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일기
우연히 출퇴근 길에 페이스북에서 어떤 글을 읽게 되었다. 정독을 하지 못했더니 내용에 대한 기억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기억나는 대로 쓰자면 아래와 같다.
문화인류학자에게 문명시작의 시점을 언제로 보냐는 질문을 했더니 어떤 유골에서 부러진 정강이 뼈가 아문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그 유골이 살았던 시기가 문명이 시작된 지점이라고 본다고 답했다고 한다. 야생에서는 다친 동물은 무리에서 떨어져나가 결국 맹수들의 먹이가 되기 마련인데 뼈가 아물었다는 것은 사회적인 보호와 도움이 있었다는 의미라고.
인간은 태아가 태어나는 산도가 유난히도 좁고 모양도 이상하게 비틀어져있어서 혼자서는 출산을 할 수 없고 반드시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 말은 인간의 존속은 타인과 공존하고 서로 보호하는 사회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출산의 행위는 사회가 나와 아이를 지켜줄 것이란 믿음 하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 사회가 내 아이를 보호해 줄 수 없다는 생각에 기반한다.
한국사회의 낮은 출산율에 대해 여러 가지 원인 분석의 글들이 많은데 그 글을 볼 때나 스스로 생각해보기에 뭔가 썩 명쾌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이 글에서 그 해결되지 않았던 궁금증이 완벽히 해결되는 기분이었다. 이 사회가 나와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다 라는 두려움.
회사 복직 후 그새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발이 땅에 닿지를 않고 겉돌고 있다. 매일같이 일이 없으니 일을 더 달라고 구걸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아기 맡길 곳 없어 야근도 해외출장도 한 발 빼야하는 내 처지에 ‘그래 그래서 남자들을 선호하겠지’라고 사측을 이해하게 되는 내 논리전개도 한숨이
나온다.
한때 둘째를 소망했으나 지금은 생각조차 사치이다. 평생 가정주부로 살았던 엄마를 보면서 나는 반드시 일을 하는 여자로 살겠다고 다짐하며 커왔는데, 회사는 자꾸 이곳은 애 엄마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등을 떠미는 것 같다.
그래, 누구도 등을 떠민적은 없지만 나 혼자 쪼그라들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