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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레오 Jul 24. 2020

본질은 잊고 ‘증거’만 남기라는, 언택트 시대의 부작용

[문선종 사회복지사의 실존육아] 시스템은 있는데 사람이 없다

오늘은 못 참겠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문자를 썼다. 쓰고 또 지우기를 반복했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서율이가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 시작한 학생 자가진단 때문에 이 요란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자가진단을 빠짐없이 했던 터였다. 그런데 하지 않았다는 어이없는 답장과 함께 지속적으로 안 하고 있음을 알리는 문자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담임선생님의 문자는 건조하면서 단호했다. 지난번에도 분명히 자가진단 체크를 했는데 이런 문자가 온 적 있다. 그때는 선생님 정신이 없어서 잘못 보냈겠지 혹은 뭔가 오류가 있겠지 하고 다시 했지만 뭔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상습범이 된 것 같아 오해를 풀기 위해 회신번호로 문자를 했지만 수신이 되지 않아 곧장 교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담임선생님은 수업 중이라 전화가 어렵다며 교무실 선생님이 응대를 했다. 간혹 전산오류로 문의가 오기도 한다며 양해를 당부했고, 전체 관리는 보건 선생님이 담당해서 확인 후 반영하겠다고 전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자가진단을 마친 후 화면을 캡처해두는 버릇이 생겼다. 또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다시 오해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학교 선생님들의 노고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난 6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 코로나 19가 바꾼 일상 변화와 아동 행복’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포럼 현장에서 일선 교육현장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 익히 알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해 입술에 습진이 생기기도 하고, 온라인 개학으로 행정업무가 더욱 과중됐지만 정작 일도 안 하는데 왜 급여를 받느냐는 비난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교사의 고유의 기능은 학생을 대면하고 가르치는 일이다. 이런 행정력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 잋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 자가진단 철저히 하는 이유 “학교에서 찍힐까 봐(?)”

둘째가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문선종

다른 보호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들 철저하다. 어떤 사람은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기상과 동시에 체크한다고 한다. 일상이 바빠 늘 잘 잊어버리는 사람은 알람을 맞추고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었다. 철두철미하게 관리를 하는 보호자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기한 엄수를 하지 않을 경우 혹시 아이를 차별하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신경을 쓴다는 대답과 학교 운영에 소홀하면 아이에게 신경 쓰지 않는 부모로 찍힐까 봐 두려운 마음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답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대부분 행정력 낭비라며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      


교육현장에서는 자가진단에서 정상으로 체크했다 해도 등교 후 발열이 감지돼 선별 진료소로 옮겨지는 사례가 있었다. 가정에서는 체온계가 없어 임의로 체크하는 등 실효성 논란이 있는 실정이다. 장기적으로 이 상황이 계속될 전망이라 체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자가진단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감염에 대한 철저한 관리다. 자가진단은 보건교사가 지역 보건소와 연계해 관리하는 것이 옳다. 학생과 보건체계 사이에 선생님을 욱여넣어 아침 8시 30분에 누가 하지 않았다고 보고하게 만들어 교사의 본질을 흐릴 필요가 있을까? 좋은 시스템은 그 목적이 분명하고 사람을 이어주는 관계성을 회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온라인 강의와 주 1회 수업을 나가는 첫째가 과연 선생님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을까?      


◇목적 전치라는 망각

우리만큼은 진짜 목적을 잊지 말자. 집에 해바라기 비가 내릴지언정. ⓒ문선종

둘째를 위해 아동 관련 기관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수업을 신청했다. 강의를 볼 수 있는 링크와 오감놀이를 할 수 있는 도구들을 받았다. 선생님과 직접 교감하며 함께해야 하는 부분을 집에서 영상을 보면서 따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아이가 영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호자가 그 시연을 숙지한다거나 간단한 진행 설명서를 받아서 아이와 함께 진행하는 것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서비스를 제공한 기관에서는 무엇보다 '사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수업한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제출하라고 재촉한 것이다. 아마도 결과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물론 사진과 결과보고도 중요하지만 프로그램의 진짜 목적은 코로나 19 상황에서 아이의 발달을 증진하는 것이다. 


언컨텍트 시대가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갈수록 목적 전치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이것은 충분한 사회적 병리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수단이 목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있지만 교육은 없다. 자가진단은 하지만 감염예방은 없다. 과정은 무시되고, 결과가 중요하다. 8시 30분 전에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고, 아이의 건강과 마음 상태는 중요하지 않다. 온라인 수업에서 무엇을 알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도율이 몇 퍼센트를 채웠는지가 중요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충실하자. 아이들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기 위해 온 집안이 엉망이 되어도 상관없다. 우리는 진정한 목적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만은 잊지 말았으면 한다. 


※위 글은 N0.1 육아신문 베이비뉴스에 연재된 글입니다.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됐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 시절 비영리 민간단체를 이끌었고, 구룡포 어촌마을에서 9년간 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수행했다. 지금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홍보실에서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moons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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