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였을지도]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조금만 흐려져도 금세 온몸의 세포가 예민하게 반응한다 비가 올 걸 직감으로 먼저 아는 것이다 특히 냄새 비 오기 전의 습한 냄새를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나는 설명하지 못한다 다만 알뿐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냄새를 맡는 버릇이 있다 먹을 걸 앞에 두고 있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거나 빨래를 개어 정리하거나 푸른 잎사귀를 볼 때도 어김없이 냄새를 맡고 싶어진다 그건 앎에 대한 욕구의 일종이었으려나
살면서 맡은 냄새를 맡아보았기 때문에 자연히 기억하고 있는 냄새도 많다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겨울 냄새 봄볕의 냄새 풀이 자랄 때 나는 냄새 잘 말린 이불 냄새 같은 것들을 사랑한다 냄새로 모양이나 모습을 자연스레 유추한다 냄새란 특유의 향수(鄕愁)를 갖는 법이라 내겐 그리운 추억이랄까 곱씹게 되는 생의 장면들도 덩달아 많아지게 된다
어릴 땐 접시를 들어 코에 가져다 대는 버릇 때문에 핀잔을 자주 들어야 했다 핀잔하는 사람들은 보통 왜 냄새를 맡아? 뭐 하는 짓이야?라고 물었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그저 냄새를 맡는 거야라고 답했다 왜 냄새를 맡으면 안 되는지 그들은 내게 명쾌히 설명하지 못했다 그저 반복적이고 근거 없이 이상하고 특이한 행동의 일종이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게 전부다
나는 왜 그러면 안 되는지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에 냄새를 맡지 못하게 할수록 의문만 커졌다 사회적 통념보다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내겐 훨씬 더 중요했으니까 그만둘 이유 없이 무언갈 그만두는 것에는 워낙 소질이 없다 그들의 말에 끝내 수긍하지 못했으므로 그 결과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감정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후각 역시 시각이나 촉각 청각에 비해 정연하게 설명해 내기 힘들다 예컨대 날카롭다 따듯하다 간지럽다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촉각이나 붉다 파랗다 푸르르름하다 검다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각과는 달리 냄새는 단어로써 정연하게 표현해 낼 수 없다는 거다 기껏해야 풀 냄새 꽃 냄새 물 냄새 정도로 표현해야 하는 한계성이 있다
한번 각인된 냄새는 잘 잊히질 않는다 그리운 냄새를 맡는 순간 과거의 이미지가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니까 그건 후각 정보가 언어나 사고에 의해 논리 정연하게 분석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은 가지런히 정리되고 익숙한 정보로써 처리되기 때문에 오히려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정보의 하나로 인식된다 그러나 후각은 언어나 사고에 의해 희석되지 않기 때문에 감정을 담당하는 뇌의 근처에서 한 장의 이미지로 단단히 박제될 수도 있는 것이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 그런 노래가 괜히 유행했던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며 나는 앞으로도 강아지처럼 코를 킁킁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