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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레오 May 03. 2019

나는 퇴근 후 가족을 만나기 위해 출근한다

[사회복지사 문선종의 '아빠공부'] 일은 삶을 위해 존재하니까

둘째가 화분을 깼다고 아내에게 카톡이 날아왔다.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분도 아내의 마음도 아닌 둘째 지온이의 안전이었다. 우리가 이사를 하고, 플랜테리어(식물과 인테리어의 조합)를 구축하기로 하면서 아내가 웨건을 끌고 식물원까지 걸어서 힘들게 모셔온 화분인데... 처참한 화분을 보며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지만 이 보다 더 귀중한 건 아이의 안전이었다.

산산이 부서진 금전수 화분 ⓒ문선종

이 화분은 공기정화가 목적이다. 쾌적한 공기를 만들기 위함이고, 궁극적으로 비염이 있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화분이 깨졌다고 해도 아무런 상관없지. 뭐 또 사면되지~."라고 생각하다 문득 요즘 고민하고 있는 '워라벨'의 진정한 의미가 이런 화분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워라벨은 Working Life Blance의 줄임말로 일과 삶의 균형을 이야기한다. 이 용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 '요즘 세상에 그게 가능해?' 반문하며 생각 없이 일만 했던 기억이 난다. 늦은 밤 아이들을 재워놓고 집에서 일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단어였다. 화분을 깨기 전까지만 해도 이 용어는 철저하게 물리적인 용어였다. 일을 4시간 한다면 나의 삶이 4시간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일을 한다는 이유로 못난 아빠가 돼가고 있었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뭘 해야 하는데 책을 읽어 달라며 투정 부리는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는 아빠, 책은 대충대충 읽으며  써져있는 대사 몇 줄은 그냥 스킵해버리고 슬쩍 지나가는 귀차니즘 아빠, 얼른 잠들지 않으면 도깨비 아저씨 온다며 잠을 재촉하는 아빠, 주말에 힘든 표정을 지으며 겨우겨우 놀아주며 신나는 척 연기하는 아빠, 최근 들어 힘들다는 핑계로 주말 분리수거를 아내에게 슬쩍 넘기는 능구렁이 아빠 같이 말이다.

사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지온이는 엄마가 그랬다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문선종

TBWA코리아 박웅현 CCO(Chief Creative Officer)의 그의 저서 「책은 도끼다」(2011)에서 "모든 사생활은 모든 공무에 우선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더라도 가족과의 약속이 중요하다며 퇴근과 휴가를 강조한다. 이처럼 우리는 퇴근 후 가족과 함께하는 그 순간을 위해 일하는 것이 맞다. 아니 옳다. 월요일 출근시간  어김없이 주말에 부족했던 아빠로서의 역할을 반성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내 삶을 위해 하는 것이다. 고로 퇴근 후 가족과의 시간과 주말, 잠들기 전 읽어주는 동화책 같은 소소한 일상이 우리가 바라는 궁극적인 삶이자 행복으로 만들어야 한다. 산산조각 난 화분 덕분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화분 값은 톡톡히 치른 셈이다. 오늘 두 딸과 함께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거품목욕을 했다. 아이들이 크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퇴근 후라면 혹은 주말이라면 오직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야만한다. 자! '일은 삶을 위해 존재한다' 혹은 '삶은 일보다 중요하다' 워라벨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보자.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됐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활 동안 비영리 민간단체를 이끌었으며 구룡포 어촌마을에서 9년간 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수행했다. 현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실에서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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