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너에게
20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지 100주년이 되던 해에 엄마는 여행을 떠났단다.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배낭하나 둘러메고 떠난 여행이라 놓친 것도 많았고, 보았으나 제대로 보지 못한 것도 많았어. 당시 자금 사정도 넉넉치는 않아서 74일 정도 유럽의 일부만 후루룩 돌고 끝내야 했기에 마지막 날엔 아쉬움에 눈물이 주루룩 흘렀단다. 그래도 너와 함께 여행을 가기 전 사전 답사를 했다 라고 의미를 두기엔 나쁘지 않은 여행이었다 싶고 앞으로 너와 함께 할 여행들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행복감이 차오르는 것 같아.
너에게 소개할 영광의 첫 번째 작가는 소로야 라는 화가야.
엄마가 20대 때 프라도 미술관을 처음 가서 그토록 궁금했던 고야의 그림을 실물로 보고는 가슴이 뛰어 한참을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있어. 그때 그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10년만에 다시 프라도 미술관을 찾았는데 사람이 그 때의 감정과 환경, 나이가 듦에 따라 취향이 바뀌는지 그때만큼의 충격은 오지 않더라. 이건 고야 편에서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엄마는 일부러 사전 공부를 안하고 미술관을 찾는 편이야. 거기서 느낌이 오는 그림을 보고 이 사람은 어떻게 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 이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이 사람의 인생은 어땠을까?등을 상상해보고 그 이후에 상세 자료를 찾아본 뒤에 내 느낌이 맞았는지를 확인해보는데 참 재미있는 것이 거의 엄마의 느낌이 맞더라는거야. 엄마의 촉이 좋다기 보다는 글이나 그림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배경을 가장 잘 드러내는 표현 수단이라서 그런 것 같아.
여튼, 그 와중에 엄마의 눈을 사로잡은 큰 그림 하나가 있었어. 강렬한 태양 아래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나체의 소년들이었는데 색감도 너무 아름답거니와 그 그림이 너무나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더라. 그래서 작가 이름 검색을 해 보았는데 마침 이 작가의 미술관이 마드리드에 있는거야!
그 다음 날 엄마는 바로 그 미술관을 찾아갔어. 당시에는 이 작가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아서 현지인들에게 물어물어 길을 찾아갔지.
소로야는 자국 출신 화가라 스페인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 미술관은 소로야의
자택을 일부 개조해서 쓰고 있고 내부는 그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가급적 많이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해. 발렌시아 출신이라 강렬한 스페인의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인테리어였어.
이 작가의 그림은 불행, 어두움, 가난 같은 것의 반대쪽 극단에 있는 느낌 이었어. 밝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여유롭고, 사랑스러운. 그래서 삶이 어느 정도는 부유했고 안정적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 사람이 내 안에 사랑과 행복이 넘쳐야 타인에게도 나눠줄 수 있는 법이거든.
소로야의 집은 내부도 따뜻하고 정갈했어. 그림의 배치는 그때그때 조금씩 바꾸는 것 같지만 큰 차이는 없어 보이고, 그저 행복한 가정이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 눈에 들어왔던 두 그림이 있었지.
하나는 엄마가 임신했을 때 프사를 장식했던 그림이고 하나는 엄마 방에 걸려있는 엽서 그림.
엄마는 보자마자 이 여인이 와이프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어. 정말 사랑을 담아 그렸구나 라고 느껴졌거든. 아이의 탄생 순간을 그린 그림도 작가의 가슴 벅참이 전해졌고.
이 작가는 평생 가족들을 많이 그렸어. 와이프 그림도 나이 들어감에 따라 계속 그 모습을 그리는데 단 하나의 그림도 애정이 녹아있지 않은 그림이 없더라. 엄마도 이 작가의 삶처럼 가족들과 평생 사랑을 나누며 예쁘게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
지금 이 작가는 엄마가 좋아하는 3대 작가 안에 드는 사람인데.. 아직 추가적으로 많이 찾아보지를 못해서 아는 것은 단편적이야. 지갑사정이 허락하는 한 미술관에서 도록을 꼭 사오는 편인데, 마침 이날 영문판이 매진된거야.. 그래서 부득이 스페인어 도록을 사왔는데 엄마는 아직도 이 책을 읽을 수가 없네.. 당시엔 까짓것 스페인어도 공부해보지뭐! 라고 의욕에 불탔던 것 같은데..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인게 엄마는 그림은 좋아하지만 지식은 얕디 얕아서 전문적인 내용을 나누기엔 어렵고 이 정도 소개로 가볍게 글을 써놓고자 해. 부족한 부분은 네가 앞으로 채워나가기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