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문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끔 Apr 15. 2023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냐.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냐."


‘나는 문둥이다. 이 말에 아무렇지도 않다. 슬프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 한하운




13화 / S#54 - 술집 골방 (밤)


동훈이 울음을 참으며 담담히 말한다.


동훈        아부지가 맨날 하던 말...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 말을 나한테 해줄 사람이 없어. 그래서 내가 나한테 해.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




가끔씩 한하운의 시집에 쓰여 있던 글이 떠오른다.

‘나는 문둥이다'라는 문장과

‘아무렇지도 않다. 슬프지도 부끄럽지도 않다'라는 문장 사이에서 멈칫하게 된다.

그 사이에 휘고 굽어 있었을 길들을 떠올려본다.

그가 걸어야만 했을 그 길들.

한센병을 앓던 몸보다 더 많이 문드러졌을

그 마음이 붙든 결론은 결국.

'아무렇지도 않다..'


믈론 정말 아무렇지 않아서는 아닐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결론에 이르러야 살 수 있기 때문에 겨우 붙들게 된 문장일 것이다.

나의 아저씨에서 동훈(이선균)이 했던 말도

마찬가지다.

자기를 위협하는 나날들 속에서

그가 붙들 수 있는 말은 그저

'아무것도 아니다' 뿐이다.

그렇게 생각해야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것에

가까워질 테니까.


이런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만큼

힘들 때

아니, 그렇게 힘들 때가 돼서야

겨우 불경하게 신의 존재를 떠올린다.  

말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변명하지 않아도 입을 열지 않아도

다 아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믿음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되니까.

신이 있다면 내 마음을 다 알아주시겠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버티고 있는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렇지도 않다.

요즘 나는..

하루는 괜찮고 또 하루는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간다.

마음속에서 아픈 게, 참을 수 없는 허무함이

올라올 때마다

'아무렇지도 않다,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혀 끝에 올려두고 천천히 녹여 먹는다.


그런 말이라도 붙들어야

앞으로 걸어갈 수 있으니까.

사랑하는 것들을 지킬 수 있으니까.

이렇게 부족하고 약한 나를

아껴주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웃음을 보일 수 있으니까.


한 가수가 남긴 말처럼

때론 어린아이처럼 울며 포기하고 싶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인 어른이라는 것.

다 내려놓지 못하고 넘기지도 못하는

이제 그만 울며 포기하고 싶은 어른으로

자라난 것이 참을 수 없이 버겁다.

가까스로 버티고 있지만 무너지는 나를 본다.


지나간다.

다 지나간다.

그때가 되면…


아무렇지도 않다.

아무것도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록이 저물 때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