 걸...'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뒤집힌다는 게 어떤 건지 어렴풋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죽기 전에는 했던 걸 후회하기보다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후회한다는 걸 이해할 것 같았다


하루는 정말 괜찮았다.

'치료받으면 되지. 다른 사람들도 다 치료받고, 나는 그래도 초기잖아. 얼마나 다행이야.'

'그래도 유방암인 게 어디야. 수술만 하면 되겠지.'

'나는 결혼도 하고 심지어 아이도 많이 키웠잖아. 그래도 다행이지.'


그러다 밤이 되면 슬퍼지길 반복했다.

'암은 분노와 슬픔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떠올랐다.

터져 나오는 눈물을 꾹꾹 참았다.

여느 때처럼 지지리도 말 안 듣는 아이들은 엄마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하면서도 속상했다.

11살, 8살이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왜 저러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불안해했다.

아빠와 엄마의 표정이 심상치 않고, 엄마는 가끔 울고, 자주 화를 냈으니까...

평소엔 침착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불쑥불쑥 화가 올라왔다. 조그마한 일에도 화가 나고 서운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은 그대로였는데, 그것조차 화가 났다.

나는 이렇게 지옥인데 다들 평화로웠다.

종종 아픈 나에게 자신의 슬픔과 아픔을 토로하기도 했다.

어차피 아픈 건 나고, 사람들에게는 모두 자기의 아픔이 제일이었다.


참기로 했다.

수술이 끝날 때까지.

혹시라도 나쁜 놈이 더 커지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감정을 조절하기로 했다.

딱 하루만 울고, 딱 한 번만 실컷 울고 참기로 했다.

하루만 울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혼자 남아 울었다.

눈이 퉁퉁 부어 눈도 안 떠지고, 너무 울어 코가 막혔다.

숨도 쉬어지지 않는 그날 새벽, 마지막 실컷 울어버리고 참기로 했다.

정말 수술날까지 꽁꽁 참았다.

그리고 막상 수술 다음 날이 되었다.

이제 펑펑 울어도 될 것 같았지만,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난 만큼 내 마음도 조금은 안도했던 것 같다.


겨울 노을

여름 방학이 끝난 8월 말에 쓴 일기를 겨울방학이 코 앞인 겨울 어느 날에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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