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좋은 이유, 사실 사계절을 모두 좋아해]
비가 와서 더 짙어지는 풀냄새와 흙냄새 상쾌하면서도 오묘한 이 촘촘한 냄새들이 좋아 창가 가까이에 앉아 강아지처럼 계속 킁킁대고 있다 비가 그치고 나면 가을이 성큼 다가오겠지
비가 내린 뒤의 산책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들은 비 내린 후 산책으로 위로를 받는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어렸을 적 비가 좋았던 이유는 비가 내리면 조명을 낮추고 피자를 먹으며 보고 싶고 아껴두었던 영화를 틀어서 보았던 기억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이유보다는 비가 내리면 어쩐지 어둡게 깔려 있던 먼지의 한 톨까지 싹 씻겨 내려가 소란스럽고 부산스러웠던 내 마음들과 일상 속 무연했던 감정들을 추스를 수 있게 되어 위로받는 기분이 들어서이다 마치 정화의식의 느낌이랄까
나중에 나와 함께 하는 사람도 비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어두운 조명 아래 지글지글 해물파전을 부쳐 나눠 먹으며 보고 싶었던 영화를 함께 보고 더위보다 습함에 약한 나지만 그래도 장화를 신고 우비를 입고 가끔은 비를 함께 맞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