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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레오 Oct 18. 2019

나는 체벌을 끊기로 했다

[민들레 125호 기고문] 살며 배우며 

체벌과 폭력의 연결고리     


다음 달이면 담배를 끊은 지 7년차에 접어든다. 첫째 딸 서율이가 태어나고, 1년 동안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싸우며 승리한 일생일대의 자랑스러운 사건이다. 흡연자들은 알겠지만 끊었다는 표현보다는 참는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사실 흡연은 내 삶에서 예견된 하나의 습관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담배를 즐겨 피셨기 때문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처럼 부모의 생김새를 닮듯이 부모의 행동, 감정, 사고 등 DNA에 각인돼 우리에게 물려진 것들은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운명론적인 것이다.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아이들로 매일이 전쟁이다. ⓒ문선종

체벌도 마찬가지다. 체벌을 하는 부모에게서 자랐다면 우리는 그 양육태도를 그대로 물려받는다. 마크 월린의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에서 후성유전학자들은 최소 3대에 걸쳐 트라우마와 감정, 양육태도가 유전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체벌은 단순히 아동을 훈육하기 위한 단편적인 조각이 아니다. 유전적이고, 집단 무의식에서 존재하는 인류의 퇴적층이다. 폭력의 발현은 폭력을 당했기 때문에 일어난다. 내가 폭력을 당하지 않아도, 나의 윗세대들이 당한 폭력은 우리의 DNA속에 잠재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텍사스주립대 제프 템플 교수팀은 어렸을 때 ‘훈육’을 목적으로 막대기나 손바닥 등으로 엉덩이를 때리는 등의 체벌을 경험해도 나중에 데이트 폭력을 저지를 위험이 커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이 미국 텍사스주 19~20세 남녀 청소년 75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체벌 경험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데이트 폭력을 저지를 위험이 평균 29퍼센트 높았다고 한다.      


당신의 자녀가 학교폭력 상황에 놓여있다는 가정해보자.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수도 있고, 가해자를 말릴 위치에 있을 수도 있다고 해보자. 만약 당신의 자녀가 피해자라면 폭력의 상황의 부당함에 맞설 수 있을까? 가해자라면 폭력의 부끄러움을 인지하고 피해자에게 무릎 꿇고 사과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아이일까? 피해자의 부당함을 보고, 그를 보호하며 가해자와 싸울 수 있는 당당함이 있을까? 만약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아이라고 한다면 체벌 받지 않고, 폭력 속에서 자라지 않은 아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또래 집단의 심리를 분석한 책 『어른들은 잘 모르는 아이들의 숨겨진 삶』 에서는 학교폭력의 상황에서 100명 중 단 7명만이 그 부당함에 맞선다고 한다. 오직 7퍼센트가 세상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93퍼센트의 아이들이다. 이 중 대부분이 피해자나 가해자가 아닌 목격자들이다. 이들은 왜 폭력상황에서 침묵할까? 폭력의 부당함에 맞서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그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폭력상황에서 겪는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과 목격자의 정신적 고통은 같다고 보고한 바 있다. 그리고 더 애석하게도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확률은 절반이 넘어 악순환은 되풀이 된다. 우리가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7퍼센트의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폭력의 도화선체벌   

  

체벌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일이 있다. 모질게 매를 맞고 몸에 상처나 멍 자국이 있으면 부모가 약을 발라주며 꼭 안아주는 행동이다. 이는 심리적 말살이라고 불리는 취소Undoing라는 방어기제 즉, 아동 체벌에 따른 죄책감을 무력화시키는 자기 보호적 모습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스스로를 합리화시켜왔다. 체벌에서 시작된 학대가 아동의 목숨을 빼앗아간 일들은 이런 무지의 반복 속에서 행해진 것이다.      


나는 어릴 적 부모님의 체벌로 폭력에 길들여졌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당시 선생님의 모진 체벌도 그대로 수용해야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친구들에게 당한 따돌림과 폭력에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학교 폭력의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이 모든 상관관계와 내 삶에 대한 성찰은 사회복지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공부를 하면서 밝혀졌다. 가정 내 폭력, 우울, 애착 등 모든 것이 세대 간에 전이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배우면서 간담이 서늘했다. 우리는 부모와 조상들을 비롯해서 함께 호흡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연결되어있는 것이다. 


이 모든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으며 상담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삶에서 잠들었다면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 안의 폭력성이 아예 제거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을 양육하다 보면, 이따금 나에게 잠재된 폭력성이 드러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쓸린다. 첫째아이가 세 살일 무렵 너무 말을 듣지 않아.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텔레비전 리모컨으로 아이 발바닥을 3차례 세게 때리고 만 것이다. 나에게서 부모의 모습과 함께 나의 유년시절이 스쳐지나갔다. 나중에 첫째아이를 붙잡고 정말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한 이후로 훈육에 있어서 체벌을 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어떤 부모로 기억될까? ⓒ문선종

그 후로는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생겼을 때는 그 자리를 떠나 타인의 자세로 나의 감정을 들여다본다. 오직 나와의 싸움인 것이다. 지금 내 앞에 나를 만나러 와 준 두 아이는 내 어린 시절과 평행한 선상에 있다. 오직 비폭력과 사랑으로 아이를 대할 때 내 삶에서 결핍됐던 부분을 치유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기에 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일이다.  

나의 뽀뽀는 보통의 뽀뽀가 아니다. ⓒ문선종 

내가 담배를 끊은 동기도 아주 간단했다. 아이의 볼에 뽀뽀를 할 때 느끼는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이었다. 오직 그 작은 아이에게 아빠로서 떳떳한 뽀뽀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늘 담배를 피우고 나서 두 손을 씻고, 양치질을 하고 뽀뽀한다고 해서 간접흡연의 피해를 막을 수 없었다. 내가 체벌을 끊은 이유도 간단하다. 아이를 죄책감 없이 떳떳하게 안고 싶어서이다. 폭력으로 길들여진 내 삶에 취해 잠들었다면 결코 만날 수 없었던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이와 인류에게 물려줄 위대한 유산이다.     


맞아도 되는 아이는 없다     

일찍이 스웨덴은 1979년 세계최초로 친권자의 체벌을 금지했다. 당시 다른 나라들은‘스웨덴이 미쳤다’라는 보도를 할 정도였지만 그런 미쳤다고 생각한 일에 지금은 54개국이 동참하고 있다. 왜 그럴까? 체벌로 아동의 문제행동을 고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보다 오히려 체벌은 아동의 공격성과 반사회적 행동을 높이고, 우울과 불안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았기 때문이다. 인권감수성이 높아서일까? 스웨덴에서는 학교폭력을 찾기 힘들다. 


지난 5월 23일 한국 정부가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면서 민법 915조 친권자 징계권 조항을 개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지난 8월 유엔에 제출한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쟁점목록에 대한 답변서에는 민법상 징계권을 아동에 대한 폭력을 허용하는 근거로 보고 있지 않다고 언급해 해당 조항 개정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에 국내 아동단체인 굿네이버스·세이브더칠드런·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징계권 조항 삭제를 위한 시민 서명 캠페인 <Chang915, 맞아도 되는 아이는 없습니다>를 시작했다.     


2018년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행위자의 76.9퍼센트가 부모로 나타났다. 심각한 체벌로 인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건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최근 방영한 <그것이 알고 싶다> 1181회 “누구를 위한 트루먼 쇼인가? 키즈 유튜브의 명과 암”에서는 넓은 범위에서의 아동학대를 보여준다. 아이가 좋아서 아이를 위해서 했다고 하지만 연출을 위한 행동을 유인하기 위해 강압적인 체벌이 가해지기도 한다.      


종종 많은 부모의 체벌은 사랑의 매로 둔갑된다. 부모의 권위를 세우려고 죄책감과 수치심을 주기 위해 아이의 옷을 벗겨 벌을 주는 사례도 그렇고, 자신의 욕설과 폭언은 가벼운 정도인데 신고를 당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부모들이 많다. 부모가 어린시절 받았던 행동을 그대로 자녀에게 하는 경향성이 높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에 대한 감수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런 체벌행동에는 “아이는 나의 소유물이야”라는 신념이 짖게 깔려있다.      


부모가 가진 부정적인 습관과 태도의 절멸을 선언하며 운명에 거스르는 용기 있는 삶이 필요하다. 체벌의 절멸은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다음세대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만드는 위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부모들이 나서야 할 때이다. 부모들의 용기 있는 행동만이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줄 수 있다.          


※위 본문은 민들레출판사 원고청탁을 통해 민들레 125호(9-10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아빠칼럼니스트 문선종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를 두고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한다. moons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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